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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딧 - 영웅, 요부, 또는 인간으로서 2003.2.5.

황령산산지기 2007. 2. 1. 11:26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1598)
by 카라바지오 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3-1610)
캔버스에 유채, 145 x 195 cm, 국립 고미술관, 로마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건장한 체격의 남자의 목을 칼로 베고 있습니다. 남자는 불의의 습격을 당한 듯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힘없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남자의 손은 담요를 움켜잡고 있으나 눈동자는 이미 생명을 잃고 있고 그의 목에서 솟는 새빨간 핏줄기가 하얀 담요를 적시고 있습니다. 여자는 살인에 익숙하지 않은 듯 이 참혹한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지만 남자의 머리카락과 칼을 잡은 그녀의 팔은 여전히 단호해 보입니다. 그녀의 옆에는 한 늙은 여인이 눈을 부릅뜨고 얼굴에 깊은 주름을 만들면서 마치 자신이 칼을 든 것처럼 자루를 힘주어 움켜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대비 속에서 더 강렬하게 나타납니다.

    이 그림은 초기 바로크 Baroque 미술의 대가인 카라바지오의 작품으로,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서 죽이는 유딧의 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그림 위쪽을 보면 짙은 붉은 빛의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데, 이것이 그림의 분위기를 더 강렬하고 장엄하게 만듭니다. 이 휘장의 피처럼 붉은 빛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살인을 함축적으로 나타냅니다. 또, 유럽 왕들의 초상화들 속에서 풍성한 진홍색 장막이 물결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듯이, 이 붉은 휘장은 홀로페르네스가 가졌던 지위와 권력을 상징하며, 동시에 지금 그의 목을 베고 있는 유딧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실제로 유딧서 the Book of Judith 에서,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후 그의 화려한 침대 휘장을 전리품으로 가져가서 신께 바칩니다.

    크리스트교의 구약성서 제2경전(또는 외경)에 있는 유딧서는 전형성과 파격성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그 두 가지 모두가 우리를 매혹합니다. 옛 중국의 병법 36계 중에서 제 31계가 미인계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여인이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으로 적을 유혹하여 파멸시키는 일은 오랫동안 수도 없이 되풀이되어 온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의 흥미를 자극합니다. ^^ 그리고 유딧의 경우에는 누구의 명령이나 조언에 따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 이 일을 했고 또 가족의 복수 같은 사적인 이유가 아니라 민족의 구원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이 일을 했다는 것이 고대 가부장제 사회라는 배경을 고려할 때 상당히 파격적이어서 또한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그리고 약소 민족이 그 중에서도 약자인 여성의 활약으로 강대한 제국의 군대를 무찌른다는 유딧서의 설정은, 약자가 꾀와 슬기로 강자를 이기는 전형적인 이야기들에 속하며, 이러한 이야기들은 시공을 초월해 사람들에게 통쾌감을 줍니다. 이처럼 전형적인 면에서나 파격적인 면에서나 유딧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매력적이기에 수많은 화가들이 유딧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고 각기 다른 해석으로 그녀를 구현했습니다. 이제 이런 그림들과 함께, 유딧서에 나타난 그녀의 다양한 모습, 즉 지혜와 용기로 민족을 구하는 영웅으로서, 또 아름다움을 이용해 남성을 파멸시키는 요부로서, 그리고 엄격한 가부장제 시대의 여성이라는 제한된 여건에서 최고로 명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전에 유딧서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아보죠. 유딧서가 속한 제2경전 Deuterocanonical 은, 구약성서의 다른 부분들이 이스라엘의 언어인 헤브라이어 Hebrew 로 기록된 것과 달리, 그리스어로 BC 2세기부터 AD 1세기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신교인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이것을 정식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아 외경 Apocrypha 이라고 부르죠. 구약성서에는 역사와 전설이 공존하고 있는데, 유딧서의 경우, 신학자들은 역사라기보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한 문학으로 간주합니다. 왜냐하면 유딧서에는 실제 역사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유딧서에 등장하는 아시리아 (앗시리아 Assyria : 지금의 이라크 북부에 있던 왕국) 의 왕 느부갓네살 (네부카드네자르 Nebuchadnezzar) 은 사실 신 바빌로니아 New Babylonia 의 왕입니다. 유딧서에서 아시리아가 메대 (메디아 Media : 지금의 이란 북동부에 있던 왕국) 를 정복한 것과 정반대로 실제로는 메디아가 BC 7세기에 아시리아를 공격해 멸망시켰죠. 그리고 메디아와 손잡았던 칼데아 Chaldea 인들이 아시리아가 몰락한 자리에 신 바빌로니아를 세웠으며 그 두 번째 왕이 바로 느부갓네살이랍니다. 느부갓네살은 BC 6세기 초 유대 (유데아 Judea) 왕국을 멸망시키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바빌론 Babylon 으로 강제로 끌고 간 장본인입니다. 그후 페르시아가 BC 6세기 후반 신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주었죠. 그런데 유딧서를 보면 유대인들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지 얼마 안되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니 연대 설정이 모순되는 것이죠.

