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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니콘, 순수에 대한 향수 2002.1.9.

황령산산지기 2007. 2. 1. 11:29


유니콘, 시각1

"일각수와 함께 있는 귀부인 La Dame à la Licorne"
6개의 태피스트리 연작 중 "시각 La Vue" (부분)
1500년경, 3.5 x 3.5 m, 클뤼니 박물관, 파리


유니콘, 시각2     일각수 또는 유니콘 Unicorn 은 중세 유럽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매력적인 상상의 동물입니다. 현대인들에게도 한 개의 뿔을 지닌 하얀 말의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죠.

    우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접하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토머스 불핀치 Thomas Bulfinch (1796-1867) 라는 미국의 실업가에 의하여 정리된 것인데, 그 책 속에는 여러가지 전설 상의 동물들도 따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불핀치에 의하면 유니콘의 존재는 고대 로마의 저서에 이미 등장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몸은 말, 머리는 사슴, 발은 코끼리, 꼬리는 산돼지, 소리는 황소 울음소리를 닮은, 한 개의 검은 뿔이 이마에 난 사나운 짐승"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늦어도 중세 후기에 와서는, 그 시대의 태피스트리(벽에 거는 장식 직물)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인들이 떠올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유니콘의 이미지가 정립된 것 같습니다.


유니콘, 후각    "일각수와 함께 있는 귀부인"이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이 태피스트리 연작은 전부 6장으로, 시각,청각,미각 등 인간의 다섯가지 감각과 한가지 욕망을 각각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른쪽 위가 "시각"이고 오른쪽 아래는 "미각"입니다.

     독일의 문인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926) 가 이 작품을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군요. 저 역시 이 화사하고 우아한 태피스트리 연작이 마음에 듭니다. 특히 "시각" 편에서 귀부인이 마치 아기를 데리고 거울 장난을 치는 것처럼 유니콘의 모습을 다정하게 거울로 비춰주는 모습이 참 온화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유니콘이 나오는 또하나의 유명한 태피스트리 연작으로 "일각수 사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유니콘을 잡는 방법에 대한 중세의 속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죠.

     중세 사람들은 유니콘의 뿔이 독을 물리치는 힘이 있어 귀한 약재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중세 상인들은 유니콘 뿔 가루라고 주장하는 물질을 약재로 종종 팔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유니콘을 잡은 방법에 대해서 (잡았다는 유니콘 자체는 절대 안 보여 주지만...) 그럴듯한 설명을 해주는 거죠.


유니콘, 사냥
"일각수 사냥" 연작 중 6번째
1500년경,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그들에 의하면 유니콘은 경계심이 많은 데다가 그 뿔의 강력하고 신비로운 힘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때문에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니콘에게도 한가지 약점이 있는데, 순결한 젊은 여인을 대할 때는 마음을 놓는다는 거죠.

     그래서 사냥꾼들은 처녀를 유니콘이 다니는 길목에 앉혀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순결한 것을 사랑하는 유니콘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잠이 듭니다. 그러면 처녀가 사냥꾼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유니콘은 잡히게 되는거죠. 왼쪽의 태피스트리 그림은 유니콘이 그런 방법으로 참혹하게 잡히는 장면입니다.

    유니콘은 육체의 순결함(고전적인 의미에서)은 가릴 수 있어도 정신의 순수함은 알아볼 수 없었던 모양이죠. 그래서 믿었던 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잔인하게 잡히게 되는 유니콘은 어리석기도 하고 가엽기도 합니다.


라파엘, 유니콘
일각수를 가진 숙녀의 초상 (1505-1506)
by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1483-1520)
패널에 유채. 보르게제 미술관, 로마


    왼쪽에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의 작품은 유니콘이 순결한 처녀만을 가까이 한다는 속설과 관련있는 그림입니다.

