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스크랩] 인어의 유혹 2002.7.4.

황령산산지기 2007. 2. 1. 11:30

물의 요정들 Naiads 의 놀이 (1886)
by 뵈클린 Arnold Böcklin (1827-1901)
나무에 유채, 150 x 104 cm, 바젤 미술관, 바젤


    짙은 붉은빛으로 물결치는 거리, 초록빛 잔디밭, 그 위를 눈부시게 튀어다니는 금빛 무늬의 하얀 공 때문에, 날이 조금 더워질 때면 늘 그리워졌던 짙푸른 바다, SF 영화의 금속 광택, 그리고 처녀귀신의 하얀 소복을 아예 잊고 있었습니다. ^^ 이제 그것들이 슬슬 생각나기 시작하는군요...6월의 즐거운 흥분 속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후덥지근한 공기가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으니까요...

    위의 그림은 이런 때 보면 좋을 아주 시원한 그림이죠. 스위스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 뵈클린의 작품인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타고 신나게 놀고 있는 인어들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아기 인어도 있어서 ^^ 여름 휴가를 즐기러 온 한 무리의 가족들처럼 보이는군요.

    그러고보면 인어를 그린 그림들도 참 제각각입니다. 위의 그림처럼 천진난만하고 발랄한 그림들도 있지만, 고혹적이고 어딘지 위험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도 많죠. 아마도 인어의 변덕스러운 속성 때문에 그런 것같습니다.


워터하우스, 인어

인어 A Mermaid (1900)
by 워터하우스 John William Waterhouse(1849-1917)
캔버스에 유채, 98 x 67 cm, 왕립 미술 아카데미, 런던


    워터하우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 인어는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상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붉은색입니다. 옛날 유럽에서는 악마나 마녀가 붉은 머리카락을 가졌다고 믿었다고 해요. 지금도 붉은 머리카락의 미녀는 마녀적인 매력 - 신비롭고 관능적이고 치명적인 - 의 소유자로 여겨집니다. 청순함과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워터하우스의 인어는 인어의 불가사의한 속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죠. 


번존스, 인어
◀ 바다의 깊이 The Depths of the Sea (1887)
    by 번 존스 Sir Edward Burne-Jones(1833-1898)
    포그 미술관, 캠브리지  



    뱃사람들에게 인어는 주로 불길한 존재였습니다. 인어의 노래는 폭풍과 난파의 징조로 여겨졌고, 인어가 뱃사람들을 유혹해서 익사시킨다는 전설도 많았죠. 번 존스의 그림을 보세요. 이 인어는 남자를 놓아주지 않고 익사시켜버릴 것처럼, 아니면 이미 익사한 남자를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인어가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는 전설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부들이 그물에 걸린 인어를 놓아주었더니 그 후로 물고기가 잘 잡혔다거나 그 인어가 폭풍우를 미리 알려 재난을 피하게 해주었다거나 하는 전설들이 있다고 하죠. 이와 비슷한 전설들은 세계 각지에 있습니다.

    "천일야화 Alf laylah wa laylah (아라비안 나이트)"에도 가난한 어부가 그물에 걸린 인어를 놓아준 이야기가 있죠. 그물에서 풀려난 인어는 어부에게 바다 속에서는 귀하고 땅에서는 흔한 과일을 가지고 오면 반대로 바다 속에서는 흔하고 땅에서는 귀한 보석과 바꾸어 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그 어부는 그 제안대로 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인어도 상당한 이윤을 올렸겠군요. ^^ 뛰어난 상인이며 중세 국제무역의 선도자였던 아랍인들에게 어울리는 전설입니다.)

    이처럼 전설에 등장하는 인어의 속성은 복합적입니다. 아마도 옛 사람들은 인어를 바다와 동일시한 모양이죠. 바다는 아름답고 어머니와 같이 넉넉하기도 하지만 거칠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자원과 보물을 주기도 하지만 목숨을 빼앗아 가기도 하죠. 바다는 인간에게 매혹적이면서도 두렵고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인어는 평생 바다를 가까이 하며 사는 뱃사람이나 어부 같은 사람들이 바다에 대해 갖는 사랑, 동경 그리고 미지에서 오는 두려움을 반영하는 존재가 아닐가 생각합니다. 그러니 남성 인어보다 여성 인어가 보편적일 수밖에 없겠죠. 뱃사람이나 어부들은 주로 남성이었으니까요.

    바다와 인어의 불가사의하고 위험한 속성을 잘 나타낸 그림 중에 아래 클림트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 인어들은 인어라기보다는 차라리 물귀신이 적당하겠네요...^^;; 하지만 저는 이 그림이 좋아요. 음침한 녹색 심연과 물고기의 동체로 변하는 여인의 머리카락을 통해서 바다의(또는 여인의?) 두려운 매력을 표현한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클림트, 인어

인어들 Mermaids (Whitefish) (1899)
by 클림트 Gustav Klimt(1862-1918)
캔버스에 유채, 82 x 52 cm, 중앙은행, 빈


    자, 드디어 마그리트의 엽기 인어 그림을 소개해드릴 차례군요. ^^


집합적인 발명 Collective Invention (1935)
by 마그리트 Rene Magritte (1898-1967)
캔버스에 유채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는 말과 그 말이 가리키는 사물과의 관계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고정된 관계를 종종 뒤집곤 했습니다.

    우리가 인어라는 말을 할 때는, 암묵적인 약속에 따라, 당연히 위는 사람, 아래는 물고기인 존재를 가리키고 듣는 사람도 그렇게 받아들이죠. 하지만 그것은 그저 하나의 약속일 뿐이지 어떤 불변의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인어는 위가 물고기, 아래가 사람일 수도 있고 그도저도 아닌 다른 것일 수도 있죠...

    그럼 마지막으로 "인어" 그림 한 장 더 볼까요. ^^ 뒤로 지나가는 범선도 유심히 봐주세요.


마그리트, 인어의 노래

사랑의 노래 Song of Love (1948)
by 마그리트 Rene Magritte (1898-1967)
캔버스에 유채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http://ncolumn.daum.net/isis177



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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