    그러나 신학자들은 유딧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는 아닐 것으로 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나온 "새번역성서"의 유딧 입문에 따르면, "미드라쉬 Midrash" 라고 불리는 유대교 Judaism 의 문헌에 유딧 이야기와 비슷한 설화가 자주 등장하며, 또 유딧과 같은 여인의 활약을 기념하는 축제가 언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유딧서는 실제 사건에서 비롯된 전설을 바탕으로 해서 BC 2세기경 어려운 처지의 이스라엘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쓰여진 문학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또한 유딧서는 고대 문학 중에서도 구성 면에서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가 "공동번역성서"의 유딧서를 요약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대개의 고대 문학이 구성이 허술하거나 방만하고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많은 반면에, 유딧서는 구성이 상당히 탄탄한 편이며 중간중간 장황한 부분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합니다. 그래서 그만큼 긴박감이 넘치고 극적이죠. 여기 예고편에서 소개한 유딧서의 줄거리를 좀더 짧게 줄여서 다시 실었습니다. 예고편을 읽으신 분들은 이 줄거리 부분은 뛰어넘고 보세요.

 조르조네, 유딧
유딧 (1504) ▶
by 지오르지오네 Giorgione
(1477-1510)
캔버스에 유채, 144 x 66.5 cm
에르미타쥬 박물관, 페테르부르그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파의 대가인 지오르지오네의 "유딧"입니다. 그녀는 동이 트는 가운데 한 손에 칼을 쥐고 한 발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밟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어딘지 익숙한 모습이 아닌가요?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악마를 밟고 있는 사천왕상이 떠오르는군요.
    이 그림은 크리스트교와 불교, 힌두교를 막론하고 널리 쓰이는 도상 - 신이나 성인이 악마를 밟고섬으로써 정의의 궁극적인 승리를 나타내는 도상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홀로페르네스를 내려다보는 유딧은 인간적인 승리감이나 증오심의 표정 대신 마치 명상하는 것 같은 초월적인 표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시리아의 왕 느부갓네살은 메대와 전쟁을 벌이면서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에집트 등에 사신들을 보내 아시리아를 도울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도시와 촌락들은 모두 그 요구를 거절했고 이에 느부갓네살 왕은 극도의 분노를 품었다. 5년여의 전쟁 끝에 마침내 메대를 정복한 느부갓네살은 그 이듬해 자신의 군대 총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 Holofernes 를 불러서 보병 십 이만과 기병 일만 이천을 거느리고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서방의 전 지역을 치라고 명령했다.

    홀로페르네스가 이끄는 아시리아의 대군은 유프라데스 강 일대와 시리아 지역을 공격해서 단숨에 여러 도시와 촌락들을 파괴하고 학살과 약탈을 행하였다. 아시리아군이 다시 더 서쪽인 지중해 연안으로 진격하자, 두려워진 레바논의 도시들은 화평을 청하고 성문을 열어 아시리아군을 환영했다. 그러나 홀로페르네스는 이들의 신전들을 파괴하고 주민들이 느부갓네살만을 신으로 섬기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아시리아군은 다시 레바논 남쪽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내려왔다.

