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과 단군신화가 전하는 한민족의 아름다운 고유사상
천부경은 단군신화가 간직한 상징과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문헌적 자료나 신빙성이 없다는 학계의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화의 과학성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 상징성과 의미의 현재적 해석이 중요하다. 일연 한 사람의 창작으로 신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신화는 신화를 낳은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문헌적 자료의 빈곤이 사상의 부재를 낳는 것은 아니다.
사상은 풍속과 생활, 사람의 심성 속에 남아 내려오기도 한다. 전통이 ‘현재 속에 담긴 과거’라면 현재성과 이상성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 우리의 고유사상이고 심성 아닐까? 때문에 조상의 사유체계를 탐구하는 것은 고대가 그 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록된 우리의 고대 이야기는 단군의 신화와 천부경이 시작이다.
갈등과 대립없는 단군신화
단군 탄생신화는 인본주의와 조화, 상생의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두개의 사상을 천부경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로 압축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접점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신성(神性)과 신의(神意)의 상징으로 나타난 환웅과 땅이라는 물성(物性)을 의미하는 웅녀의 묘합(妙合)이 단군의 탄생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단군은 신성과 물성의 복합체가 됐다. 이런 인간 단군은 천지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변화했다. ‘모사재어인 성사재어천(謀事在於人 成事在於天)’이 아니라 그 반대다. ‘成事在於人’의 개념이다.
천지는 부릴 손발이 없다. 그들의 수족은 사람이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사람에 달렸다는 인식이다. 유교적 하늘 생각과는 정반대다. 하늘·땅을 대리하는 인간의 신분 격상이다. 네 속의 본성 그것이 곧 하느님이기에 인간이 신(神)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서양의 신관과는 다르다. 이런 우리의 고유한 사상이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으로 표출됐다.
사람을 통한 섭리의 성취는 현세의 삶에 대한 한민족 의식의 단면이다. 단군신화에선 갈등과 대립을 볼 수 없다. 천지인 삼재(三才)가 등장하지만 하나(一)가 되는 조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조화는 홀로 되지 않는다. 둘 이상 어울릴 때 작용하는 원리다. 인간과 천지의 단순한 결합도 그것은 탄생에 그치고 만다.
조화는 상인(相因)의 근거가 되는 음양호근(陰陽互根)의 관계라야 한다. 단군신화에 나타난 인간이 신성에만 머물지도, 그렇다고 수성이나 물성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서로가 관계없는 독립된 실체도 아니다. 종속의 관계는 더욱 아니다. 이런 어우러짐이 우리의 사상이다. 천지인의 사유의 틀이다. 신성과 물성을 겸비한 사람을 통해 조화와 균형을 이뤄 하나가 된다. 이것이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혼돈과 갈등은 인간의 본성이 물성(땅)으로 기운 탓이다. 우리의 본성은 마음을 통해 드러난다. 때묻지 않은 본래적 마음은 태양처럼 빛난다. 그와 같은 밝은 빛의 마음을 지닌 사람을 통해 천지가 하나 된다는 것이다. 신성은 자연성이다. 천부경이 밝히는 우리의 인간상은 신성과 물성이 통일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 상이다. 이와 같은 인간상에는 마음의 신성을 살펴 하늘을 능멸할 수 없다. 마음속의 물성을 비춰 자연을 객관적 대상, 다시 말해 인간만을 위한 개발의 희생물로 볼 수 없다. 사람다움과 조화로움, 이 두가지는 천부경과 단군신화가 전하는 한민족의 아름다운 고유사상이다.
천부경은 단군신화가 간직한 상징과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문헌적 자료나 신빙성이 없다는 학계의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화의 과학성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 상징성과 의미의 현재적 해석이 중요하다. 일연 한 사람의 창작으로 신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신화는 신화를 낳은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문헌적 자료의 빈곤이 사상의 부재를 낳는 것은 아니다.
사상은 풍속과 생활, 사람의 심성 속에 남아 내려오기도 한다. 전통이 ‘현재 속에 담긴 과거’라면 현재성과 이상성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 우리의 고유사상이고 심성 아닐까? 때문에 조상의 사유체계를 탐구하는 것은 고대가 그 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록된 우리의 고대 이야기는 단군의 신화와 천부경이 시작이다.
갈등과 대립없는 단군신화
단군 탄생신화는 인본주의와 조화, 상생의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두개의 사상을 천부경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로 압축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접점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신성(神性)과 신의(神意)의 상징으로 나타난 환웅과 땅이라는 물성(物性)을 의미하는 웅녀의 묘합(妙合)이 단군의 탄생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단군은 신성과 물성의 복합체가 됐다. 이런 인간 단군은 천지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변화했다. ‘모사재어인 성사재어천(謀事在於人 成事在於天)’이 아니라 그 반대다. ‘成事在於人’의 개념이다.
천지는 부릴 손발이 없다. 그들의 수족은 사람이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사람에 달렸다는 인식이다. 유교적 하늘 생각과는 정반대다. 하늘·땅을 대리하는 인간의 신분 격상이다. 네 속의 본성 그것이 곧 하느님이기에 인간이 신(神)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서양의 신관과는 다르다. 이런 우리의 고유한 사상이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으로 표출됐다.
사람을 통한 섭리의 성취는 현세의 삶에 대한 한민족 의식의 단면이다. 단군신화에선 갈등과 대립을 볼 수 없다. 천지인 삼재(三才)가 등장하지만 하나(一)가 되는 조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조화는 홀로 되지 않는다. 둘 이상 어울릴 때 작용하는 원리다. 인간과 천지의 단순한 결합도 그것은 탄생에 그치고 만다.
조화는 상인(相因)의 근거가 되는 음양호근(陰陽互根)의 관계라야 한다. 단군신화에 나타난 인간이 신성에만 머물지도, 그렇다고 수성이나 물성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서로가 관계없는 독립된 실체도 아니다. 종속의 관계는 더욱 아니다. 이런 어우러짐이 우리의 사상이다. 천지인의 사유의 틀이다. 신성과 물성을 겸비한 사람을 통해 조화와 균형을 이뤄 하나가 된다. 이것이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혼돈과 갈등은 인간의 본성이 물성(땅)으로 기운 탓이다. 우리의 본성은 마음을 통해 드러난다. 때묻지 않은 본래적 마음은 태양처럼 빛난다. 그와 같은 밝은 빛의 마음을 지닌 사람을 통해 천지가 하나 된다는 것이다. 신성은 자연성이다. 천부경이 밝히는 우리의 인간상은 신성과 물성이 통일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 상이다. 이와 같은 인간상에는 마음의 신성을 살펴 하늘을 능멸할 수 없다. 마음속의 물성을 비춰 자연을 객관적 대상, 다시 말해 인간만을 위한 개발의 희생물로 볼 수 없다. 사람다움과 조화로움, 이 두가지는 천부경과 단군신화가 전하는 한민족의 아름다운 고유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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