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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와 사람의 순리

황령산산지기 2006. 3. 26. 16:09
아무리 깊은 산골짜기라 하더라도 지금 철이면 산그늘 쪽도 얼음장이 얇아진다. 가만히 귀 대고 들으면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물소리와 함께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동네 한켠 모래 비탈엔 겨우내 얼었다가 풀린 모래들이 도르르, 도르르 아래로 흘러내린다.

내 나이 열 살 때는 그렇게 한눈에 그림을 그리듯 우리 마을에 봄이 오는 길목을 짚었다. 어느 비탈의 산수유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지도 알았고, 어느 밭의 아지랑이가 가장 먼저 피어오르는지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얘기를 듣고도 쉽게 그림을 떠올릴 수 없다. 마을도 달라지고 무엇보다 그때의 봄과 지금의 봄이 달라진 것이다.

매년 이맘때면 생각나는 어릴 때의 동네 누나가 있다. 지금처럼 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바로 이때, 양지밭에서 냉이를 캘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한동안 그 누나의 집 주식은 냉이콩국이었다. 그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 아니라 냉이에 콩가루를 묻혀 끓인 콩국 자체가 주식인 것이다. 그러다 어느 한 끼 보리쌀과 좁쌀 감자를 섞은 밥 한 숟가락을 그 국에 말아 먹는다.

그 누나가 나물을 하면서 “오늘은 밥을 먹나 죽(국)을 먹나, 밥이면 서고 죽이면 누워라, 후여” 하고 칼을 공중에 던져 점을 친다. 그 칼이 공중에서 거꾸로 내려와 땅에 바로 꽂히면 저녁엔 밥을 먹고 윷가락처럼 자빠지면 또 냉이콩국만 먹는다는 뜻이다. 그 시간도 이제 우리는 잊고 산다. 그만큼 우리가 잘살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대신 많은 염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봄이 오는 길목을 바라보듯 이층 서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단지 안의 봄 풍경이 아직 꽃은 피지 않아도 그렇게 화사할 수 없다. 어린 시절에도 늘 이렇게 갖가지 꽃나무와 잎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 어머니는 논밭에 나가 있고, 그러면 혼자 뜨락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 마당가의 나무들과 발밑을 지나는 작은 벌레들, 온 세상이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데도 제풀에 놀라 홰를 치는 닭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림자를 길게 디밀어오는 햇빛, 그 사이로 부는 바람에게 말을 건다. 내 눈에 보이는 너희들의 모습, 너희들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을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창밖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말을 건다. 그러다 가끔 아내에게 한마디씩 듣는다. “혼자 뭘 그렇게 중얼거려요?” 그러면 또 대답한다. “혼자가 아니야. 창밖의 봄이 자꾸 말을 붙여오네.” 정말 꽃보다 잎보다 그 사이를 파고드는 햇빛이 더 예쁜 날들이다. 봄의 속살까지 보인다. 나 혼자 이층 서재에서 바라보는 저 아름다운 시간은 이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요즘 세상 일이 참 많이 시끄럽다. 저 자연을 바라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자연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고, 또 다가올 때를 안다. 사람이 저 자연만큼 자기의 나아가고 물러서는 길을 안다 해도 거듭된 실수와 거듭된 봉변을 다시 저지르지 않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한 가지다. 누구든 이미 ‘추락한 명예’의 회복을 내세워 다시 한 번 욕심을 부리면, 그때부터 그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든다. 아무것도 모른 척해도 국민들은 저 햇빛 속처럼 잘 알고 있는 일을 정작 그 당사자인 총리와 최연희 의원은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이 봄날, 저 밝은 햇볕 속에 이제 제발 당신들 얼굴 안 보고 싶다. 심히 짜증이 난다. 스스로 물러설 시기를 놓치는 사람의 몰골을 보는 일만큼 국민에게 짜증 나는 일은 또 어디 있을까.

이순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