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에 눌려본 적
있으세요? 저의 경우에는 목이 졸린다던가 귀신 같은 형체가 보인다던가 할 정도로 심하게 가위에 눌려본 적은 없습니다. 단지,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을 꼼짝할 수 없는 경우는 종종 경험해 봤어요. 특히 언제냐하면 고3 때 엄마 몰래 낮잠잘 때... (들키기 전에 빨리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안 움직여지니 정말 공포가 몰려오더군요. ^^;;)
이런 가위눌림은 왜 생기는 걸까요.
과학적인 설명에 따르면, 의식은 반쯤 깨어났는데, 몸은 아직 뇌가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깨어나지 않아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바로 가위눌릴
때라고 합니다. 이때는 심장이 빨라지고 숨도 가빠져서 가슴이 답답하거나 목이 졸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이런 비몽사몽 상태에서 뇌는 여러가지
무서운 상상을 해서 환영이 보이게 된다는 거죠.
하지만 여전히 가위눌림을 일종의
심령현상 psychical phenomena 으로 믿는 사람들도 많은 터에, 옛날 사람들이 이 오싹한 경험을 귀신이나 악마의 짓으로 돌린 것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가위눌린다고 할 때의 "가위"는 자는 사람을 타고 누르는 귀신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가위는 나이트메어
Nightmare 또는 인큐부스 Incubus 인데, 인큐부스는 원래 라틴어로 역시 자는 사람을 타고 누르는 악마의 이름이죠.
가위눌림 (인큐부스) Nightmare (The
Incubus) (1781-82)
by 퓨즐리 Henri Fuseli (1741-1825)
Freies Deutsches
Hochstift,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위의
퓨즐리의 그림을 보면, 기괴한 미소를 띈 인큐부스가 젊은 여인의 가슴을 타고 앉아 누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령 같은 말 한 마리가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위의 영어인 "나이트메어"에서 "메어" 가 암말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제목과 연관해서 나온 것인지도... (퓨즐리는 영국에서 활동했거든요.)
그러나,
그보다는 이 말이 어떤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작품에서 말은 종종 절제되지 않는 정욕을 상징하니까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상체를 뒤로 젖힌 채 힘없이 몸부림치고 있는 여인이나 눈에 이상한 빛을 내며 머리를 커튼 안으로 들이밀고 있는 말은
으스스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에로틱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큐부스는 잠자고 있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음란한 악마로 생각되었습니다.
어떤 전설에서는 인간에 대한 성적 욕망 때문에 타락한 천사라고도 하죠. 잠든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여성 악마도 있는데 서큐부스
Succubus라고 합니다.
중세 유럽을 떠돈 인큐부스와 서큐부스의 전설은 결국은
인간들 자신의 숨겨진 성적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능적인 욕망을 철저히 죄악시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욕망을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억누릅니다. 이렇게 억눌린 욕망은 사람들이 비몽사몽한 상태에 있을 때, 즉 이성이 느슨해진 틈에, 뒤틀린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압박하는 것이죠. 퓨즐리의 그림 속 젊은 여인은 자기 자신의 욕망과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큐부스 Incubus ▶
by 바커 Clive Barker
(1952-)
캔버스에 유채
클라이브 바커는 영국 출신의 공포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으로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헬레이저 Hellraiser (1987)"을 감독했고 또 "캔디맨 Candyman (1992)"의 각본을
썼습니다.
오른쪽 바커의 그림에서는 인큐부스가 가위눌리는 사람의
분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가위눌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어두운 면이나 억눌린 욕망 - 꼭 성적 욕망이 아니더라도 - 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큐부스는 또 마녀 집회 Witches'
Sabbath 에 나타나서 마녀들과 성관계를 갖는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때 인큐부스는 여러 동물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대개는 왕성한
번식활동 때문에 음탕한 동물의 대명사가 된 염소나 산양으로 나타난다고 하죠. 마녀들은 악마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다음 마녀 집회 때
악마들에게 제물로 바친다고 합니다. 악마들이 그 아기들의 피를 마시거나 산 채로 잡아먹도록 말이죠. 이 기분나쁜 이야기는 아래 고야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녀들의 사바트 Witches Sabbath (1798)
by 고야 Francisco Goya (1746-1828)
캔버스에 유채, 라자로 박물관, 마드리드
마녀들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 이런 마녀 집회에 참석한다고 하죠.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 는 그의 저서 "문화의 수수께끼 Cows, Pigs, Wars and Wiches: the riddles of
Culture (1975)" 에서 이런 마녀 집회 이야기가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라고 했답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는 환각을
일으키는 연고들이 은밀히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 연고를 온몸에 바르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은 착각과 난잡한 잔치에 와있는 것 같은 환상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 마녀들의 출발 (1878)
by 팔레로 Luis Ricardo Falero (1851-1896)
캔버스에 유채, 57.5 x 46
inches
이런 연고를 사용하는 여인들은 옷을 다 벗고,
빗자루에 그 연고를 발라서 말처럼 타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 연고가 몸의 민감한 부위로 빨리 흡수되고, 말을 타고 달리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나는 환상을 체험하기 위해서라는군요. 마녀들의 빗자루가 이런 기원이었다니... ^^;; 현대에 와서는 빗자루가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소재일
뿐이죠. "해리 포터 Harry Potter"에 나오는 것처럼.
중세 유럽의 마녀 집회
이야기는 이러한 환각 체험에다 그리스도교의 악마 이야기, 그리고 고대 일부 지역에서 실제로 행해졌던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죠.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15-17세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마녀 집회에 참석했다는 죄목으로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화형이나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처형당한 사람들 중에는 위에 나온
것처럼 마약 같은 연고를 바르고 난잡한 환상을 즐긴 사람들과, 점을 치고 부적을 만드는 집시들도 있었지요. 단지 그런 일들을 했다고 사형을
당하는 것도 불합리하겠지만, 더 불합리한 것은, 처형당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나마 환각 연고도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이때는 광란의
마녀사냥 시대였습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이 시기는 화려한 르네상스 문화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서 오는 혼란으로 대중이 고통받는 시기이기도 했죠. 마빈 해리스는 이 시기의 집권자들, 즉 국가와 교회가,
자신들을 향해 높아져가는 대중의 분노와 원망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마녀사냥을 이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녀로 몰린 희생양들은 주로 가장
힘없는 하류 계층의 여인들이죠.
또 어떤 학자들은 마녀사냥을 중세 동안 억압된 성적
욕망의 비뚤어진 분출로 보고 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녀 집회에는 악마 인큐부스와의 성관계가 반드시 포함되지요. 귀족과 성직자들로
이루어진 마녀 재판관들은 마녀로 몰린 여인들이 실제로 마녀 집회에 참석했는지를 검사해 보겠다면서, 그 여인들의 신체를 은밀한 곳까지 꼼꼼이
조사했고 성 고문에 가까운 고문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마녀 재판관들은 그들 자신의 어두운 욕망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대신 마녀로 몰린
여인들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면서 가학적인 쾌감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죠.
이런 식으로 보면 마녀사냥이야말로 억눌린 욕망이 만들어낸 추악한 괴물, 거대한 하나의
인큐부스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http://ncolumn.daum.net/isis177
업데이트가 많이 늦었습니다. 여름이 거의 다 가서 납량특집도 더 못
하겠네요 ^^;; 다음 칼럼으로는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백합 아가씨 일레인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 전에 쉬어가기 칼럼을 먼저 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주위에 여름 감기로 고생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칼럼 독자님들도 건강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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