    다른 지역들의 파괴와 수모의 소식을 듣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은 아시리아의 대군이 다가오자 두려움에 떨었다. 예루살렘의 대사제 요야킴 Joacim 은 이스라엘 각 지방에 연락해 높은 산꼭대기를 확보해 성을 쌓게 하고 비상 식량을 저장하도록 했다. 또한 아시리아군의 진지와 가까운 도시 베툴리아 Bethulia 의 주민들에게 그곳 산간 통로들을 사수하라고 명령했다. 이곳은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다 지방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의 전쟁 준비 소식을 듣고 화가 난 홀로페르네스는 아시리아와 동맹한 이스라엘 근방의 부족들, 모압 Moab 과 암몬 Ammon 의 지휘관들을 불러 물었다. "저 산간지방 주민들은 어떤 자들이기에 감히 우리에게 맞설 준비를 하는 거요?" 그러자 암몬인 대장 아키오르 Achior 가 대답했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의 신의 보호를 받고 있어서 신의 율법을 어기지 않는 한 망하지 않습니다." 이에 분노한 홀로페르네스가 말했다.

    "느부갓네살 외에 또 신이 어디 있단 말이냐? 아키오르, 너는 그자들이 존경스러운 모양이니 그들에게 가서 내가 그들을 전멸시킬 때 함께 죽어라." 홀로페르네스의 명령에 따라 그의 부하들은 아키오르를 붙잡아 베툴리아 산성 바로 밑까지 끌고 가서 그곳 샘터에 묶어놓고 돌아갔다. 이스라엘인들은 산성 위에서 그것을 보고 아키오르를 성안으로 데려갔다. 우찌야 Ozias 를 비롯한 베툴리아의 지도자들과 온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아키오르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베툴리아 주민들은 그를 위로했다.

    다음날 홀로페르네스는 아시리아군과 그 동맹군들을 이끌고 베툴리아 바로 아래 샘터까지 와서 진을 쳤다. 눈앞에서 이 대군을 보게 된 베툴리아 주민들은 두려움과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방어 태세를 취했다. 홀로페르네스는 암몬과 모압 지휘관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싸우는 베툴리아 주민들과 전면전을 하는 대신, 그들이 이용하는 수원지를 점령하고 도성을 포위한 채 시간을 끌기도 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자 베툴리아 도성 안에는 물독마다 물이 떨어지고 저수지는 모두 바닥났다. 마실 물이 모자라 주민들은 기력을 잃고 도성의 길거리에 마구 쓰러졌다.

    마침내 주민들은 도성의 지도자들과 원로들에게 몰려가서 항의했다. "지도자들이 아시리아군에게 진작 화평을 청하지 않아서 우리는 다 죽게 됐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버리셨으니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도성을 내어 주십시오. 노예가 되더라도 목숨은 건질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주민들은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우찌야는 "닷새가 지나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아무 도움을 주시지 않으면 여러분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한 후 주민들을 각자의 자리로 돌려보냈다. 온 도성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때 유딧이 이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과부였으며 남편은 3년 전 병으로 죽었다. 그녀는 뛰어나게 아름다웠고, 죽은 남편으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부유했으며, 또 경건한 생활을 해서 평판도 좋았다. 유딧은 집사를 시켜 도성의 지도자들을 모셔오게 해서 말했다. "그런 약속을 하신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면서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이 지금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고 계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전 이스라엘인의 생명과 성전의 안전이 베툴리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당장 목숨을 건진다 해도 노예로 끌려가면 어디서든 학살당할 수 있고 또 우리의 강토와 유산은 무참히 짓밟힐 것입니다 "

    우찌야는 대답했다. "지금 주민들이 목말라 죽어가고 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부인은 경건한 분이니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자 유딧이 말했다. "제게 한가지 계획이 있습니다. 오늘 밤 성문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제가 하녀을 데리고 나타나면 성밖으로 나가게 문을 열어주세요. 지도자 여러분이 우리 도성을 적들에게 내어 주겠다던 그 날짜 안으로 주님께서 제 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 계획에 대해 지금은 아무 것도 묻지 마세요."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기로 하고 돌아간 후, 유딧은 오랫동안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 그녀는 과부 옷차림을 벗고 남편이 살아있을 때 입던 화사한 옷을 입고 온갖 장신구를 달아 찬란하게 꾸몄다. 그리고는 식량을 담은 자루를 짊어진 하녀와 함께 베툴리아 성문으로 가서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찌야와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유딧의 변한 모습과 그 아름다움에 놀랐다. 그들은 유딧에게 성공을 빌어주고 성문을 열어주어 그녀가 나가도록 했다.

