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에 묻어둔 꿈
유쾌한 놀이 '스포츠'
이지훈 -철학박사 한국해양대 강사
사람들은 저마다 접어버린 꿈이 있다. 화가나 무용수가 되고 싶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인, 혹은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 하던 사람도 있다. 모두들 이런 꿈을 가슴 한 쪽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꿈을 나름대로 지켜가는 이들도 있다. 꼭 직업이 아니라 해도, 혹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묵묵히 꿈을 이어나가는 이들이 있다. 마치 예전 사람들이 화로에 불씨를 묻어두고 소중히 지켰듯이 말이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취미'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취미 속에는 진실이 있다. 한 사람의 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생계를 목표로 하는 '생업'에서는 볼 수 없는 생동감이 있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까. 즉각적이며 자발적이니까. 그러니 진지할 수밖에 없다. 취미는 이 진지함 속에서 생업과 맞선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취미는 삶을 진정 살 만한 것으로 만든다.
스포츠의 원래 뜻도 비슷하다. 모두가 알겠지만 스포츠라는 말은 '저쪽으로 옮기다'라는 뜻의 라틴어 데포라타레(deporatare)에서 나왔다. 생계를 위한 노동, 혹은 골치 아픈 일을 잠시 옆으로 치워놓고 즐기는 활동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고대 올림픽처럼 종교적 제의라는 색채도 없다. 오직 유쾌한 '놀이' 정신에서 출발한다. 이 낱말이 불어를 거쳐 영어가 된 게 15세기라 한다면 우리는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마저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스포츠는 전쟁이 아니다. 스포츠를 너무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원래 취지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단지 가벼운 유희로만 여기는 것 역시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스포츠에도 진지한 측면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런 측면에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마추어'의 뜻이 '애호가'이며, 말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스포츠는 본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브라질의 마라톤 선수 '리마'를 기억하는가?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는 비록 결승점을 앞두고 괴한에게 떠밀려 넘어졌지만, 화내지 않았다. 원망하지도 않았다. 원래 프로 축구선수였던 그는 마라톤의 매력에 이끌려 스스로 마라톤 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즐거울 수밖에. 결승점에 들어서며 그는 환하게 웃었고, 두 팔을 벌린 채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제야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의 꿈은 새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라톤을 할 때 그는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새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거문고가 좋아서 홀로 거문고를 뜯는 선비는 굳이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제 흥에 겨워 가슴속 정(情)을 풀어낼 뿐이라고 했다. 추사 김정희는 일금십연재(一琴十硯齋)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번 상상해 보라. 벼루 열 개를 갈아 없앨 만큼 글공부에 골몰하다 문득 벼루를 치워두고 거문고를 즐기는 모습. 이것은 어쩌면 글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거문고를 즐기는 것은 그가 인생을 사는 또 다른 방식이며, 천재 김정희에서 인간 김정희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물론 학문을 떠난 '나들이'라도 그것이 늘 새로운 정신의 깊이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러니 거문고 하나를 벼루 열 개와 대등하게 사랑했던 것이다.
이런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너무 심각하지도 않다. 그래서 한갓 승부에 매달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궁극적으로 남을 이기는 문제가 아닐 테니까.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정조 때 나온 책이다. 나는 여기 삽화에 나오는 인물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인물이 환하게 웃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은 군사훈련 교재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끔찍한 전쟁 뒤에 임금의 각별한 지시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럼에도, 웃고 있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마음 좋게 웃고 있다. 나는 이 웃음을 아름답게 생각한다. 요즘들어 우리가 잃어가는 것 가운데 하나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쾌한 놀이 '스포츠'
이지훈 -철학박사 한국해양대 강사
사람들은 저마다 접어버린 꿈이 있다. 화가나 무용수가 되고 싶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인, 혹은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 하던 사람도 있다. 모두들 이런 꿈을 가슴 한 쪽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꿈을 나름대로 지켜가는 이들도 있다. 꼭 직업이 아니라 해도, 혹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묵묵히 꿈을 이어나가는 이들이 있다. 마치 예전 사람들이 화로에 불씨를 묻어두고 소중히 지켰듯이 말이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취미'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취미 속에는 진실이 있다. 한 사람의 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생계를 목표로 하는 '생업'에서는 볼 수 없는 생동감이 있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까. 즉각적이며 자발적이니까. 그러니 진지할 수밖에 없다. 취미는 이 진지함 속에서 생업과 맞선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취미는 삶을 진정 살 만한 것으로 만든다.
스포츠의 원래 뜻도 비슷하다. 모두가 알겠지만 스포츠라는 말은 '저쪽으로 옮기다'라는 뜻의 라틴어 데포라타레(deporatare)에서 나왔다. 생계를 위한 노동, 혹은 골치 아픈 일을 잠시 옆으로 치워놓고 즐기는 활동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고대 올림픽처럼 종교적 제의라는 색채도 없다. 오직 유쾌한 '놀이' 정신에서 출발한다. 이 낱말이 불어를 거쳐 영어가 된 게 15세기라 한다면 우리는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마저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스포츠는 전쟁이 아니다. 스포츠를 너무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원래 취지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단지 가벼운 유희로만 여기는 것 역시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스포츠에도 진지한 측면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런 측면에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마추어'의 뜻이 '애호가'이며, 말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스포츠는 본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브라질의 마라톤 선수 '리마'를 기억하는가?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는 비록 결승점을 앞두고 괴한에게 떠밀려 넘어졌지만, 화내지 않았다. 원망하지도 않았다. 원래 프로 축구선수였던 그는 마라톤의 매력에 이끌려 스스로 마라톤 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즐거울 수밖에. 결승점에 들어서며 그는 환하게 웃었고, 두 팔을 벌린 채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제야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의 꿈은 새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라톤을 할 때 그는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새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거문고가 좋아서 홀로 거문고를 뜯는 선비는 굳이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제 흥에 겨워 가슴속 정(情)을 풀어낼 뿐이라고 했다. 추사 김정희는 일금십연재(一琴十硯齋)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번 상상해 보라. 벼루 열 개를 갈아 없앨 만큼 글공부에 골몰하다 문득 벼루를 치워두고 거문고를 즐기는 모습. 이것은 어쩌면 글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거문고를 즐기는 것은 그가 인생을 사는 또 다른 방식이며, 천재 김정희에서 인간 김정희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물론 학문을 떠난 '나들이'라도 그것이 늘 새로운 정신의 깊이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러니 거문고 하나를 벼루 열 개와 대등하게 사랑했던 것이다.
이런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너무 심각하지도 않다. 그래서 한갓 승부에 매달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궁극적으로 남을 이기는 문제가 아닐 테니까.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정조 때 나온 책이다. 나는 여기 삽화에 나오는 인물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인물이 환하게 웃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은 군사훈련 교재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끔찍한 전쟁 뒤에 임금의 각별한 지시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럼에도, 웃고 있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마음 좋게 웃고 있다. 나는 이 웃음을 아름답게 생각한다. 요즘들어 우리가 잃어가는 것 가운데 하나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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