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델의 화장 La Toilette d'Esther (1842)
샤세리오 Theodore Chasseriau (1819-1856)
45 x 35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구약성서에는 유대민족을 구원한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유딧 Judith, 하나는 에스델 Esther 이죠.
사실 유딧의 이야기 쪽이 더 극적이고 그래서 더 유명합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부유한 젊은 과부였는데, 자신이 사는 도성이 아시리아 군에게 포위되어 주민이 전멸될 위기에 놓이자, 한가지 계획을 세운 후 시녀 하나만 거느리고 적진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적장 홀로페르네스 Holofernes 를 만나 자신이 도성에서 도망친 이유에 대해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도성을 쉽게 정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죠. 유딧의 뛰어난 말솜씨와 눈부신 아름다움에 매혹된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믿게 되고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어 초대합니다. 유딧은 기회를 노리다가 홀로페르네스가 만취한 틈을 타서 그 목을 베어 도성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도성 주민들은 사령관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아시리아 군을 격파하게 되죠.
여걸 유딧의 이야기는 워낙 드라마틱한 까닭에 수많은 문학작품과 미술작품으로 재현되었습니다. 요즘은 바로크 시대의 선구적인 여성 미술가 아르테미시아 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의 유딧 그림이 특히 화제가 되고 있죠. 이렇게 유딧의 이야기와 그림은 이미 유명하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뒤로 미룰까 합니다.
그대신 유대인으로서 페르시아의 왕후가 된 에스델의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위쪽의 작품은 프랑스의 화가 샤세리오가 그린 에스델입니다. 그는 고전파 미술의 특징인 단아한 윤곽선과 낭만파 미술의 특징인 풍부한 색채를 결합하는 데 힘썼다고 하는데요. 과연 이 그림을 보니, 에스델의 몸의 관능적이고 우아한 선과 그림 전체의 찬란한 색채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림처럼 에스델 역시 뛰어난 미인이었지만 유딧만큼 영웅적인 용기와 지혜의 소유자는 아니었죠. 그러나 나약함과 용기를 함께 지닌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가 오히려 제 흥미를 끌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선 공동번역성서에 있는 에스델 서 the Book of Esther 의 내용을 간추려놓은 것을 한번 보세요.
쿠아펠 Antoine Coypel (1661-1722)
캔버스에 유채, 105 x 137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아가씨들은 후궁에서 1년 동안 화장수, 향수 등으로 몸을 다듬고나서 차례로 아하스에로스 왕 앞에 나가게 되어 있었다. 마침내 에스델의 차례가 왔고, 왕은 다른 어느 여인보다도 그녀에게 마음이 기울어 왕후로 삼았다. 얼마후, 모르드개는 왕궁의 대문에서 일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왕에게 불만을 품은 두 내시가 암살을 꾀하는 낌새를 알아채고 이를 왕후 에스델에게 고해 암살을 막았다.
한편 아하스에로스 왕이 총애하는 신하 하만 Haman 은 모르드개가 다른 신하들과 달리 자신에게 무릎꿇고 절하지 않자, 화가 치밀어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에 사는 그의 동족들을 전멸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하만은 당시 관습에 따라 주사위를 던져 거사 날짜를 정한 후 왕 앞에 나아가 말했다. "이 나라 백성들 가운데 자신들 법에만 따르고 임금님의 법마저도 지키지 않는 민족이 있으니 그들을 멸하라는 영을 내려 주십시오." 왕은 자신의 인장반지를 뽑아 하만에게 주며 마음대로 처리하라고 하였다. 하만은 왕의 이름으로 각 지방에 칙서를 보내 자신이 정한 날 유다인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죽이고 사유재산을 몰수하라고 명령하였다.
모든 유다인들은 비탄에 빠졌고, 모르드개는 왕후 에스델에게 왕 앞에 나아가 겨레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도록 부탁하였다. 그러나, 에스델은 "왕께서 부르시지도 않는데 어전에 들어갔다가는 법에 따라 사형을 받습니다. 왕께서 금지팡이를 내밀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나지 못합니다," 하며 주저하였다.
