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스의 죽음을 탄식하는 비너스 (1768)
by 웨스트 Benjamin West (1738-1820)
캔버스에 유채, 162.6 X 176.5 cm, 카네기 미술관, 피츠버그
비너스 Venus 여신은 땅에 흘러내린 아도니스 Adonis 의 피에 향기로운 신주(神酒) 넥타르를 뿌렸다. 그러자 누런 흙에서 거품이 일며 피가 부풀어올라서는, 얼마 안 되어 꽃으로 피어났다. 색깔은 핏빛 그대로 새빨갛고 모양은 거친 껍질이 씨앗을 감싸고 있는 석류와 흡사했다. 그러나 그 꽃의 시간은 잠깐이었다. 꽃이 대에 너무 가볍게 붙어있어 바람만 불어도 쉽게 떨어졌다. 그래서 이 꽃은 바람꽃, 즉 아네모네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 오비디우스 Ovidius (BC. 43-AD. 17)의 "변신 Metamorphoses" 중에서
며칠 전엔가 케이블 뉴스 채널을 보는데 “꽃미남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남성들의 미용 열풍을 소개하고 있었어요. 뭐, 이젠 전혀 놀랍지 않은 주제지만 말이에요. 그걸 보면서 문득 "꽃미남"이란 단어가 이젠 일상용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미남이라는 신조어가 처음 매체에 등장한 게 2000년 전후였던 것 같은데, 그때는 참 야릇하게 들렸었죠. 꽃이 갖는 아름다우면서도 연약한 이미지가 남성과 결부된 것도 그렇고, 꽃단장 꽃돼지 하는 식으로 꽃이 접두사로 쓰일 때의 그 살며시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느낌까지 어우러졌으니 말이에요... 그처럼 이 단어는 아름다운 남성에 대한 찬미와 동시에 희롱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고 있어서, 단어 자체가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남성상에 대한 도전이었지요. 그래서 매체들은 꽃미남이라는 말과 꽃미남 선호를 단순한 유행 이상의 어떤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여 집중분석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남성에 대한 선호나 추구가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일상의 일부가 되면서, 매체에서 꽃미남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일이 한동안 뜸했었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잦아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올해 초에 영화 “왕의 남자 (2005)”의 주인공이 예쁜 남자 열풍을 일으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꽃 +미남 의 조합은 대체 누가 어떻게 생각해낸 걸까요? 어느 날 그게 갑자기 궁금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적뒤적해보기도 했는데... 가장 그럴 듯한 대답은 순정만화를 보는 여학생들이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순정만화에서 반짝이는 눈과 긴 머리를 휘날리는 미남자가 두둥~ 하고 나타날 때 뒤에 배경으로 꽃들이 만발한 데서 유래했다는 거죠. 이를테면 순정만화의 고전인 "베르사이유의 장미 (1979)"의 이 장면처럼요.
(예가 아주 적절한 건 아니군요. 이 만화의 주인공 오스칼은 사실 남장 여자거든요. 하지만 진짜 남자가 나올 때도 꽃배경이 나온답니다...^^ 주로 옛날 순정만화에서요. )
어떤 사람들은 꽃미남이란 단어가 신라시대 화랑(花郞)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화랑이란 말 자체가 꽃다운 남자를 뜻하는데다가 화랑이 되는 데는 무예나 풍류뿐만 아니라 미모가 필수조건이었다고 하거든요. 흠... 꽃미남이란 말이 화랑 때문에 만들어졌을 것 같지는 않지만 화랑들이 원조 꽃미남이었음은 분명하네요. ^^ 게다가 역사기록들을 보면 화랑들은 외모 가꾸기에 열심이어서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즐겨 착용했다고 합니다.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의 전작 "황산벌 (2003)"에는 그래서 화랑들이 하얗게 분을 바른 모습으로 나왔지요...
그러고 보면 꽃과 아름다운 남성을 결부시키는 것이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군요.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죽어서 아예 한 떨기 꽃이 된 미소년들 - 즉 꽃미남들의 결정판 - 이 등장하거든요. 대표적인 인물로는 수선화가 된 나르키소스 Narcissos, 아네모네가 된 아도니스 Adonis, 그리고 히아신스가 된 히아킨토스 Hyacinthos 가 있지요. 자아도취의 원조이자 지존인 나르키소스의 경우에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지만, 나머지 둘은 신들과의 사랑이 그들의 죽음을 초래했지요. 이들 “신의 남자”들에 대해 좀 이야기할까 합니다.
