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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탄절 아홉달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황령산산지기 2007. 2. 1. 11:26

 

 

 

교황 이노첸시오 10세가 추기경 파비오 치기에게 추기경 모자를 수여하다 (1724)

게치 Pier Leone Ghezzi (1674-1755) 작
캔버스에 유채, 275 x 425 cm, 로마 미술관, 로마  

 

    몇 시간 전 바티칸에서는 추기경 서임식이 있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정진석 추기경에게 진홍색의 추기경 모자를 씌워주었지요. (이 그림과 비슷한 장면이었답니다 ^^) 이로써 우리나라는 두 명 이상의 추기경이 있는 30여 나라 중의 하나가 됐어요. 오랜 숙원이었던 두 번째 추기경이니, 한국인으로서 게다가 카톨릭 신자로서 정말 기쁘답니다! 이번에 세계적으로 15명의 추기경이 새로 뽑힌 것은 25일 성모 영보 대축일을 기해서입니다. 이날은 동정녀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 받고 성령으로 예수를 수태한 날이지요. 3월 25일에 여성의 평균 임신기간인 아홉 달을 더해보세요. 바로 12월 25일 성탄절이죠. ^^

 

    신약성서의 루카 복음에 따르면,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남성과 약혼한 처녀였는데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천사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인사하죠. 놀란 마리아가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하자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그러자 마리아가 반문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가 대답하죠.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중략)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이 장면은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남녀의 결합을 통해 수태되지만, 예수는 성령에 의해 처녀에게 잉태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철저히 신입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공중에서 모습을 나타내거나 황금알에서 태어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인간처럼 여인의 몸에서 태아로 있다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동시에 인간입니다. 그래서 이 수태고지의 장면은 구세주가 신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바탕이 됩니다.

 

수태고지 (1333)
마르티니 Simone Martini (1284-1344) 작
판자에 템페라, 우피지 미술관, 피렌체

 

    그리고 이 장면은 신의 권능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믿음과 용기도 보여줍니다. 이 수태고지는 마리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처녀가, 그것도 약혼자가 있는 처녀가, 약혼자의 아이도 아닌 아이를 가졌다는 게 드러나면 당장 돌에 맞아죽는 시대였으니까요. 하지만 마리아는 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 일은 마리아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질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바 있는 신은 마리아가 스스로의 의지를 표명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마리아가 대답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고 대답을 하자 바로 떠났거든요. 마리아의 간결한 대답에는 어떤 적극성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주어진 잔을 마지못해 잡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용기를 지니고 기쁜 마음으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카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그리스도교인의 모범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성모 영보 대축일을 기해 새 추기경들을 뽑은 데에는 그들 역시 믿음과 용기를 지니고 신의 부름에 답하라는 뜻이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화가들은 이 중요한 장면을 앞다투어 화폭에 담았습니다. 각 시대의 수태고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양미술사 공부가 될 정도지요. ^^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거장들의 수태고지 그림들을 몇 장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중세 말기 시에나 Siena 파의 화가 마르티니의 그림을 볼까요. 바로 위의 그림은 마리아 부분을 클로즈업한 것이지요. 독서 중이던 마리아는 갑작스런 천사의 출현에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몸을 돌리며 겉옷 자락으로 몸을 감싸죠. 하지만 그녀의 눈길은 이미 영광스럽고도 버거운 소식을 말하기 시작한 천사를 향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지금 막 지상에 내려앉았습니다. 미처 접지 못한 날개와 휘날리는 옷자락을 보면 알 수 있죠. 중세 성화의 전통에 따라 마리아는 금빛 옥좌에 앉아있고 마리아와 천사의 머리에는 금빛 후광이 둘러져있습니다.

 

수태고지 (1433-34)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1400-1455) 작
판자에 템페라, 주교구 박물관, 코르토나

 

    초기 르네상스 화가인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은 아주 화사합니다. 금빛으로 장식된 장밋빛 의상을 걸친 천사가 역시 날개를 펼친 채로 마리아에게 그리스도 수태 소식을 전합니다. 마르티니의 그림이 천사가 처음 입을 열었을 때를 포착한 것이라면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은 좀더 시간이 경과한 후인 것 같아요. 마리아의 최초의 놀라움과 두려움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처녀가 어떻게 아기를 가질 수 있냐는 질문도 벌써 한 것 같군요. 천사는 신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말하며 하늘을 가리킵니다. 열정적으로 말하는 천사를 향해 마리아는 몸을 기울이고 가슴에 손을 얹어 순종을 나타냅니다. 이제 곧 신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답하겠지요. 이미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가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습니다. 상아를 섬세하게 다듬은 것 같은 마리아의 얼굴과 손가락, 천사를 고요히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이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평면적인 마르티니의 그림과 비교해볼 때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은 한결 입체적이죠. 아직 미숙한 데가 있긴 하지만 원근법도 사용되었고요. 그러나 중세 성화의 전통이 남아있어서 마리아와 천사의 머리에는 평면적인 둥근 후광이 둘러져 있습니다. 또 마리아는 둥근 기둥과 아치가 있는 장려한 공간에서 금빛 옥좌에 앉아 있지요. 목수와 약혼한 평범한 서민 처녀였던 마리아가 실제로 이런 공간에서 수태고지를 받지는 않았겠지요...

