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스크랩] 이슈타르, 사랑과 전쟁의 여신 2001.12.5.

황령산산지기 2007. 2. 1. 11:18

 
로세티, 아스타르테시리아의 아스타르테
Astarte Syriaca (1877) ▶
로세티 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
캔버스에 유채, 183 x 107 cm
맨체스터 시립미술관, 맨체스터


    무지하게 오랜만입니다. ^^;; 혹시 칼럼지기가 죽었나 하셨겠습니다. 아직은 안 죽었습니다... 곧 스트레스로 죽을지도 모르겠지만요...ㅠ_ㅠ
    그럼 드디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 Ishtar 이야기를 할께요.
    사랑과 전쟁...이 양립하기 힘든 것들을 함께 관장하는 여신이란 점에서 그녀가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많은 얼굴을 가진 여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요.
    가장 단순하게는 아름다움과 사랑, 풍요의 여신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의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원형입니다.
    하지만 옆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비너스와는 어딘지 느낌이 틀려요. 더 강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입니다.
    그녀는 지혜로운 전쟁의 여신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의 아테나/미네르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녀는 고대 서남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수천년에 걸쳐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숭배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신 중의 하나였습니다.
    선주민족인 수메르인들에게서는 이난나 (Inanna 하늘의 여왕을 뜻함), 아카디아,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에서는 이슈타르 (Ishtar 빛을 뜻함),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 (Astarte)라 불리웠죠.
    유대인들에게도 그 신앙이 전파되어 기원전 6,7세기경 신(新)바빌로니아 제국이 세력을 떨칠 때 예루살렘에서도 이 여신의 숭배가 행해졌고, 이것을 유대의 예언자들이 개탄하는 내용이 성서에 나옵니다. 구약성서에 언급되는 아스다롯 Astaroth 여신이 바로 이 여신이랍니다.

    그녀와 관련된 가장 잘 알려진 신화는 "이슈타르의 명계하강 the Descent of Ishtar"이라고 불리는 그녀의 저승 방문 이야기와 바빌로니아의 영웅서사시 길가메시 Gilgamesh 이야기입니다.
    사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나오는 이슈타르의 모습은 영 형편없습니다. 그녀는 영웅 길가메시에게 구애하지만 그는 이슈타르가 바람둥이라는 이유로 보기좋게 거절하죠. 그러자 그녀는 화가 나서 천신(天神) 아누 Anu(수메르에서는 안)에게 부탁해서 하늘의 황소를 풀어서 복수하는 치사한 면모를 보이죠. 게다가 더 한심하게도 그 복수조차 성공 못합니다. 길가메시가 황소를 해치웠거든요. ^^;;
    하지만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이슈타르의 모습은 그녀가 일반적으로 숭배되던 모습과 모순됩니다. 그녀는 바빌로니아 성전(聖典)에서 '만군의 지휘자,' '율법을 정하는 입법자'로 불리며 용맹하고 정의로운 여신으로 찬미받았거든요. 또 '전쟁터의 귀부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일곱 마리 사자가 끄는 전차를 몰고 손에는 활을 들고 직접 원정에 뛰어들어 적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군요. 이런 여신이 그런 치사한 방법으로 복수를 시도했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반면에 여러 신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그녀가 바람둥이 기질이 있고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은 맞는 것같습니다 ^^;; 한마디로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슈타르의 부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과장한 것같군요.

    이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서에서의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탓에 그녀는 현대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에서도 사악한 요부 정도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서 기록자들이 볼 때,이슈타르는 이교의 여신, 특히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바빌론에서 열렬히 숭배되는 여신인 데다가, 사랑과 생식의 여신이므로 즉 음란한 여신이었죠.
    더우기 이슈타르 신전의 여사제 중에는 매춘을 담당하는 여사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즉, 특정한 시기에 왕이나 귀족이 여신에게 공물을 바치고 여사제와 성행위를 갖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러한 행위는 풍요를 비는 제식이었으며 그당시 일반적인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신성한 행위로 받아들여졌다고 해요. 그러나 정조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끔찍한 추태로 여겨졌지요.

