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323

노병사(老病死)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노병사(老病死)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런 물음은 누구나 한번쯤 해 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물질의 근본을 탐구하는 과학자들도 이런 의문을 한다는 것이다. 몇 해전 공중파방송에서 본 프로가 있다. 스위스에 있는 입자가속기센터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폴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유튜브에서 본 명진스님의 젊은 시절 고뇌도 이와 유사하다. 요즘 유튜브의 시대이다. 컴퓨터를 켜면 곧바로 유튜브로 들어간다. 이삼주전부터 포착된 것이 있다. 그것은 명진스님에 대한 것이다. 지금 유튜브에는 ‘스님은 사춘기’ 시리즈가 계속 업로드 되고 있다. 명진TV에서 만든 것이다. 스님은 사춘기, 이 말은 명진스님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명진스님..

종교 2020.08.23

감각과 감정에 충실하는 삶을 살면

감각과 감정에 충실하는 삶을 살면 누군가 왜 사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떤 이는 “사는데 이유가 있냐?”라고 말할지 모른다. 산천의 초목이 이유가 있어서 자라는 것도 아니고, 야생의 축생이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는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축생과 같은 삶이 있다. 두 가지 이유로 산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식욕과 성욕으로 사는 것이다. 모두 생존과 관련이 있다. 먹어야 사는 것이다.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할 것이다.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조상이 그렇게 해 왔듯이 발정기가 되면 짝을 지어 후손을 남기는 것이다. 이것이 축생의 살아 가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이 식욕과 성욕으로만 산다면 사실상 축생과 다름없는 삶이다. 먹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

종교 2020.08.15

출가의 삶도 어렵고 재가의 삶도 어렵다

세상에 두 가지 삶이 있다. 재가의 삶이 있고 출가의 삶이 있다. 재가의 삶도 힘들고 출가의 삶도 힘들다. 재가의 삶은 왜 어려울까? 이는 “세상의 삶은 어렵다. 재가의 삶은 고통스럽다.”(Dhp.302)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재가의 삶은 어려운 것을 넘어서서 고통스런 삶이라고 했다. 재가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생활하려면 직장에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상사와 부하와의 관계를 원만히 해야 한다. 인간적인 갈등이 있으면 매우 고통스런 것이다. 가정에서는 부부관계, 부모자식과의 관계를 원만히 해야 한다. 이러한 재가의 삶에 대하여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거나 커다란 바다를 물로 채우듯, 어렵다.”(DhpA.III.462)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사는 것은 고통스..

종교 2020.08.15

담마의 맛은 일체의 맛을 이긴다

담마의 맛은 일체의 맛을 이긴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점심시간이 되면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먹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이 식당 저 식당 기웃거리며 그날 컨디션에 맞는 메뉴를 골라 먹는다. 탁월한 선택이 되었을 때 만족한다. 다음 배고플 때까지 잊어버린다. 세상에 먹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을 투자해서 근사한 식탁을 차려 놓는다. 혼자 먹기가 아쉬워서일까 인터넷에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보는 사람은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어쩌라구요?”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눈으로만 먹을 뿐이다. 최상의 맛이 있는데 맛은 먹는 것에만 있지 않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먹고 나면 포만감에 쳐다보지 않는다. 배고플 때까지는 아무리 맛난 음식도 한계가 있다. 맛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종교 2020.08.09

청정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청정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불교인들은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출가한 스님조차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 페이스북에서 어느 스님은 출가자의 무지에 대한 글을 올렸다. 하안거를 맞이하여 선원에서 정진하고 있는데 종회의원을 8번 했다는 스님과의 대화에 대한 것이다. 종회를 8선했다는 스님은 선원에서 안거를 나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잘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교에 대한 무지이다. 종회 8선을 했으면 거의30년 종단권력을 쥐고 있었던 권승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스님의 탄식 스님에 따르면 권승은 선원 생활이 재미가 없고 답답하고 따분하다고 했다고 한다. 마침 기회가 되어서 차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권승들의 무지를..