    유딧과 하녀가 골짜기로 내려갔을 때 아시리아 보초병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나는 히브리 (헤브라이, 원래는 이스라엘을 낮추어 부르는 말) 여자인데 히브리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정복될 날이 멀지 않아서 그들에게서 도망쳐 나오는 길입니다. 나는 당신들 군대의 총사령관에게 가서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려 합니다" 라고 말했다. 아시리아인들은 그녀를 홀로페르네스의 천막으로 안내했다. 보고가 들어갈 때까지 유딧은 천막 밖에 서 있었는데 군인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나와 그녀를 에워쌌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이때 홀로페르네스의 시종들이 나와 유딧을 천막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티치아노, 유딧
◀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가진 유딧 (1515)
by 티치아노 Vecellio Tiziano (1490-1576)
캔버스에 유채, 89,5 x 73 cm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로마

    베네치아파의 또다른 대가 티치아노의 그림입니다. 티치아노의 매력인 짙고 부드럽고 풍부한 색채를 이 그림을 통해 잘 볼 수 있죠. 이 그림 속의 유딧은 티치아노의 다른 그림 속 여인들이 그렇듯이 온화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목을 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입니다.
    그녀는 이 머리를 거의 다정스럽게 들고 있으며 비스듬한 눈길로 그 머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표정은 거의 불가사의합니다. 이처럼 이 그림 속의 유딧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위험한 여인입니다. 아래에 소개할 클림트의 그림이 유딧의 요부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 티치아노의 이 그림은 그녀의 요부성을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죠.


    홀로페르네스는 보석이 수놓인 진홍색 휘장을 친 침대에 누워 있다가 보고를 듣고 천막 입구 쪽으로 왔는데, 그 역시 유딧의 미모를 보고 놀랐다. 유딧이 절하자 홀로페르네스가 말했다. "부인, 무서워할 것 없소. 느부갓네살 왕을 섬기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나는 절대 해치지 않소. 왜 우리에게로 도망쳐 왔는지 이야기해 보시오." 유딧은 먼저 느부갓네살과 홀로페르네스를 찬양하고 말했다. "장군님, 아키오르가 장군님께 드렸던 말씀은 거짓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은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는 한 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죄에 빠져 하느님의 분노를 샀기에 장군님은 손쉽게 승리하실 것입니다.

    베툴리아 사람들은 식량과 물이 다 떨어져서 지금 율법에서 금하는 것을 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어기는 죄를 저지르는 날, 장군님의 손에 넘어가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종은 그들에게서 미리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장군님께 보내셨습니다. 제가 장군님 곁에 머무르면서 밤마다 골짜기로 나가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언제 그들이 죄를 범하는지 제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때 장군님께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십시오. 그때는 아무도 장군님께 저항하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님이 예루살렘 한가운데 우뚝 서실 때까지 제가 길을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대를 보내 우리에게 힘을 준 그대의 신은 고마우신 분이오. 그대는 용모도 아름답고 말솜씨도 뛰어나오. 그대의 신은 나의 신이 될 것이오." 그리고 그는 유딧을 자신의 은그릇을 보관하는 천막에서 쉬게 하라고 시종들에게 일렀다. 그녀는 천막에서 한잠 자고 새벽녘에 일어나 홀로페르네스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이 기도하러 진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홀로페르네스는 병사들에게 그녀가 나가는 것을 막지 말라고 명령했다. 사흘 동안 유딧은 진영에 머물면서 밤마다 베툴리아의 산골짜기로 나가서 샘물에 목욕하고 기도했다.

