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323

비가 와서 좋은 날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 장마철 새벽에 떠오른 말이다. 예경지송 추모경송품에도 실려있는 시수념(死隨念)에 대한 문구이다. 삶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정해진 수명이 없음을 말한다. 백세시대를 말하지만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죽을 조짐도 없다. 언제 죽을 것이라고 알려 주지 않는 것이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서가 있다. 우다나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그때 한 수행승이 세존께서 계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몸을 바로 세우고 예전의 업이 성숙하여 생겨난 괴롭고 찌르고 아리고 쓰라린 고통을 참으면서 새김을 확립하고 일아차리며 고뇌를 여의고 앉아 있었다.”(Ud.21) 수행승이 병에..

종교 2020.06.27

오온이라는 마구니

오온이라는 마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즐기는 것뿐이다. 즐기는 삶에는 바쁘지만 자신을 향상시키는 삶에는 게으르다. 그런 그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오늘 새벽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즐기는 삶을 사는 사람은 마라가 아닐까?”라고. 악마의 군대 불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이 세상을 삼계로 나눈다. 그래서 욕계, 색계, 무색계라고 한다. 욕계는 6도라 하여 여섯 개의 세계가 있다. 육도 중에 욕계천상이 있다. 모두 여섯 개의 천상이 있다. 그 중에서 최상위 천상이 타화자재천이다. 타화자재천은 욕계에서 최상층에 있다. 그런 타화자재천은 욕망이 극대화된 세계이다. 직접 즐기는 것 보다 자신이 창조한 대상이 즐기는 것을 보고 즐기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

종교 2020.06.27

불기자심(不欺自心)

閔在鏞 불기자심(不欺自心) - 내부고발자를 기다리며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하던 한 청년이 해인사 백련암 성철 스님(1912~1993)을 찾아갔다. “스님, 좌우명을 하나 주십시오.” 삼천배로 녹초가 된 청년에게 스님이 말했다. “쏙이지 말그래이.” 굉장한 한말씀을 기대했던 청년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툭 던지는 스님의 말에 실망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와? 좌우명이 그래 무겁나. 무겁거든 내려놓고 가거라.” 청년은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성철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꼬박 20년을 곁에서 모셨던 원택 스님 이야기다. ‘불기자심(不欺自心)’,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는 본래 성철 스님 자신의 화두였다. 가끔 휘호로도 썼다고 한다. 백련암에는 성철 스님이 쓴 이 휘호가 액자로 걸려 있다..

종교 2020.06.20

곡과 마곡의 전장(戰場) 골란고원

에스겔 38장과 39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곡과 마곡의 전쟁의 주역인 러시아, 이란, 터키가 이스라엘과 국경을 연접한 시리아에 병력을 집중하면서 곡과 마곡 전쟁의 전장으로 알려진 골란고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관련기사>> “골란고원에 드리운 전운”, (주간동아) 시리아 남서부에는 평균 해발 1000m의 골란고원이 있는데, 서쪽으로 이스라엘, 남쪽으로 요르단, 북쪽으로 레바논과 맞닿은 골란고원은 남북 길이 71km, 동서 최대 너비 43km, 면적 1800km2로 여의도 넓이의 140배나 되는 거대한 구릉지대이다. 본래 시리아가 지배하던 골란고원은 1967년 6월 5~10일 엿새간 벌어진 6일 전쟁에서 시리아가 패배하면서 이스라엘에 편입되었다. 이 영토를 탈환하고자 시리아는 이집트와 함께 1973년..

종교 2020.06.20

괴로움을 없애는 마법의 주문

왜 세상은 존재하는 것일까?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세상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 조띠까 사야도는 ‘마음의 지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왜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있음인가요?” 이것을 진정으로 이해하면 충격일 것입니다. 꽃이 있고, 나무가 있고, 곤충과 동물, 인간, 행성이 있는 것은 매우 경이롭습니다. 왜 아무것도 없음이 아닌가요? 어째서 어떤 것이 있나요? 어떤 것이 있는 그 자체로 놀랍습니다.”(139쪽) 우 조띠까 사야도는 ‘있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이런 말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통찰을 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달리 보였다.”라..