모르드개는 "궁 안에 있다고 해서 왕후만이 유다인 가운데 홀로 목숨을 부지하리라 생각 마십시오. 바로 이런 때에 손을 쓰라고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닙니까?" 하며 그녀를 재촉하였다. 마침내 에스델은 결심을 하고 모르드개에게 말했다. "저를 위해 수도에 있는 유다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사흘 동안 단식 기도를 올려 주세요. 저도 시녀들과 함께 단식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그런 뒤에 법을 어겨서라도 어전에 나가서 죽게 되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델의 말대로 하였다.
by 렘브란트 Harmensz Van Rembrandt (1606-1669)
캔버스에 유채, 236 x 186 cm
사흘 후, 에스델은 궁중예복을 입고 어전에 들어섰다. 아하스에로스 왕은 용상에 앉아있다가 그녀를 보고 금지팡이를 내밀며 무슨 청이 있어서 왔느냐고 물었다. 에스델은 자신이 여는 잔치에 하만과 함께 참석해 달라고 청하였다.
잔치에 참석한 왕은 "왕후의 소원이 무엇이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소,”하였다. 에스델은 내일 한번 더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석해 달라고 하고 그때 소원을 말하겠다고 하였다. 하만은 기쁜 마음으로 퇴궐하다가, 모르드개가 여전히 자기 앞에게 굽실거리지 않는 것을 보고 분해서 자신의 집에 그를 매달아 죽일 높은 기둥을 세웠다.
그날밤, 왕은 궁중실록을 읽다가 모르드개가 내시들의 암살 음모를 막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마침 입궐하는 하만을 불러 모르드개라는 사람에게 상을 주라고 일렀다. 하만은 울며겨자먹기로 명령을 수행했다.
이튿날 에스델이 베푼 잔치에서 아하스에로스가 다시 그녀의 소원을 묻자, 에스델은 답하였다. "임금님께서 소첩을 귀엽게보아 주신다면, 이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제 소원은 이것입니다. 제 겨레도 살려 주십시오. 지금 저와 제 겨레는 다 죽어 멸종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도대체 그런 음모를 꾸민 놈이 누구요?" 왕이 묻자, 그녀는 말했다. "바로 이 하만입니다." 하만은 떨면서 왕후에게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그가 에스델에게 달라붙는 모습이 오히려 왕의 노여움을 샀다. 그는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웠던 기둥에 자신이 매달려 죽는 신세가 되었다.
에스델은 그제야 자신과 모르드개의 관계를 밝혔고 모르드개는 어전에 나오게 되었다. 왕은 에스델과 모르드개의 청으로 하만이 각 지방에 돌린 유다인을 몰살하라는 칙령을 거두고, 하만에게서 찾은 인장반지를 모르드개에게 맡기며 왕의 이름으로 마음대로 복수할 것을 허락하였다. 모르드개는 하만이 유다인을 몰살하려 한 그날 하루동안 유다인들이 자기들을 박해한 모든 민족들에게 복수하도록 칙서를 써서 돌렸다. 복수가 끝난 다음날과 다음다음날은 모르드개와 에스델 왕후의 명에 의해 축제일로 정해졌다.
이 이야기를 보고 왕후로서 자신의 민족을 살려달라고 남편인 왕에게 부탁하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고 대단한 일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 페르시아의 왕후의 신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국모의 지위와는 많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폐위된 왕후 와스디는 사실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니랍니다. 며칠에 걸쳐 술잔치를 베풀던 아하수에로스 왕이 취흥이 오르자 왕후의 아름다움을 여러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녀를 잔치 석상에 나오라고 했는데, 와스디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왕의 노여움을 사서 폐위된 것입니다.
와스디가 왜 나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성서에는 없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술자리에 눈요기거리로 나오는 것이 왕후의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와스디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죠. 옛날 우리나라 같으면 오히려 정숙하다고 칭찬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는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으므로 폐위되었습니다. 말이 왕후지 노예나 다를 바 없는 처지로군요.