    유딧에게 매혹되어 그녀를 손에 넣을 기회를 노리고 있던 홀로페르네스는 나흘째 되던 날 연회를 베풀면서 측근인 내시 바고아 Bagoas 를 시켜 유딧에게 연회에 참석하라고 꾀었다. 그녀는 쾌히 승낙하고 아름답게 단장한 후 홀로페르네스의 천막으로 갔다. 그녀를 본 홀로페르네스는 가슴이 설레고 정욕이 솟아올랐다. 그가 유딧에게 "자, 어서 잔을 드시오. 함께 즐깁시다" 하고 말하자 유딧은 "장군님, 오늘은 제 생애에 가장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홀로페르네스 앞에서 먹고 마시며 연회를 즐겼다. 유딧 때문에 더없이 유쾌해진 홀로페르네스는 전에 없이 술을 많이 마셨다.

    밤이 깊어 바고아는 모든 시종들을 물러가게 하고 자신도 떠났다. 유딧만이 천막 안에 홀로 남아 있었고 홀로페르네스는 잔뜩 취해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침대 기둥 쪽으로 가서 거기 걸려있는 그의 칼을 집어 내렸다. 그리고 홀로페르네스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오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하고 말한 다음 있는 힘을 다해 그의 목덜미를 두 번 내리쳐서 머리를 잘라 버렸다. 그라고 머리 없는 몸을 침대에서 굴러 내리고 침대 휘장을 걷어낸 다음 밖으로 나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하녀에게 주었다. 하녀는 그것을 양식 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유딧과 하녀는 평소에 기도하러 나갈 때처럼 진영을 나갔고 병사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곡을 돌아 산을 계속 올라가 마침내 베툴리아의 성문에 이르러 문을 열어달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유딧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베툴리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몰려와서 그녀를 에워쌌다. 유딧은 그들에게 외쳤다. "하느님을 찬양하시오. 그분이 나의 손을 통해서 우리의 적을 쳐부수셨습니다." 그녀는 자루에서 잘린 머리를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자 보시오. 아시리아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적장의 목을 벤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모든 사람이 놀라서 꿇어 엎드려 신을 경배했으며 우찌야는 유딧을 축복했다.

    유딧은 계속해서 말했다. “여러분, 이 머리를 망대 위에 걸어 놓고 날이 밝으면 모두 무기를 들고 도성 밖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아시리아군의 초소로 진격할 태세를 보이되 실제로 내려가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아시리아 병사들은 지휘관들에게 연락할 것이고 지휘관들은 홀로페르네스의 천막으로 달려가겠죠. 그러나 그가 죽은 것을 보면 겁에 질리고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이때 그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전에 아키오르를 불러 이것이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라는 것을 확인하게 하십시오.” 베툴리아 사람들에게 이끌려온 아키오르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보고 그만 기절해 넘어졌다가 일어나서는 유딧에게 절하며 그녀를 찬양했다. 베툴리아 사람들은 환성을 질렀다.

    동틀 무렵 베툴리아 사람들은 유딧의 말대로 성밖으로 내려갔다. 보초병들의 연락을 받은 아시리아 지휘관들은 홀로페르네스의 측근들에게 와서 말했다. "저것들이 전멸을 당하고 싶어서 싸움을 거는군요." 측근 바고아는 홀로페르네스가 유딧과 함께 자고 있다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천막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어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홀로페르네스는 머리가 달아난 채로 땅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바고아는 통곡하며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고 외쳤다. “히브리 여자 단 하나가 느부갓네살 왕국을 욕보였구나!”

    아시리아군의 지휘관들은 당황했고 병사들은 겁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베툴리아를 포위하고 있던 아시리아의 동맹군들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베툴리아인들이 이들을 공격하였다. 또 우찌야가 이스라엘 전역에 사람을 보내 이 일을 알림에 따라 전 이스라엘의 전사들이 공격에 가담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시리아군을 궤멸하고 많은 전리품을 손에 넣었다. 그들은 홀로페르네스의 물건들을 모두 유딧에게 주었다.