종교 2020.06.20

'나고 죽고' 하긴 하는데 실은 나고 죽는 일이 없다

유당(幽堂) '나고 죽고' 하긴 하는데 실은 나고 죽는 일이 없다 여러분 학창시절에 '질량불변(質量不變)의 법칙'이라는 걸 배운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이 '법칙'의 내막을 잘 살펴보면 화학변화가 일어날 때, 그 외양은 분명히 변하는데, 또 화학변화가 일어나기 이전과 이후로는 그 질량(무게)도 분명히 달라지는데, 그러나 화학변화 과정에서 날아가 버린 것들까지 모두 합친다면, 총체적으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외양으로 볼 때에는 분명히 변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는 게 바로 '질량불변의 법칙'인 겁니다. 그래서 이 법칙을 증명하는 실험을 할 때에는 레토르트 (retort)라는 밀폐된 용기를 사용하는 겁니다. 만약 우리들이 '우주'라는 이름의 거대한 레토르트를 사용했다면 과연 무슨 ..

종교 2020.06.14

말 할 수 없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꿈을 꾸었다. 운명에 대한 것이다. 이상행동을 하는 것에 대하여 운명론적으로 본 것이다. 꿈속에서 본 것에 대해 수긍했다. 상징에 대한 것이 들어 맞았기 때문이다. 이런 꿈은 드물다. 대부분 꿈은 엇박자가 난다. 나의 생각과 들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의식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때 또 다른 무의식 세계의 표현일 것이다. 선잠을 잤을 때 그렇다. 그러나 수면의 질이 좋았을 때는 꿈의 질도 좋다. 한때 꿈을 분석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이전의 일이다. 칼 구스타프 융의 꿈의 분석을 보고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이부영 교수가 지은 융과 관련된 3부작을 여러 번 읽었다.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 그리고 자기와 자기실현에 대한 것이다. 주로 무의식에 대..

종교 2020.06.14

통증의 발생에서 소멸까지

하루 24시간을 산다. 한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누군가에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픈 사람에게는 길게 느껴질 것이다. 고문 받는 사람은 일각이 여삼추일 것이다. 그렇다면 수행하는 사람에게 한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어리석은 자의 품에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자에게 길은 멀다.”(Dhp.60)라는 게송이 있다.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다고 했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밤이 늦어도 오지 않을 때 째깍째깍 초침 돌아 가는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게송에서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이 길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하나는 수행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아픈 자에 대한 것이다. 여기 밤새도..

종교 2020.06.14

겉사람(육)과 속사람(영)

조가롯 겉사람(육)과 속사람(영)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고린도후서 4:16) 성경은 육체를 말하는 구약과 영체를 말하는 신약으로 나누어집니다 마귀로 부터 죄가 들어옴으로 겉사람 육체가 영생체를 입지 못하고 속사람 영생체가 죽어 버렸습니다. 예수는 거룩한 영생체로 오셔서 겉사람(무덤)에서 새로운 말씀의 씨(살려주는 영)으로 죽은 우리의 영을 살리시고 그들이 믿음으로 순교와 죽음을 통해 예수 처럼 3일 만에 영생의 옷을 입고 수많은 자들이 영생하는 새하늘과 새땅에 2000년 동안 들어갔습니다 겉사람의 문은 눈에 보이는 허상의 마귀 세상과 하나로 연결된 생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죄와 하나된 겉사람) 속사람의 문은 보이지 않는 실상의 하나님과 히나로 연결된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겉..

종교 2020.06.07

생멸을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생멸을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이 말이 갑자기 와 닿는다. 금강경에 있는 구절이다. 금강경에서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하여, 이는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라는 말로 풀이된다.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라는 말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마음은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일어나서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흔히 ‘생주이멸’이라고 하지만, 응무소주라는 가르침에 따르면 머묾(住)과 변화(異)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있다면 생과 멸만 있을 뿐이다. 우주는 ‘성주괴공’하고 사람은 ‘생노병사’하듯이, 마음도 ‘생주이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맞지 않는 말이다. 마음을 잘 관찰하면 마음은 조건에 따라 단지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이다...

종교 2020.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