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출신을 묻지 말고 행위를

황령산산지기 2020. 10. 10. 12:42

출신을 묻지 말고 행위를

 

 

나훈아를 가황이라고 한다. 조용필은 가왕이라고 했다.

그럼 남진은? 특별히 생각나지 않는다. ‘국민오빠정도의 이미지이다.

 

한때 나훈와 라이벌이었던 남진은 존재감이 없다. 얼굴을 너무 알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불러 주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아서일까 저가의 이미지도 없지 않아 있다.

반면 나훈아는 철저히 감추었다.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 곳에나 서지 않는다. 큰무대에만 선다.

자기연출도 뛰어나다. 이번에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훈아를 아티스트라고도 한다. 노래뿐만 아니라 작사와 작곡도 가능하다.

그가 부른 수많은 히트곡은 그가 직접 작사하고 작곡했다고 하니 놀랍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것을 말한다.

반드시 음악대학을 나와야만 음악을 잘 할 수 있는 것일까?

 

손혜원TV에서 손혜원은 국회에서 겪은 이야기를 했다.

국회 처음 갔을 때 어느 정치인에게 미술대학 나온 무식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손혜원은 미술대학 나오면 무식한 건가요?”라며 유튜브 시청자에게 물어 보았다.

 

나훈아의 작사작곡 능력에 의심하는 사람들은 나훈아가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 같다.

음악적 재능은 정규대학교육과는 무관한 것이다.

열정이 있으면 정규교육 받은 사람 못지 않게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나훈아는 노래 하나 만드는데 6개월 내지 1년 걸린다고 한다. 혼이 실린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면 절절하게 다가온다. 마치 몰입되듯 빠져 드는 것 같다.

온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부르는 것이다.

노래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노래가 나훈아가 되고, 나훈아가 노래가 되는 것이다.

이를 보고 듣고 있는 사람도 나훈아가 된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아도 음악을 할 수 있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아도 정치할 수 있다.

반드시 음악대학을 나와야만 작사와 작곡,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독학으로도 가능한 것이다.

반드시 법대를 나와야만 정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대학을 나와도 정치할 수 있다. 불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교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불교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다.

전자공학도 출신으로 불교관련 글을 쓰고 있다.

더구나 전공과 관련된 기판설계업무에 종사하면서 하루에 한개 이상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런 세월이 꽤 오래 되었다.

 

불교학 출신이 아닌 자가 불교관련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놀랍게 보는 사람도 있다.

공학도출신이 어떻게 불교관련 글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교계 주류에서는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글 같잖게볼 수도 있을 것이다.

출신의 한계가 있어서 비주류, 비급, 삼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글에 있어서만큼은 주류, 에이급, 일류를 지향한다.

 

불교를 전공한 자들 만이 불교관련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문과대학 출신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전공자라도 열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불교가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되었을 때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다.

 

나훈아는 음악에 대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어도 이시대 최고의 아티스트가 되었다.

손혜원은 미술대학 나왔지만 광고업계의 전설이 되었다.

출신이 다르다고 하여 차별해서 안된다.

하고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출신은 문제되지 않는다.

출신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어야 한다. 불꽃의 비유를 들 수 있다.

 

모든 땔감의 불꽃은 똑같다.

소똥에서 나온 불꽃이나 고급 전단향목재에서 나온 불꽃이나 화염, 광채, 빛깔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출신을 묻지 말라고 했다.

불가촉천민출신이나 왕족출신이나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오면 모두 똑같다.

깨달음에 있어서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어야 하리.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비천한 가문에도 지혜로운 현자가 생기네.

부끄러움으로 자제하는 자가 고귀하네.” (S7.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