미소년 히아킨토스는 광명의 신 아폴론 Apollon (로마식으로는 아폴로 Apollo)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금기가 아니었고 플라톤 Platon (BC 429?~BC 347) 같은 철학자들은 오히려 이상적인 사랑으로 생각하기도 했지요... 아폴론은 그의 특기인 활쏘기도 리라 연주도 집어치우고 이 소년과 함께 돌아다니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원반던지기 시합을 했어요. 아폴론이 먼저 던졌는데, 신이 던진 원반은 구름을 흩어놓으며 하늘 높이까지 솟은 다음에야 떨어지기 시작했지요. 히아킨토스는 자신도 빨리 던지고 싶은 마음에 원반이 땅에 닿기도 전에 그것을 주우러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원반이 굳은 땅에 떨어지자 튀어 오르면서 그만 히아킨토스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그 다음 장면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히아킨토스의 죽음 (1801)
by 브록 Jean Broc (1771-1850)
포티에 미술관, 포티에
쓰러진 소년을 안아 올리는 포에보스 Phoebos (아폴론은 태양신 포에보스와 동일시되어 이 책에는 포에보스로 되어있습니다)의 얼굴은 그 소년만큼이나 창백했다. 신은 상처를 지혈하고 약초를 붙이며 육체를 떠나가는 히아킨토스의 영혼을 돌려놓으려 애썼다. 그러나 신의 의술도 소용없었다.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마치 누군가 망쳐놓은 정원의 오랑캐꽃이나 양귀비나 빛나는 노란 수술의 나리가 더 이상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수그러져 고개를 떨어뜨리고 땅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소년의 고개도 아래로 떨구어졌고 목은 떨어지는 머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어깨로 기울어졌다.
포에보스는 탄식했다. “네 상처에 내 죄가 있다. 너는 나를 슬프게 하고 나를 꾸짖는구나, 이 나의 손에 네 죽음의 책임이 있으니 말이다. (중략) 너와 함께 죽든지 네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그러나 운명의 법칙이 그것을 금한다. 대신 너는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고 너를 기억하는 내 입술에서 맴돌 것이다. 내 노래와 내가 타는 리라가 너를 찬미할 것이다. 너는 하나의 새로운 꽃이 되어 그 무늬로 나의 비통함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자 땅에 흘러내린 히아킨토스의 피에서 꽃이 피어났는데, 모양은 백합과 비슷했지만 색깔은 백합과 달리 밝은 자줏빛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폴론은 그 꽃잎에 탄식을 뜻하는 AI AI 라는 글자를 새겼지요. 이 꽃의 이름은 소년의 이름 그대로 히아킨토스, 즉 히아신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비디우스가 묘사한 히아신스의 모양이나 색깔은 현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히아신스와 전혀 달라요... 아마도 오비디우스가 살던 고대 로마에서는 히아신스가 나리 종류의 꽃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바로크 시대의 히아신스 꽃은 우리가 아는 히아신스와 같았나 봅니다. 그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티에폴로의 그림을 보면, 쓰러진 히아킨토스 옆에 이미 히아신스가 피어나 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그 꽃이거든요.
히아킨토스의 죽음 (1752-53)
by 티에폴로 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
캔버스에 유채, 287 x 235 cm
티센-보르네미사 컬렉션, 마드리드
티에폴로의 그림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아폴론과 히아킨토스가 한 경기가 원반던지기가 아니라 테니스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을 주문한 독일의 공작이 테니스 애호가였기 때문이랍니다. 그 공작에게는 함께 테니스를 치곤하던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이 그림을 주문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이 그려지기 얼마 전에 영국의 왕자가 테니스를 치다가 그 공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 또한 이 그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하고요.
히아킨토스를 죽게 만든 것은 사실 바람의 신 제피로스 Zephyros 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제피로스 역시 히아킨토스를 사랑했는데, 소년이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폴론의 사랑만 받아들였기 때문에, 복수심에서 원반이 소년 쪽으로 튀게 바람을 일으켰다는 것이죠. 흠...남성들간의 삼각관계라... 만약 그렇다면, 제피로스는 자신의 사랑을 거절한 히아킨토스가 그 사랑을 차지한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맞게 함으로써, 한 사람에게는 육체적 고통과 죽음을 다른 한 사람에게는 불사의 생명 동안 계속될 지독한 정신적 고통을 준 것이군요. 사랑의 거절에 대한 복수 치고는 너무나 잔인하군요...