    대사제 요야킴과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유딧을 만나러 와서 그녀를 축복했다. "부인은 예루살렘의 영광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자랑입니다.” 유딧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홀로페르네스의 소유물과 특히 그의 침대 휘장을 전리품으로서 성전에 바쳤다. 이스라엘인들을 석 달 동안 예루살렘 성전에서 축제를 벌였고 유딧도 그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다. 축제가 끝난 후 그녀는 베툴리아로 돌아와 자기 재산을 가지고 살았다. 그녀를 원하는 남자들이 많았지만 그녀는 아무와도 관계하지 않았다.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녀는 백 오 세까지 살다가 죽었는데,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레 동안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I. 유딧, 영웅으로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보이는 유딧 (1728-33)
by 솔리메나 Francesco Solimena (1657-1743)
캔버스에 유채, 105 x 130 cm
미술사 박물관, 빈


    위의 그림은 후기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솔리메나의 작품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딧이 베툴리아로 돌아와 주민들에게 그 머리를 보여주는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직 어슴푸레한 가운데, 발그레한 새벽빛이 비쳐오고 있고, 그 새벽빛 속에 드러나는 베툴리아 주민들의 역동적인 자세가 그들의 놀라움과 감격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들 가운데 유딧은 마치 승리의 여신 같은 모습으로 계단 위에 서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그녀에게 영광의 관을 씌우려 함으로써 그녀의 승리를 한층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이용해 적에게 접근해서 적을 파멸시킨 여인들의 이야기는 예로부터 많지만 유딧과 같이 영웅으로서 다루어진 경우는 드뭅니다. 대개 그런 여인들은 누군가의 지시로 그 일을 했고, 또 스스로 했다고 해도 그 동기는 사적인 원한, 특히 남편이나 다른 가족이 적에게 죽음을 당한데 대한 복수심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영웅으로 간주되려면 주체적이어야 하고, 특히 고전적인 영웅의 경우, 대의를 추구하며 사적 관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 초연해야 합니다. 유딧은 이런 조건을 만족시킵니다.

    여기에서 "영웅"이라는 어휘에 주의해 주세요. "영웅 英雄"에서 "웅"이 "수컷 웅" 이기 때문에 이를 여성에게 쓰는 것은 어법상 맞지 않고 "여걸 女傑" 등으로 바꾸어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웅"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영웅"이 첫번째 의미인 "뛰어나고 용맹한 남자"로 쓰일 때는 위의 의견대로 여성에게는 "여걸"로 쓰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웅"이 두번째 의미인 "탁월한 업적으로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 내지는 "구원자"로 쓰일 때는 이를 여성형으로 대치할 말이 없습니다. 영어에서도 영웅을 뜻하는 "hero"는 남성형이고 여성형 "heroine"이 따로 있지만 "She has become a national hero 그녀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같은 식으로 두번째 의미일 때는 여성에게 그냥 hero를 씁니다. 여기서 제가 유딧에게 사용하는 "영웅"은 두번째 의미입니다.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가지고 와서 주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을 통해, 그녀가 병력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는 이스라엘을 구할 큰 틀의 전략을 미리 세웠고 그 전략의 일부로 자기자신을 미인계에 투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유딧과 우찌야의 대화를 통해서, 그녀가 거사를 하게 된 동기가 가족의 복수 같은 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동족과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딧서에서는 유딧의 남편이 3년전 일사병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밝혀 유딧의 이번 거사와 아무 관계도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딧이 과부로 설정된 것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엄격한 유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는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복종해야 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딧은 이미 결혼해서 친정을 떠났고 또 남편은 죽었기 때문에 섬겨야 할 사람이 없는 독립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더구나 그녀는 부유한 과부입니다. 유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보다 더 주체적인 지위를 가진 여성도 없을 것입니다. 유딧서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유딧을 철저하게 독립적인 여성 영웅이 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은 유딧서가 쓰여진 시대로서는 혁명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제가 보기에 유딧의 영웅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그녀가 칼로 홀로페르네스를 내리칠 때나 자른 머리를 보이면서 베툴리아 주민들의 용기를 북돋을 때보다도 그녀가 처음 우찌야와 대화할 때입니다. 유딧은 우찌야에게 신이 닷새 안으로 도움을 주지 않으면 도성을 적들에게 내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신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오히려 "지금 이 시련은 신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우찌야는 "신께 비를 내려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무기력한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유딧은 자신에게 대안이 있다고 밝히고 "신께서 나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유딧이 말하는 것은 "주저앉아서 구원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자신의 능력을 믿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며 "신이 도움을 줄 때는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을 통해서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것을 직접 증명합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II. 유딧, 요부로서

