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로 대변되는 당시 이슬람 전통 세밀화가들은 알라의 종에 불과한 인간과 자연을 실물과 똑같이 묘사하는 유럽 화풍을 극히 경계했다. 예술이 신을 향한 절대적 신앙심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만큼 사실적 화풍은 이단을 넘어 신성 모독이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한 일간지가 이슬람계에선 금기인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얼굴을, 그것도 테러리스트로 풍자한 만평을 게재한 게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 언론들은 표현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만큼 중요하다며 무슬림의 독단과 폭력을 부각시키고 있고, 이슬람권은 14억 무슬림을 모욕하고 신성을 모독한 기독교 문명과의 일전까지 불사할 태세다. 물론 사태 확산 배경에는 9·11 테러 이후 도드라진 서로에 대한 무지와 편견, 적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에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무슬림의 몰이해를 탓하고, 다른 한편에선 이슬람 문명의 역사성과 이슬람교의 본성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한 응징을 말한다. 또 파문 확산에 시오니스트와 이란이 적극 개입했다는 음모설까지 나돈다.
‘내 이름은 빨강’의 올리브는 결국 ‘이단자’를 처단한다. 하지만 소설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까닭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연 어떠한 것이 진정한 예술이고 궁극의 경지인가”에 대한 서로의 끊임없는 대화, 치열한 자문과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어디 있느냐는 쉽사리 합의되기 힘들 듯하다. 종교와 자유라는 개념, 가치상의 대치인 만큼 지리멸렬한 공방으로 치닫기 쉽다. 그렇다면 관심은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태를 예방하는 데 모아져야 한다. 그간 서로 너무 몰랐다는 것을 인정하고 관용과 열린 마음을 통해 공존을 도모하는 데 이번 사태의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송민섭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