    어느 책에서인가 (...책 제목이 생각이 안 납니다 -_-;;) 이 초상화의 아이러니에 대해 지적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초상화 주문자는 왜 굳이 유니콘까지 동원해서 자신이 처녀임을 강조하고자 하였을까, 화가는 그녀의 굳은 표정과 어색한 유니콘을 통해 오히려 역설적인 의미를 전달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죠.

    "순결"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에 더이상 따르지 않는 현대에는, 유니콘은 순수한 마음이나 뛰어난 지혜의 소유자만이 알아볼 수 있는 존재로서 동화나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게 됩니다.

    중세와는 달리 현대의 유니콘이 겪는 위기는 잡히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입니다. 현대의 전설 속에서 유니콘들은 사람들이 순수와 이상을 잃어버리면서 함께 사라져가는 존재로 나옵니다.

     저는 "마지막 유니콘 The Last Unicorn (미국,1982)" 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자라면서 여러번 보았습니다. 피터 비글 Peter S. Beagle 의 동명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인데, 어렸을 때 처음 본 것보다 어느정도 자라서 다시 봤을 때 훨씬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터넷으로 그 애니메이션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저는 한가지 놀라운 사실를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인 이 오래된 애니메이션이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열광적인 팬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 이 만화의 참맛을 알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유니콘, 만화2     저는 원작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원작자 피터 비글이 이 애니메이션의 각본을 썼기 때문에 원작 훼손은 거의 없고 오히려 만화가 더 뛰어나다는 평도 많습니다. 미아 패로 Mia Farrow 나 크리스토퍼 리 Christopher Lee 같은 굵직한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했죠.

    영화는 주인공인 유니콘이 자신이 최후의 유니콘이라는 소리를 우연히 듣고 그럴 리가 없다면서 동족들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냥 하얀 말로 보이는 그녀(독특하게도 여기서 유니콘은 여성입니다. 중세 전설에서는 처녀를 숭배하는 남성으로 그려지는 데 반해)는 여정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실수투성이의 순진한 마법사 슈멘드릭 Schmendrick 과 터프한 술집종업원 몰리 Molly Grue 와 만나 동행하게 됩니다.

유니콘, 만화1    그들은 해거드 왕 King Haggard 과 그의 붉은 황소가 유니콘들을 가두어 두었다는 바닷가 성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유니콘은 붉은 황소의 공격을 받고, 슈멘드릭은 황소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그녀를 사람으로 변신시킵니다.

     변신한 유니콘의 일행은 해거드 왕의 성에 들어가는데 성공하지만 그녀는 불멸의 존재로서의 자신의 기억과 정체성을 점차 잃어가고, 슈멘드릭과 몰리는 그녀가 기억을 완전히 잊고 진짜 사람이 되어버리기 전에, 갇혀있다는 다른 유니콘들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한편 해거드 왕의 양자 릴 왕자는 변신한 유니콘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결말은...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만화가 결코 통상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군요. 한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결말 부분 외에도 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부분이 이 애니메이션에 또하나 있습니다.    유니콘은 여행 중에 마미 포투나 Mommy Fortuna 라는 마녀 할멈에게 붙잡히는 적이 있습니다. 포투나는 전설의 동물들을 가두어놓고 사람들에게 구경시키고 돈을 버는데, 사실은 보통 동물들을 마법으로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이지요.

     포투나는 유니콘이 진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신비의 뿔이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유니콘에게 가짜 뿔을 꽂아서 전시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발상입니다. 유니콘은 그런 한심한 상태로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려고 몰려온 사람들을 위해서 가짜 뿔에 신비한 광채를 내줍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감탄하는 구경꾼들 중 한 젊은 여인의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제게는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서글픈 장면이었습니다...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http://ncolumn.daum.net/isis177



일각수들 (전설-고요한 바다) Unicorns (Legend - Sea Calm) (1906)
by 데이비스 Arthur Bowen Davies (1862-1828)
캔버스에 유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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