 
마시스, 유딧◀ 유딧
by 마시스 Jan Massys (1510-1575)
판자에 유채, 115 x 80.5 cm
왕립 미술관, 안트베르펜


    왼쪽의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 플랑드르의 화파의 화가 마시스의 "유딧"입니다. 솔리메나나 지오르지오네의 성스럽고 영웅적인 유딧과 정말 대조적이지 않은가요? 마시스의 그림 속 유딧은 나신이 환히 비치는 투명하고 얇은 옷을 걸치고 있는데, 원래 이런 옷을 걸친 것이 그냥 나체인 것보다 더 에로틱한 효과를 주는 법이죠. 그리고 그녀는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더없이 야릇한 미소를 던지고 있습니다.

    유딧을 소재로 한 수많은 그림들 중에 유딧이 나체로 그려진 그림들도 종종 있는데, 그중에서도 유딧이 나체나 반라의 몸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은 그녀가 그와 동침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딧서에서는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와 동침하지 않았고, 또 노골적으로 유혹적인 행동을 하기보다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과 우아한 말솜씨로 홀로페르네스가 스스로 정염에 불타도록 교묘히 유도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화가들이 나체의 유딧, 특히 나체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을 그린 이유는 유딧을 통해서 여인의 성적 매력의 위험함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유딧이 적장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면 여기서 왜 하필이면 유딧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성서에만 해도 다른 유명한 요부들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삼손 Samson 을 유혹해 그의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잘라 그를 파멸시킨 델릴라 Delilah 나 헤로데 Herodes 왕 앞에서 관능적인 춤을 추고 나서 상으로 세례 요한 John the Baptist 의 목을 달라고 해서 얻은 살로메 Salome 도 있는데 왜 굳이 애국 영웅 유딧을 통해 요부상을 구현하려 했을까요?

    그것은 유딧이 이 어떤 여인들보다도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다른 요부들과 달리 직접 칼을 휘둘러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잘랐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따라서 유딧이 대변하는 요부상은 호기심과 경멸의 대상으로서의 요부상이 아니라 두려움과 매혹의 대상으로서의 요부상입니다. 유딧이 나타내는 요부상은 남성이 여성과의 성적 관계를 통해 그 정기와 생명을 빼앗기게 된다는 오랜 미신적인 두려움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부상의 극치는 바로 유명한 클림트의 "유딧"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클림트, 유딧유딧 1 (1901) ▶
by 클림트 Gustav Klimt
캔버스에 유채, 153 x 133 cm
벨베데레 궁전, 빈


    클림트의 그림을 위의 마시스의 그림과 비교해 보세요. 투명하게 비치는 에로틱한 의상이며 그 야릇한 표정이 많이 닮았습니다. 클림트의 유딧은 칼이 없는 데다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마치 애무하듯 잡고 있기에 더 살로메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클림트는 그녀가 유딧이라고 아예 그림 위에 커다랗게 황금빛으로 새겨놓고 있습니다. 클림트는 살로메가 아닌 유딧을 통해 더 강력한 요부상을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죠.

    여기서 클림트의 유딧이 그려진 당시 유럽 사회를 보죠. 이 때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증가하고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사회주의 학자 엥겔스 Friedrich Engels (1820-1895) 의 저서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 (1884)” 을 통해 원시 모계사회 이론이 퍼져나가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죠. 또 문화인류학, 신화학, 고고학의 복합적인 발전과 함께 그리스/로마 신화의 여신들보다 더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여신들이 주목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이 시기 예술의 주요한 테마는 강력하고 매혹적이면서 어딘지 두려운 여인상이었습니다. 그러한 여인상의 원형은 바로 고대 사회에서 열광적으로 숭배되었을 지모신 地母神, 생명과 풍요를 주는 자비로운 어머니이자 그러한 생명과 풍요를 위해 때로는 피의 제물과 희생을 요구하는 잔인한 여신입니다. 바로 이 칼럼에서도 여러 번 언급한 메소포타미아의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 Ishtar 같은 여신이죠.