종교 2020.08.09

미얀마스님은 왜 환속했을까?

미얀마스님은 왜 환속했을까? 강동에 있는 선원이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선원은 폐쇄되었을까?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잘 나가던 스님이 만든 선원이다. 그것도 외국스님이다. 미얀마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진 선원이다. 그런데 왜 폐쇄됐다고 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의문은 풀렸다. 최근 모임을 하나 가졌다. K선생의 출간과 관련된 모임이다. 식사가 끝나고 D선생 댁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차담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그 강동에 있었던 선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D선생은 “이샘은 아직도 몰랐어요?”라며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참으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 떠 올..

종교 2020.08.09

우주가 무너지고 있다고 명상하면

우주가 무너지고 있다고 명상하면 여기 깨달은 자가 있다. 깨달은 자에게도 번뇌가 일어날 수 있을까? 만일 그가 화를 낸다면 그는 깨달은 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질투한다면, 그가 시기한다면 그는 깨달은 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깨달은 자라면 번뇌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금요니까야 강독모임이 7월 24일 금요일 저녁에 열렸다. 7월 들어 두번째 모임에서 강독한 경은 ‘무명이 사라져 명지가 일어난 뒤에도 번뇌가 들이닥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자이나교의 숙명론 앙굿따라니까야 ‘밥빠의 경’(A4.195)이 있다. 목갈라나존자는 니간타 교도 밥빠에게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가 일어난 뒤에 미래에 괴로운 느낌을 초래할 번뇌가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신구의 삼업이 청정한 자에게도 번뇌가 일어날 ..

종교 2020.08.01

은둔자의 불교

은둔자의 불교 두 가지 유형의 출가자가 있다. 하나는 ‘은둔자형’이고, 또 하나는 ‘사회참여자형’이다. 대개 은둔자형이기 쉽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를 했다는 것은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자기자신과 단절했으므로 세상과의 단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은둔자형은 요즘 유행하는 ‘자연인’을 연상케 한다. 깊은 산중에서 홀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세상과 단절하고 세상과 인연을 끊은 채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사는 사람이다. 자급자족이 원칙이다. 그러나 완전히 세상과 단절할 수 없다. 자급자족하더라도 쌀은 사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참여자형이 있다. 탁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출가자는 탁발에 의존했다. 그래서 빅쿠(bhikkhu)라고 한다. 빅쿠는 무엇으로 사는가? 빅쿠는..

종교 2020.08.01

성철스님의 봉암사 결사

성철스님이 회고하는 봉암사 結社 ***************** 성철스님 / 대한불교조계종 제6.7대 종정 지나간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예전 봉암사에 살던 얘기입니다. 요새 와서 봉암사 살던 것을 묻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지금 봉암사에서 잘해 보겠다고 사람이 일부러 와서 묻기도 하고, 딴 사람들도 이야기 좀 해 주었으면 하는데, 사실 보면 봉암사에 여럿이 함께 살았지만은 내가 주동이 되어 한 만큼, 내가 그 이야기를 하기는 곤란합니다만 여러 형편으로 봐서 조금 이야기 하겠습니다. 봉암사에 들어 간 것은 정해년丁亥年[1947년 - 편집자주], 내 나이 그때 36세 때입니다. 지금[1982년 - 편집자주]부터 35년 전입니다. 봉암사에 들어가게 된..

종교 2020.07.26

자신의 삶이 사랑스럽다면 남의 삶도

자신의 삶이 사랑스럽다면 남의 삶도 시장은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평소 시장을 잘 알던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뚱한다. 에스엔에스에서는 그럴 분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심지어 음모론까지 이야기한다. 일은 벌어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최악의 선택은 죽음이다. 사람이 죽었다. 죽은 자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가혹하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억울함을 밝혀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단순히 의혹만 가지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죽었다. 누군가는 “죽는 것이 대수인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도덕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

종교 2020.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