    하지만 신화학에서 이슈타르는 대표적인 '위대한 여신 Great Goddess'입니다. "위대한 여신"이란 어떤 신보다도 먼저 인류에게 숭배되기 시작한 지모신(地母神), 즉 생명의 여신, 모든 존재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생명과 풍요를 베푸는 자비로운 어머니신이자 또한 그 생명을 때가 되면 가차없이 파괴하는 잔인한 신, 그리고 그 파괴로부터 다시 새로운 생명을 끌어내는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강력한 신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바빌로니아 성전에서는 이슈타르를 '세계의 광명', '신 중의 신,''자궁을 여는 자', '죄를 용서하는 자,' '힘을 주는 승리의 여신' 등으로 부릅니다.
    문명 이후에 성립된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계보에서 그녀는 천신이나 월신의 딸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그녀에 대한 신앙이 원시시대부터 시작해 가장 오래되었을 것이라는군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저패니메이션 "슬레이어즈 Slayers"의 로드 오브 나이트메어 Lord of Nightmare가 생각난답니다.
    금빛의 마왕. 모든 혼돈의 어머니. 모든 존재의 어머니. 마족들의 참된 왕. 밤보다 깊은 존재. 어둠보다 더욱 어두운 존재, 혼돈의 바다. 유와 무, 조화와 혼돈, 선과 악, 신과 마, 그 모든 대립되는 것들의 근원이라는 그 마왕 말이죠.
     그 애니 안 보신 분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정신없이 웃기면서도, 생각할수록 진지하고 심오한 내용이 담겨있는 애니입니다. 음... 얘기가 딴길로 막 새네요...^^;;

    인문학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슈타르의 명계하강 신화입니다. 이 신화는 판본에 따라 약간씩 내용이 다르지만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


불릿, 이슈타르
◀ 이슈타르 Ishtar
불릿 Susan Seddon Boulet (1941-1997)


    이슈타르는, 일설에는 생명의 여신으로서 죽은 자들의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다른 설에는 그녀의 연인 탐무즈 Tammuz(수메르 신화에서는 두무지)를 찾기 위해서, 그녀의 배다른 자매 에레슈키갈 Ereshkigal이 다스리는 지하세계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위험을 예감한 이슈타르는 부하 닌슈부르에게 만약 자신이 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을 경우 해야 할 조치들을 미리 지시해 놓고 길을 떠났다.
    성미급한 이슈타르는 저승으로 들어가는 문에 닿자마자 문을 격렬히 두드리며 "열지 않으면 때려부수겠다!"고 소리쳤다. 수문장 네티가 명계의 여왕 에레슈키갈에게 자매가 찾아왔다고 알리자 그녀는 일순간 당황하였으나 이내 냉정하게 "그녀가 저승의 법도를 따를 경우에만 들여보내라"고 명령하였다.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일곱 개가 있고 문을 통과할 때마다 지상에서 누리던 권세의 상징을 버려야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따라서 이슈타르는 첫번째 문에서 왕관을 벗어놓고 차례로 문을 통과할 때마다 몸에 지닌 것을 하나하나 벗어놓아 마지막 일곱번째 문에서는 아예 알몸이 되었다.
    이렇게 무력해진 상태로 이슈타르가 에레슈키갈 앞에 서자, 명계의 여왕은 그녀를 조롱하며 부하인 저승신들을 시켜 그녀에게 혹독한 형벌을 가하게 하였다. 결국 이슈타르는 형벌의 고통으로 죽어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한편 이슈타르가 명계에 있는 동안 지상의 농작물들은 전혀 자라지 않았으며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생식작용도 멎었다. 사흘 밤, 사흘 낮이 지나도 주인의 소식이 없자 닌슈부르는 주인이 떠나기 전 지시한 대로 지혜의 신 에아 Ea (수메르의 엔키)를 찾아갔다.
     에아는 거세한 미남 피조물을 만들어 에레슈키갈에게 선물로 보내도록 하고 또 생명을 소생시키는 약초와 약수를 닌슈부르에게 주었다. 닌슈부르가 에레슈키갈에게 그 선물을 전하자 그녀는 기뻐하며 자신도 보답으로 선물을 내려주겠다고 하였다. 닌슈부르는 자신의 주인 이슈타르의 시신을 넘겨줄 것을 부탁하였다.
     닌슈부르가 돌려받은 이슈타르의 시신에 약수를 뿌리고 약초를 먹이니 그녀는 생명을 되찾았다. 이슈타르가 부활한 것에 놀란 명계의 신들은 "지하세계에서 이런 일은 아직껏 없었다. 죽었다가 살아난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항의하며 이슈타르를 붙들고 이 곳을 떠나려면 대신할 자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이슈타르는 부하 닌슈부르는 물론이고 어떤 사람도 자기 대신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마침 자신이 목숨까지 걸고 찾아헤매던 연인 탐무즈가 태연히 지상의 왕좌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가 치밀어 그를 자기 대신으로 저승신들이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런데 탐무즈의 누이 게슈티난나가 그의 대역을 자원하였고, 결국 이슈타르는 탐무즈와 게슈티난나가 반년씩 교대로 명계에서 지내도록 한다.
    이슈타르는 이로써 명계를 벗어나 지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들어올 때와는 반대로 첫번째 문에서 옷을 돌려받고, 문을 나올 때마다 한가지씩 돌려받아 마지막 문에서는 왕관을 받아쓰고 일곱 가지 신권을 되찾게 되었다. 그녀가 돌아오자 모든 생명체는 다시 생식기능을 되찾아 지상은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이슈타르의 문
복원된 이슈타르 문 Ishtar Gate ▶
BC 6-7세기경, 바빌로니아
채유벽돌, 높이 37피트 넓이 32피트
페르가몬 박물관, 베를린