    프레이저 James G. Frazer (1854-1941) 의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 (1890 )에 따르면 이러한 원시 여신을 위한 풍요 의식에는 그녀의 연인으로 뽑힌 남성들이 제물로 바쳐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클림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딧을 통해 자신에게 바쳐진 제물을 들고 있는 원시 여신의 상을 구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녀는 황금빛 액자 속에 마치 기념비처럼 그려져 있는 것이죠.

    그러나 유딧의 이런 원형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는 오히려 유딧서에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과 거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딧서에 나타난 인간 유딧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III. 유딧, 한 인간으로서

 
젠틸레스키, 유딧◀ 유딧과 하녀 (1612-13)
by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1597-1651)
캔버스에 유채, 114 x 93.5 cm
팔라티나 미술관, 피렌체


    왼쪽의 그림은 요사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바로크 시대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입니다. 여성 화가이기에 화가의 관심은 유딧이 갖는 파괴적인 성적 매력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유딧을 특별히 영웅적이거나 성녀 같은 모습으로 그리지도 않았습니다. 이 그림 속의 다소 거친 인상의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데 성공한 뒤 베툴리아로 돌아올 준비를 하면서 긴장된 모습으로 주위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매력은 그 리얼함과 유딧의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면모입니다.

    사실 유딧서는 고대 영웅담이기에 그녀의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유딧의 활약에 힘입어 아시리아를 물리친 후 그녀가 이스라엘인들과 승리를 축하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유딧은 자신의 기쁨을 솔직히 드러내며, 짐짓 초연한 태도를 취하는 대신,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합니다. 유딧이 "힘센 남자도 아닌 한 여인이 적군의 가장 강력한 전사를 무너뜨렸다"고 노래하는 데서 자기자신이 계획한 일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성공했을 때 그녀가 느낀 놀라움과 짜릿한 환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석 달 동안 열린 예루살렘의 축제에 동참하며 자신의 승리를 만끽합니다.

    그러나 유딧은 또한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있습니다. 엄격한 유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녀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전면으로 나설 수 있었지만 사회가 안정되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과부 생활로 돌아오는데, 흥미로운 것은 유대 사회가 재혼을 금하지 않는데도, 아니 오히려 죽은 남편의 형제와 재혼을 해서 남편의 대를 잇는 것을 권장하는데도, 그녀는 아무와도 재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이미 민족의 영웅으로 떠오른 그녀이기에 남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는 유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편을 맞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과부로서 정숙한 생활을 함으로써 자신의 미인계가 오로지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한 덕분에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유딧서에 되어 있습니다. 또, 유딧이 장수하고 죽었을 때 "이스라엘인들이 그녀의 죽음을 이레 동안 애도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녀가 그 활약 뒤에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는 비공식적으로나마 지속적으로 사회적 지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볼 때 유딧은 정말 매혹적이고 무시무시한 여인입니다. 위험한 성적 매력에서 그럴 뿐만 아니라 강인한 의지로 거사를 하고 사후의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유대 가부장제 사회가 정한 한계를 넘어 최고의 명예로운 삶을 누렸다는 점에서 정말 매혹적이고 무서운 여인입니다.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http://ncolumn.daum.net/isis177



    27일날 올라간 임시 칼럼은 제가 지웠는데, 거기 있던 유딧의 좀더 상세한 줄거리는 제가 독자 게시판에 올려놓았으니 필요하시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칼럼은 "에로스와 프시케"를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에 앞서서 먼저 싣겠습니다. 저 사실 지금 갑작스런 몸살감기로 고생이랍니다. ㅠㅠ 칼럼 독자님들도 감기 조심하세요.





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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