이런 상황에서 에스델은 아무런 배경도 없이 그 아름다움만으로 새로운 왕후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왕에게 조금이라도 거역하는 것은 꿈도 못꾸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래서 민족이 위기에 처해도 그녀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스델은 용기를 내기 위해 사흘이나 단식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최대한 아름답게 보여야 자신과 민족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에 정성을 다해 단장을 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참 측은하고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장면을 잘 묘사한 성서 부분을 소개합니다.
by 젠틸레스키 (1593-1652)
Artemisia Gentileschi
캔버스에 유채, 82 x 108 inch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14장 2-3절] 에스델은 화사한 옷을 벗고 슬픈 상복을 입었다. 값진 향유 대신에 재와 오물을 머리에 뒤집어 썼다. 왕후는 자기의 몸을 심하게 다루었다. 그리하여 전에 즐겁고 우아했던 모습이 지금은 헝클어진 머리칼로 어수선하게 되었다.
에스델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다음과 같이 탄원하였다. "오직 한 분이신 나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임금님, 오시어 나를 도와 주소서. 나는 홀몸, 당신외에 아무런 구원자도 나에겐 없습니다.
[14장 13절]나에게 용기를 주소서. 내가 사자와 맞설 때에 내 입에서 그 사자를 매혹시킬 말이 나오게 하시어 그의 마음을 돌려서, 우리의 원수를 미워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원수와 그 동조자를 멸망케 하소서.
[15장 4절]사흘째 되는 날, 에스델은 기도를 마치고 상복을 벗고, 호화찬란한 옷을 입었다. [15장 6절] 왕후는 한 시녀가 옷자락을 받쳐들고 동반하는 가운데, 또 한 시녀에게 우아하게 몸을 기대고 나왔다. 왕후가 한 시녀에게 나른한 자태로 몸을 기대었던 것은 그 몸이 너무나 허약해져서 혼자서는 걸어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5장 8-12절] 그 여자는 넘쳐흐르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희색이 만면하여 마치 사랑의 꽃이 핀 듯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여러 개 문을 지나서 왕 앞으로 나갔다. 왕은 금과 보석이 번쩍이는 왕복으로 성장을 하고 옥좌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양이 어마어마하였다.
왕은 위풍당당한 얼굴을 들어 노기띤 눈으로 왕후를 쳐다보았다. 왕후는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실신하여 창백해진 얼굴로 자기를 따라 온 시녀에게 머리를 기댔다.
그러나 하느님은 왕의 마음을 변심시키어 그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셨다. 왕은 몹시 걱정스러워져서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 왕후가 정신차릴 때까지 그를 품안에 껴안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였다.
"에스델 이게 웬일이오? 우리는 서로 남매간이오. 안심하시오.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오! 내 명령은 평민들에게만 해당되오. 가까이 오시오." 왕은 황금장을 번쩍 들어 에스델의 목에 대고 껴안으며 "나에게 이야기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푸생 Nicolas Poussin (1594-1665)
캔버스에 유채
에르미타쥬 박물관, 페테르부르그
오른쪽의 그림들은 에스델이 잠시 실신하는 이 이야기의 가장 극적인 장면입니다. 위의 그림은 유딧 그림으로 유명한 아르테미시아의 작품입니다. 의상이 르네상스 복장인 것이 재미있네요. ^^ 반면에 아래 푸생의 그림은 그리스식 복장을 하고 있군요.
에스델의 기도 중에서 아하수에로스 왕을 가리켜 "사자"라고 하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그만큼 에스델에게 그는 사랑하는 남편이라기보다는 무서운 주군으로 여겨진 것같습니다...
또 기도 중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14장 16절] 나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아시는 당신은 내가 나의 높은 지위의 상징을 혐오한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십니다. 내가 공석상에 나타날 때에는 할 수 없이 머리 위에 관을 쓰지만 그것이 더러운 걸레처럼 싫어서, 혼자 있을 때는 벗어 버립니다.
이 말은 기도 중에 자신의 경건함을 과장하는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말에서 진실성을 느낍니다. 아마 그녀도 처음 왕후가 되었을 때는 부귀영화를 기뻐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미모로 얻은 총애만 있을 뿐 진실한 사랑도 명예도 그렇다고 권력도 없는 왕후의 자리에 그녀는 차차 염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니 위의 그림들에 나오는 에스델의 모습들은 다 어딘지 우울해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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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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