    어떤 신화학자들은 이 신화에 대해서 이슈타르가 비록 지하세계를 정복하지는 못하였으나 최초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지상으로 돌아옴으로써 저승의 비밀과 힘을 획득하고 월등한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이야기에서는 이슈타르와 탐무즈의 관계가 너무 안 좋게 끝나는군요 ^^;; 좀더 낭만적인 이설에 따르면 당시 탐무즈는 저승에 있었는데, 이슈타르가 지상으로 데리고 나오려고 하니까 명계의 여왕 에레슈키갈이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타협을 거쳐 1년의 반은 지상에서 나머지 반은 지하세계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슈타르와 탐무즈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의 딸이며 저승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된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은 미소년 아도니스 이야기와 놀랍도록 흡사하답니다. 아마 이슈타르 신화가 이 그리스 신화들의 원형이 된 듯해요. 이 신화들은 제가 나중에 소개해 드리지요.
    이 신화들의 공통점은 풍요의 여신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 1년의 반은 저승에서 반은 지상에서 지내게 된다는 것인데, 이 인물들은 바로 겨울동안 씨앗으로 땅에 묻혀있다가 봄이 되면 싹이 터서 자라고 다시 겨울이 오면 죽었다가 봄이 되면 부활하는 곡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요.
    신화학의 고전인 프레이져 J.G.Frazer의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에 따르면 이런 신화들은 농경문화의 풍요제식과 관련된 것으로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이시스 신화, 그리스의 아도니스·페르세포네 신화를 비롯하여 세계의 각지에 있다고 합니다.

    아, 한가지 더... 이슈타르나 아스타르테는 모두 빛 또는 별이라는 뜻을 갖고 있고, 여신은 스스로 "나는 새벽의 샛별, 저녁의 샛별이다"라고 하여 금성의 인격화된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비너스가 금성이죠.

    후우..드디어 대강 다 썼네요. 읽느라고도 고생하셨을 겁니다. 제가 왜 이슈타르 얘기를 계속 미루어왔는지 이제 아시겠죠? ^^;;

    아참...그리고 옆의 사진은 도시 바빌론의 8개 문 중의 하나인 이슈타르의 문을, 발굴된 벽돌 잔해를 모아서 복원한 것입니다. 푸른빛의 차갑고 우아하고 웅장한 문...정말 멋집니다.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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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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