 

 

    왼쪽 저 멀리로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가 보입니다. 이 낙원 추방과 수태고지는 실제로는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인류의 선조가 신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은 원죄(原罪)를 저지른 것은 아득한 옛날이죠. 이 원죄로 인해 인류는 순진무구한 낙원의 삶에서 떨어져 죄 속에서 태어나게 되었지만, 이제 탄생할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써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것을 이 그림은 나타내고 있는 것이죠.

 

수태고지 (1489)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5-1510) 작
판자에 템페라, 150 x 156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르네상스 미술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한 시기에 그려진 보티첼리의 그림은 좀더 발전한 원근법과 공간감을 자랑합니다. 2차원의 화폭에 3차원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을 최대의 과제였던 이 시기에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서처럼 평면적인 둥근 후광을 그릴 수는 없었을 테지요. 그래서 보티첼리는 마리아와 천사의 후광을 입체적으로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까 마리아나 천사나 꼭 쟁반을 머리에 올려놓고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어요...^^

 

    이 그림의 천사는 마리아의 순결을 나타내는 백합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자세가 독특해요. 그녀는 천사를 만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천사가 인간인 자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말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천사의 입에서 나오는 영광스럽고도 두려운 소식을 일단 중지하려는 것일까요? 그러나 미술사학자 노성두 박사에 따르면, 손바닥을 보이게 팔을 뻗은 이 자세는 영접을 뜻한다고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거부의 의미로 보일 수 있지만, 보티첼리의 다른 그림들로 미루어볼 때 오히려 받아들이는 자세라는군요...

 

 

    그런데 마르티니와 프라 안젤리코, 보티첼리의 그림 속 마리아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모두 붉은 로브에 푸른 망토를 걸치고 있다는 것이죠! 어두운 푸른색은 비탄을 나타내기 때문에 비잔틴 시대부터 성모의 옷 색깔로 종종 쓰이곤 했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아들 예수의 수난을 지켜보며 겪은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었죠. 또 밝고 선명한 푸른색 안료가 개발되면서 하늘의 상징으로서 더 자주 쓰이게 되었고요. 또 붉은색은, 우리나라의 전통예복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세계 공통으로 고귀함을 나타내는 색인데다가, 피와 수난을 상징하는 색깔이라서 역시 성모의 옷 색깔로 애용되었다고 하네요.

 

수태고지 (1583-87)
틴토레토 Jacopo Tintoretto (1518-1594) 작
캔버스에 유채, 422 x 545 cm
스콜라 디 산 로코, 베네치아

 

    이제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시기가 오면 이전 수태고지 그림들의 조용한 분위기는 사라지게 됩니다. 가브리엘은 더 이상 홀로 홀연히 나타나 긴장감이 감도는 침묵 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신비로운 소식을 전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가브리엘은 수많은 다른 천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납니다. 틴토레토의 그림을 보세요. 다소 거창하게 너무나 극적으로 나타나니... 팡파르라도 울려야 할 것 같습니다. ^^ 마리아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하군요...

 

    틴토레토는 마리아의 공간에 좀더 사실성을 살려서 칠이 벗겨진 벽돌 기둥이 서있는 낡은 집으로 설정했습니다. 이 초라한 집은 천상의 천사들과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또 마리아의 의상은 전형적인 붉은 색과 푸른 색 전통을 벗어났습니다.

 

수태고지 (1609-10)
루벤스 Pieter Paul Rubens (1577-1640) 작
캔버스에 유채, 224 x 200 cm
미술사 박물관, 빈

 

    루벤스의 그림은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바로크 회화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옷자락을 날리며 막 내려앉은 천사... 앞서의 그림들과 달리 이 그림에서 천사는 오른쪽에 등장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런 배치는 천사의 출현의 갑작스러움을 더 강하게 해줍니다. 다른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독서 중이던 마리아는 놀라 몸을 뒤로 기울이고 한 손을 들어올립니다. 그러나 천사의 강렬한 시선과 부딪치는 그녀의 시선은 더없이 차분합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천사가 지상으로 내려앉으며 일으킨 바람이 화면을 뚫고 피부에 와닿을 것 같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또 살짝 내민 천사의 맨발이 손을 내밀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이 그 촉감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자 루벤스의 특기이죠. 그리고 화면 위에는 틴토레토의 그림처럼 여러 다른 천사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특히 루벤스 그림다운 포동포동 귀여운 아기천사들이지요. 그나저나 가브리엘의 시선이 이토록 강렬한 수태고지 그림도 없을 겁니다. 솔직히 저는 루벤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그림은 참 좋아한답니다...

 

   그럼 좀더 전통성을 벗어난 19세기와 현대의 수태고지 그림들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이야기할게요!

 

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글쓴이 : Mo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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