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출가의 삶도 어렵고 재가의 삶도 어렵다

황령산산지기 2020. 8. 15. 09:00

세상에 두 가지 삶이 있다. 재가의 삶이 있고 출가의 삶이 있다. 재가의 삶도 힘들고 출가의 삶도 힘들다.

 

재가의 삶은 왜 어려울까? 이는 세상의 삶은 어렵다. 재가의 삶은 고통스럽다.”(Dhp.302)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재가의 삶은 어려운 것을 넘어서서 고통스런 삶이라고 했다. 재가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생활하려면 직장에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상사와 부하와의 관계를 원만히 해야 한다.

인간적인 갈등이 있으면 매우 고통스런 것이다. 가정에서는 부부관계, 부모자식과의 관계를 원만히 해야 한다.

 

이러한 재가의 삶에 대하여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거나 커다란 바다를 물로 채우듯, 어렵다.”(DhpA.III.462)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사는 것은 고통스럽다.”라고 한 것이다.

 

출가의 삶은 어떨까?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면 행복한 것일까?

법구경에 따르면 출가는 어렵고 거기서 기뻐하기도 어렵다.”(Dhp.302)라고 했다.

주석에 따르면 크거나 작거나 재산을 버리기 어렵고 모임이나 친지를 버리고 승원에 들어가 헌신하는 것은 어렵다.”(DhpA.III.462)라고 했다.

 

어려움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승원에 들어가 탁발생활을 하며 수많은 계율을 지키며 여법하게 가르침에 일치하게 살면서 승원생활을 즐기는 것은 어렵다.”라고 했다.

 

출가의 의무와 재가의 의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재가의 삶도 어렵고 출가의 삶도 어렵다. 삶이 힘든 것에 대하여 테라가타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출가는 힘들고 재가의 삶도 힘들다.

진리는 심오하고, 부는 얻기 힘들다.

이러나저러나 우리의 삶은 간고하고,

항상 무상을 사유하는 것이 옳다.”(Thag.111)

 

 

법구경 302번 게송과 유사한 구조이다. 공통적으로 출가의 삶도 어렵고 재가의 삶도 어렵다고 했다.

이는 제대로 살기가 어려움을 말한다. 출가자로서 의무와 재가자로서 의무를 다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출가와 재가의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이는 진리는 심오하고, 부는 얻기 힘들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출가의 삶을 산다면 진리는 심오해서 보기 어렵고, 재가의 삶을 산다면 부는 얻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왜 그럴까?

 

주석에 따르면 정법을 꿰뚫는다는 것은 심오한 앎의 영역이기 때문에 보기 어렵다.

부는 괴롭게 고생해서 얻기 때문에 어렵다.”(DhpA.I.234)라고 했다.

 

날개 부러진 늙은 왜가리

 

출가의 삶이 어려운 것은 진리의 영역이고, 재가의 삶이 어려운 것은 부의 영역임이 분명하다.

재가의 삶을 살다가 출가의 삶을 살게 되면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해탈과 열반을 지향하는 청정한 삶을 살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재가의 삶을 살려면 경제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돈을 벌어야 재가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다.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젊어서 청정한 삶을 살지 않고

재산도 모으지 못했으니

고기 없는 연못에 사는

늙은 백로처럼 죽어간다.”(Dhp.155)

 

 

요즘 생태하천에 가면 백로를 종종 볼 수 있다. 백로를 왜가리라고도 한다. 늘 혼자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가까이 가면 멀리 도망가 버린다.

그런데 고기 없는 연못에 사는 늙은 백로가 있다는 것이다.

물은 말라서 더 이상 고기가 살 수 없는 곳에서, 그것도 날개가 부러진 왜가리가 있다면 처량해 보일 것이다.

 

출가자가 출가의 삶을 살면서 진리를 보지 못했다면 고기없는 연못에 사는 늙은 백로와 다름없을 것이다.

재가의 삶을 살면서 모아 놓은 재산도 없다면 역시 고기없는 연못에 사는 늙은 백로와 다름없을 것이다.

 

출가의 삶은 청정한 삶이 목적이고, 재가의 삶은 부유한 삶이 목적이다.

