종교 323

오늘도 길 위에 서고자

오늘도 길 위에 서고자 왜 도(道라) 했을끼?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길 위에 있기 때문에 도라 하는 것이다. 길을 가기 때문에 도라 하는 것이다. 길 위에 있지 않거나 길을 가지 않는다면 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 길을 갔고 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만약 부처님이 길 위에 있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불교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물론 부처는 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 일 지 알 수 없다. 현겁이 될지 열겁후가 될지 그 이상 무량겁이 될지 알 수 없다. 설령 현겁에 부처가 출현하더라도 정법시대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가르침을 접할 수 없다. 마치 맹구우목의 비유처럼 정법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 부처님이 길 위에 있었기 때..

종교 2020.10.24

오늘도 천천히

무엇이든지 천천히 해야 한다. 급하게 하면 사고난다. 걸을 때도 천천히 걷고 생각도 천천히 해야 한다. 선원에서 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수행센터에서 뛰는 것은 금물이다. 천천히 사띠하며 걷는 것이다. 뒤에서 누가 부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개만 “획”하고 돌리는 것은 수행자에게 있을 수 없다. 소리를 알아차림 하면서 몸과 함께 천천히 돌려야 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은 보기에도 좋다. 사띠를 하면서 걷는 사람은 보기에도 거룩해 보인다. 사리뿟따 존자가 처음 앗사지 존자의 탁발 모습을 보았듯이. 선원에서나 일상에서나 천천히 하는 것은 미덕이다. 급하게 했을 때 명상주제를 놓쳐 버린다. 기둥의 밧줄이 끊어진 것과 같다. 밧줄 끊어진 송아지는 이리저리 배회한다. 마음의 밧줄이 끊어지면 방황할 것이다...

종교 2020.10.24

낙수효과가 기대되는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자비의 식당순례

낙수효과가 기대되는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자비의 식당순례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 점심때가 되면 고민이다. 이를 행복한 고민이라 할 수 있을까?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먹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라면 매번 닥치는 식사시간이 그다지 기대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먹는 재미가 없다면 이 세상을 살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허기가 지면 먹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먹는 즐거움도 빼 놓을 수 없다. 요즘 생존하기 위해서 먹는다기 보다는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먹고 나면 포만감으로 인하여 또다시 먹을 수 없다. 짜장면이 맛있다고 하여 두 그릇, 세 그릇 먹을 수 없다. 그 이상 먹으라고 한다면 고문에 해당될 것이다. 한끼 잘..

종교 2020.10.23

지금은 꿀고구마철

지금은 꿀고구마철 고구마라고 해서 같은 고구마가 아니다. 꿀처럼 달콤한 고구마도 있다. 친구가 생산하는 황토고구마가 그것이다. 해남 황토농장에서 생산되는 꿀고구마를 말한다. 지금은 꿀고구마철이다. 해마다 이맘때 꿀고구마가 나온다. 올해는 약간 늦은 것 같다. 아마 장마때문일 것이다. 작년의 경우 시월 초에 나왔다. 작년에 써 놓은 글로 알 수 있다. 페이스북을 보고서 알았다. 꿀고구마철에는 고구마를 먹어야 한다. 먼저 친구 처에게 꿀고구마 관련 정보를 요청했다. 글에 쓰기 위한 것이다. 꿀고구마 10키로 한박스에 택배비 포함하여 3만5천원이다. 어제 꿀고구마가 택배로 도착되었다. 해남에서 보낸지 하루만에 온 것이다. 개봉을 해보니 박스안에는 황토가 묻은 꿀고구마로 가득하다. 그러나 꿀고구마는 쩌 보아야 ..

종교 2020.10.23

법정 스님의 유언

법정 스님의 유언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종교 2020.10.11

마음은 늘 충만해 있어야

마음은 늘 충만해 있어야 원초적인 두려움이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이 왜 두려울까? 그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한번도 죽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남이 죽은 것을 보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아니다. 마치 어둠 같은 것이다. 캄캄한 방에 갔을 때 어떤 것이 있을지 모른다. 어두워서 두렵다는 것은 어둠속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서 두려운 것이다. 죽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재가신자 마하나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었다. 어느 날 마하나마는 “만약 이 때 내가 죽는다면 나의 운명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S55.21)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사띠를 놓쳤 버렸을 때를 말한다. 재가신자가 사띠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생..