히아킨토스와 아주 비슷한 운명을 맞은 것이 바로 아도니스입니다. 아도니스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 Aphrodite (로마식으로는 베누스, 비너스 Venus) 의 사랑을 받았지요. 미의 절정인 아프로디테가 자신보다도 아름답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이 꽃미남의 미모의 경지를 알만합니다. 물론 아프로디테가 눈에 뭐가 씌워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요. 왜냐하면 아프로디테는 어린 아들인 에로스 (로마식으로는 쿠피도스, 큐피드 Cupidos) 와 놀다가 잘못해서 아들이 가진 사랑의 화살에 찔렸고 그 순간 아도니스를 보게 돼서 열렬한 사랑에 빠졌거든요. ^^ 초기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카라치의 그림은 이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너스, 아도니스, 큐피드 (1595)
카라치 Annibale Carracci (1560-1609)
캔버스에 유채, 212 x 268 cm,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아프로디테가 어느 정도로 아도니스에게 반했는가 하면... 오비디우스의 묘사에 따르면, 사냥을 좋아하는 아도니스와 늘 함께 하기 위해, 마치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처럼 옷을 추켜서 질끈 묶어 입고 활과 화살통을 매고 숲 속을 뛰어다니며 자신도 사냥에 열중했다는 것입니다. 예전의 아프로디테 같으면 언제나 긴 옷으로 성장하고 머리가 헝클어질 것을 염려해 절대 뛰지 않고 피부가 그을릴까봐 그늘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
그러면서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사냥을 즐기는 것이 늘 염려되어 위험한 짐승들은 사냥하지 말라고 여러 번 이르고 때로는 사냥을 말리기도 했지요.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파의 대가 티치아노의 그림은 그런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프로디테가 자신의 성지인 키프로스 섬을 돌보기 위해 잠시 떠났을 때, 혈기왕성한 아도니스는 기어이 멧돼지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랬다가 사나운 멧돼지의 어금니에 받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게 되었죠. 일설에는 이 멧돼지가 아프로디테의 남편인 헤파이스토스, 또는 아프로디테의 연인 아레스였다고 합니다. 아프로디테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도니스를 질투해서 멧돼지로 변신해 해치웠다는 것이죠.
비너스와 아도니스 (1553-54)
by 티차아노 Vecellio Tiziano (1490-1576)
캔버스에 유채, 186 x 207 cm,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키테레아 Cytherea (아프로디테의 별칭) 가 재빠른 백조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죽어가는 소년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얼른 백조들의 머리를 돌렸다. 그녀가 공중에서 내려다본 아도니스는 이미 피 속에 누워있는 생명 없는 시체였다, 그녀는 수레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옷과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고 격렬히 가슴을 치며 운명의 여신들을 원망했다. “그러나 모두 그대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외쳤다. “아도니스, 내 슬픔의 영원한 징표가 남을 것이다. 해마다 너의 죽음을 재현하는 의식이 나의 비탄을 새롭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네 피는 꽃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의 피에 신의 술인 넥타르를 부었고 맨 앞에 소개한 글귀처럼 거기에서 아네모네 꽃이 피어난 것이죠...
아네모네 (연대 미상)
by 르누아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일설에는 저승의 여왕인 페르세포네 Phersephone 가 아도니스의 죽음에 개입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도니스가 아직 어렸을 때 그의 꽃미남으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본 아프로디테가 아이가 자라면 연인으로 삼고자 남편 몰래 페르세포네에게 아이를 맡겼는데, 세월이 흘러 페르세포네가 아도니스에게 반해버린 것이었지요. 그래서 나중에 아도니스를 찾으러온 아프로디테에게 돌려주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최고신 제우스 Zeus (로마식으로는 유피테르, 쥬피터 Jupiter)가 중재를 맡아 아도니스에게 1년의 반은 지상에서 아프로디테와 함께 나머지 반은 지하에서 페르세포네와 함께 보내라고 명하였다지요.
그러나 아도니스 역시 아프로디테를 더 좋아해서 자꾸만 지상에 머무르려 했기 때문에 페르세포네가 아프로디테의 남편 혹은 다른 연인의 질투를 부추겨 그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저승에서만 살아야 할 테니까요. 그러나 아프로디테의 슬픔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신들이 다시 중재에 나서서 아도니스가 해마다 1년 중 삼분의 일은 지상에서 아프로디테와 함께 또 삼분의 일은 지하에서 페르세포네와 함께 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지내도록 했다는군요.
이처럼 사랑과 미의 여신과 저승의 여신 사이에서 지상과 지하를 왕복하는 아도니스는 예전에 제가 소개한 적이 있는 서아시아 신화의 탐무즈 Tammuz 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참고: 이슈타르, 사랑과 전쟁의 여신)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0-1941) 같은 신화학자들은 아도니스가 원래 서아시아에서 온 식물신이라고 말합니다. 아도니스가 이승과 저승을 왕복하는 것은 식물이나 곡물이 해마다 겨울이 되면 죽고 봄이 되면 부활하는 상징이라는 것이죠.
페르세포네 (1877)
by 로세티 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
캔버스에 유채, 46 x 22 inch, 개인 소장, 런던
재미있는 것은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를 놓고 다투는 저승의 여왕 페르세포네도 다른 이야기에서는 지상과 지하를 왔다갔다 하는 곡물의 상징이라는 것이죠. 언젠가 따로 이야기할 일이 있겠지만 페르세포네는 본래 대지와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 Demeter (로마식으로는 케레스 Ceres)의 딸로서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 Hades (로마식으로는 플루토 Pluto) 에게 납치되어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데메테르의 간절한 노력으로 제우스 신이 개입해서 페르세포네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게 되었지만 그 전에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의 계략으로 석류 네 개를 먹었기 때문에 해마다 넉 달 동안은 저승에서 남편과 지내야 한다는 조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라파엘전파 화가인 로세티의 그림에서 페르세포네가 석류를 들고 있는 것이죠.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라는 광고가 생각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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