이 두 가지는 늙어서는 이루기 힘들다. 젊을 때 힘이 있을 때 이루어 놓아야 한다.

 

나이가 젊을 때, 머리가 칠흑처럼 젊을 때 출가하는 것은 진리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업생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늘 밤에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한살이라도 젊을 때 출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출가자 삶의 지향점은 청정한 삶에 있다. 탁발 등으로 청정한 삶을 살았을 때 해탈과 열반에 이르기 쉬움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청정한 삶은 브라흐마짜리야(Brahmacariya)를 말한다.

바라문인생사주기에서 학습기가 연장된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똥벌레와 같은 삶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가의 삶은 부유한 삶이 목적이다. 이는 재산으로 나타난다.

재산이 있어야 가족에게나 사회적으로 존중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재산은 모으기 힘들다는 것이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현재 이루어진 부는 이마의 땀과 팔의 힘으로 근면하게 이룩한 것일수도 있다.

반면에 불법과 편법, 탈법으로 이루어진 불로소득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서나 재산이 있으면 존중된다는 사실이다.

부자를 시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존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재가의 삶은 돈 버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돈 벌기 싫어도 돈벌기 선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돈이 미덕인 사회에서 돈은 어떤 것일까?

설령 그 돈이 정당한 것이건 불로소득에 의한 것이든간에 똥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상윳따니까야 똥벌레의 경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그 똥벌레는 나는 똥을 먹고 똥으로 배를 채우고 똥으로 충만하고도 내앞에 큰 똥덩이가 남아 있다.’고 다른 똥벌레를 무시한다.”(S17.5)

 

 

돈 많은 사람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부자의 자만에 따른 것이다.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인지 모른다.

마치 많이 배운 자는 적게 배운 자를 무시하는 배운자의 자만과도 같은 것이다.

출생의 자만도 있다. 똥벌레와 같은 삶이다.

 

똥은 조금만 묻어도

 

똥벌레는 똥을 먹고 산다. 똥을 많이 가진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래서 똥을 적게 가진 똥벌레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자는 가난한자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부자의 가난한자에 대한 경멸은 똥을 많이 가진 똥벌레가 똥을 적게 가진 똥벌레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설령 그것이 불법과 탈법, 편법에 따른 불로소득에 의한 것일지라도 소유하고 있을 때 자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하여 구린내 난다고 말할 수 있다.

 

구린내는 역겹다. 똥통에서 구린내가 나면 참기 힘들다. 똥이 조금 튀겼을 때 몹시 불쾌하다. 똥의 특징이 있다.

이는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아주 소량만 있어도 똥은 악취를 풍긴다.(A1.348) 라는 가르침에서 알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 똥의 가르침도 있다.

앙굿따라니까야 똥의 경(gūthasutta)’(A1.348)에 실려 있는 가르침에 따르면 똥은 조금만 묻어도 악취가 난다고 했다.

부처님은 왜 똥의 가르침을 말했을까?

 

이는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손가락이 튕기는 동안 존속하며 소량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존재에 대하여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A1.348)라고 했다.

 

부처님은 존재를 똥으로 비유했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똥과 같아서 구린내가 남을 말한다.

똥은 짧게 존재해도 구린내가 나고 소량만 있어도 구린내가 난다.

마찬가지로 결생하면 오래 살건 짧게 살건 구린내 나는 삶을 살수밖에 없다.

더구나 세세생생 산다면 어떻게 될까?

 

부처님의 똥의 가르침을 보면, 똥처럼 말하는 자가 있다. 어떤 자를 말할까?

 

이는 자신을 위해 혹은 타인을 위해 또는

어떠한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 (A3.28)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말하는 자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이 똥처럼 말하는 사람이다.(A3.28)라고 했다.

 

거짓말을 일삼는 자를 똥처럼 말하는 자라고 했다. 그렇다면 불법과 탈법, 편법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긴 부자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똥과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생 한번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 생에서 그랬고 앞으로 생도 그럴 것이다. 존재하는 한 똥구덩이와 같은 세상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똥구덩이가 세월이 지나면 똥으로 가득차듯, 부정한 자는 참으로 깨끗해지기 어렵다.”(Stn.279)라고 했다.

