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설렁탕 한그릇 먹은 힘으로

황령산산지기 2020. 10. 3. 18:30

설렁탕 한그릇 먹은 힘으로

 

 

오천원이상 점심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일감이 없을 때 그렇다. 그러나 요즘 오천원 이하 점심은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찾아보면 있다. 롯데리아에서 제공하는 착한점심이 그것이다. 데리버거세트는 점심시간에 한하여 4천원이다.

 

예외 없는 법은 없다. 점심식사 비용 5천원을 어길 때가 있다는 것이다. 힘을 써야 할 때이다.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일을 마무리하고자 할 때 이른바 보양식을 먹는다.

 

최근 두 주간 일이 없었다. 갑자기 일감이 뚝 끊기자 할 일이 없었다. 이럴 경우 일이 왜 없을까?”라며 초조해한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철철 남는 시간에 글을 쓴다. 하루 한 개가 원칙이지만 시간부자가 되었을 때는 두 개도 되고 세 개도 된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전화가 걸려 왔다. 반가운 전화이다. 주거래 업체 담당자에게서 온 전화이다. 추석 전까지 긴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열어 보니 네 모델이었다. 주말작업을 해야 하고 그것도 밤늦게 해야 완성되는 일이다. 귀인을 만난 것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작업을 했다. 밤늦게 하다 보니 자정을 넘겨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일요일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 작업을 계속했다. 단순작업이다. 길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이다. 유튜브를 들으면서 해도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주말작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생계와 관련된 일이다.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달려 간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옥도 불사할 것이다. 하청에 하청을 받은 작업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것도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작업장으로 향한다.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을 기꺼이 하는 것이다.

 

작업은 월요일까지 이어졌다. 주말작업으로 거의 80-90%가 완성되었다. 나머지 작업은 다듬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실수가 없어야 한다. 하나라도 실수하면 그대로 손실로 이어진다. 물건을 다시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 스스로 만족했을 때 파일을 넘겨준다.

 

작업에 속도를 내었다. 이틀간 밤낮으로 작업해서일까 몸에 무리가 온 것 같다. 힘이 필요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결승점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막판에 스퍼트하듯이, 마무리작업에 온 힘을 쏟아 부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보양식을 찾아 안양중앙시장 부근에 있는 장수왕갈비탕집으로 향했다. 몸이 허약해졌을 때나 힘을 써야 할 때 찾는 곳이다. 갈비 한대가 들어가면 소자로 8천원이고, 두 대가 들어가면 중자로 만원, 세 대가 들어가면 대자로 만2천원이다. 주로 소자를 먹는다.

 

온갖 약재를 넣어 만든 장수왕갈비탕은 보약이나 다름없다. 입소문이 나서일까 점심 때 줄을 서는 곳이다. 재료가 다 떨어지면 하루 장사가 끝나는 곳이다. 그래서 점심장사밖에 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들만이 가는 곳으로 주로 연세가 많은 노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줄이 길게 늘어섰다. 월요일인 이유도 있지만 바로 옆에 나주곰탕집이 월요휴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두 곳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러나 이날 마무리작업에 힘을 필요로 했으므로 반드시 장수왕갈비탕 소자를 먹기로 했다. 그러나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더구나 줄은 길게 형성되어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마냥 주자창을 찾아 돌거나 긴 줄에 낄 여유가 없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 근처에서 식당을 찾아보았다. 마무리 작업에 온 힘을 쏟아 부어 넣어야 하기 때문에 잘 먹어야 했다. 힘을 쓸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뼈다귀해장국도 생각해 보았으나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설렁탕집이 생각났다. 한촌설렁탕빕이다. 설렁탕 한그릇 비우면 마무리 작업에 힘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촌설렁탕집은 십년도 넘게 보는 집이다. 요즘 6개월 1년이 멀다 하고 간판이 바뀌는데 한종목을 10년 넘게 장사한다는 것은 그 집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을 것이다. 맛은 배신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 맛이다.

 

설렁탕은 7천원 했다. 그 이상 가격이 되는 메뉴도 있지만 오천원 이상 점심식사 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최저가격의 메뉴를 선택했다.

 

그날 점심식사가 그날 컨디션을 좌우한다. 잘 먹은 점심식사는 그날 남은 일정에 활력을 돌게 만들지만 식사선택에 실패하면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기분이 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주 가는 곳만 찾는 것 같다. 새로운 곳에 가면 실패할 염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설렁탕은 최상의 선택이 되었다. 국물하나 남김없이 마셨다. 그리고 남은 작업에 속도전을 벌였다. 마라토너가 결승점을 남겨 놓고 막판 스퍼트 하듯이, 마무리 작업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마침내 도면이 완성되었다. 파일을 이메일로 발송했을 때 모든 일이 끝났다. 설렁탕 한그릇 먹은 힘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설렁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