종교 2020.10.10

출신을 묻지 말고 행위를

출신을 묻지 말고 행위를 나훈아를 ‘가황’이라고 한다. 조용필은 ‘가왕’이라고 했다. 그럼 남진은? 특별히 생각나지 않는다. ‘국민오빠’ 정도의 이미지이다. 한때 나훈와 라이벌이었던 남진은 존재감이 없다. 얼굴을 너무 알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불러 주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아서일까 저가의 이미지도 없지 않아 있다. 반면 나훈아는 철저히 감추었다.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 곳에나 서지 않는다. 큰무대에만 선다. 자기연출도 뛰어나다. 이번에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훈아를 아티스트라고도 한다. 노래뿐만 아니라 작사와 작곡도 가능하다. 그가 부른 수많은 히트곡은 그가 직접 작사하고 작곡했다고 하니 놀랍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것..

종교 2020.10.10

학자스님의 초기경전에 대한 무지 두 가지

학자스님의 초기경전에 대한 무지 두 가지 주말작업을 하고 있다. 두 주가량 일감이 없어서 놀다시피 했는데 갑자기 금요일 저녁에 일감이 들어 왔다. 네 모델 아트워크 작업을 해야 한다. 추석전에 발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월요일 오전 중으로는 검도도면을 발송해야 한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일이 없어서 노는 것처럼 고통스런 것이 없는데 마우스를 잡고 클릭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토요일과 일요일임에도 주말작업을 하는 것은 하나도 억울하지 않다. 내일이기 때문이다. 단순작업이다. 마치 농부가 호미를 들고 밭을 매는 것과 같다. 밭 맬 때 라디오를 들으면서 매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트워크 작업할 때 유튜브를 들으면서 작업하면 역시 시간이 잘 간다. 이럴 때 광고가..

종교 2020.10.03

설렁탕 한그릇 먹은 힘으로

설렁탕 한그릇 먹은 힘으로 오천원이상 점심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일감이 없을 때 그렇다. 그러나 요즘 오천원 이하 점심은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찾아보면 있다. 롯데리아에서 제공하는 ‘착한점심’이 그것이다. 데리버거세트는 점심시간에 한하여 4천원이다. 예외 없는 법은 없다. 점심식사 비용 5천원을 어길 때가 있다는 것이다. 힘을 써야 할 때이다.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일을 마무리하고자 할 때 이른바 ‘보양식’을 먹는다. 최근 두 주간 일이 없었다. 갑자기 일감이 뚝 끊기자 할 일이 없었다. 이럴 경우 “일이 왜 없을까?”라며 초조해한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철철 남는 시간에 글을 쓴다. 하루 한 개가 원칙이지만 시간부자가 되었을 때는 두 개도 되고 세 개도 된다. 지난주 금요일..

종교 2020.10.03

수행중에 왜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수행중에 왜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나에게 있어서 사띠란 무엇인가? 그것은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는 매일 아침 글쓰기 주제로 나타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엇을 써야 할까?”라며 고민한다. 이전에 생각해 놓았던 것을 떠 올리며 그 중의 하나를 쓰기로 작정한다. 글은 일단 주제만 정해지면 그 다음 부터는 살을 붙이는 작업이다. 마음 속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해 보는 것이다. 글쓰기에서는 반드시 경전을 근거로 해야 한다. 재가불자가 제아무리 자신의 견해를 주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견이 된다. 그러나 가르침을 근거로 하면 정견의 글쓰기가 된다. 운전하는 것처럼 한번 글쓰기 주제가 정해지면 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잊어버리지 않음을 말한다. 세수할 때도 밥 먹을 때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마..

종교 2020.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