 

출가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반승반속의 삶이 될 수 있다. 반승반속의 삶은악취나는 삶이다. 이는 청정도론 제1장 계행에서 여러해 쌓인 분뇨구덩이처럼 청정해지기 어렵다. 화장터의 타다 남은 장작처럼 출가와 재가의 양자에서 소외된다.”(Vism.1.154)라고 했다. 이띠붓따까에 따르면, 반승반속의 삶에 대하여 재가자로서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수행자의 목적도 성취할 수 없는 삶’(It.89-90)이라고 했다.

 

쏘아져 버려진 화살

 

출가자는 진리는 추구하고 재가자는 돈을 추구한다. 출가자가 진리를 추구하여 성자가 되면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다. 재가자가 큰 돈을 벌었다면 역시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이 있다는 것이다. 고기 없는 연못에 날개가 부러진 늙은 왜가리와 같은 삶이다.

 

대부분 왜가리와 같은 삶을 산다. 나이 들어 늙어졌을 때 아무 쓸모 없는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젊어서 청정한 삶을 살지 않은 출가자, 젊어서 재산을 모아 놓지 못한 사람은 날개가 부러진 늙은 왜가리와 같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지난날을 한탄하며 보낼 것이다. 그래서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누워서 옛날을 애도한다.”(Dhp.156)라고 했다.

 

활 시위를 떠난 화살은 버려진다. 숲에서 화살을 쏘면 버려지는 것이다. 숲 어디엔가 버려진 화살은 재사용되지 않음을 말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태어난 이상 죽음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음은 예고 없이 다가 온다.

 

언제 올지 모르는 것이 죽음이다. 오늘 밤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젊어서 출가하는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을 때 도와 과를 이루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천년만년 살것처럼 즐기는 삶을 산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을 것이다. 고기 없는 연못에 사는 늙은 왜가리처럼, 쏘아져 버려진 화살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무상을 사유하는 삶

 

출가의 삶과 재가의 삶이 있다. 출가의 삶은 진리를 추구하고 재가의 삶은 돈을 추구한다. 어느 것이든지 어렵고 고됨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간고하다.’(Thag.111)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이 무상하다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출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모두 출가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재가의 삶을 살면서도 무상을 사유하며 살 수 있다. 그래서 출가의 삶이나 재가의 삶이나 항상 무상을 사유하는 것이 옳다.”라고 했다. 무상을 사유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주석에 이런 내용이 있다.

 

 

“ ‘생성과 소멸을 지녔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항상하는 것은 없으므로 무상하다.’고 생각하고 통찰하는 것이 옳다. 무상에 대한 관찰을 성취함으로써 덧없음에 대한 관찰이 잘 성취된다.

 

무상한 것은 괴롭고 괴로운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긋남이 없기 때문에 무상한 것은 괴롭고, 괴로운 것은 실체가 없다.’(S22.15)라고 부처님께서 말했다.

 

어떠한 것이든 생겨난 것은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 괴멸되는 것은 형성된 것들이다. 이러한 상호부정 (paikkhepa)을 통해서 계속해서 생겨나는 사유를 통제하며, 무상을 통해 통찰을 닦아, 할 일을 마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ThagA.I.235)

 

 

출가자나 재가자나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라면 해탈과 열반을 목표로 한다. 이는 출가자나 재가자나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출가자는 재가자에서 나오고, 출가자는 다시 재가로 돌아 갈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출재가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출가의 삶에서나 재가의 삶에서나 항상 가르침과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은 청정한 삶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상에 대한 지각이 있어야 한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고, 괴로운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S22.15)라고 아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가 생겨났을 때 더 이상 세상에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출가의 삶도 어렵고 재가의 삶도 어렵다

 

무상에 대한 지각을 하면 모든 것을 놓아 버릴 수 있다. 이렇게 무상에 대한 지각을 하면 오온이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알게 된다. 오온에 대한 무상의 지각은 결국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S22.15)라고 아는 것이 된다.

 

출가의 삶이나 재가의 삶이나 세상속에 살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삶을 말한다. 이는 부처님이 여래는 세상에서 성장했으나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지낸다.”(S22.94)에서 알 수 있다. 출가의 삶도 어렵고 재가의 삶도 어렵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 묻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Stn.71)

 

 

2020-08-1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