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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선들과 함께 서왕모의 복숭아 잔치로 2002.6.4.

황령산산지기 2007. 2. 1. 11:18





군선도 群仙圖 (조선 朝鮮 1776년) 여덟폭 병풍 중 부분
김홍도 金弘道 (1745-1806?)
종이에 담채, 132.8 x 575.8 cm, 호암미술관


    단원檀園 김홍도의 작품세계는 너무나 잘 알려진 풍속화뿐만 아니라 산수화, 신선화, 그리고 불화에까지 이를 정도로 넓고 또 깊습니다. 일반 대중의 현실 생활을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눈으로 잡아낸 이 거장의 풍속화는 언제 보아도 감탄스럽지만, 이상 세계의 멋과 서정을 담아낸 그의 신선화는 제게 한층 더 매혹적입니다.

    위의 그림은 단원의 대표적 신선화인 "군선도群仙圖"인데, 제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개성 넘치는 여러 신선들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을 거침없이 시원스러운 선으로 박력있게 나타낸 작품이죠. 그런데, 이 신선들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이들은 신선들의 여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왕모西王母 (Xi Wang Mu) 의 반도회蟠桃會, 즉 3천년마다 열리는 복숭아 잔치에 초대를 받아 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서왕모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숭배되었고 문학과 예술 작품에도 자주 등장했습니다. 아래 그림은 중국의 일러스트레이터 루 양광 Lu Yanguang (1948-)이 묘사한 서왕모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의 아득한 서쪽, 황하黃河가 시작되는 곳에 아름다운 옥이 많이 나는 산이 있는데, 서왕모는 바로 그 산, 곤륜崑崙 (Kunlun) 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루양광, 서왕모


    곤륜산은 오래된 전설에서는 이 세상에 있는 여러 신비한 산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지만, 중국의 토착종교인 도교道敎 (Taoism) 가 성립된 이후에는, 다른 세상에 있는 신선들의 본거지, 또는 신선세계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격상되었죠. 서왕모 역시 오래된 전설에서는 곤륜산의 산신 정도인 반인반수의 존재였지만, 도교가 발전하면서 아름답고 기품있는 여선女仙이자 신선들의 대모大母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서왕모에 대해 언급한 가장 오래된 책은 "산해경山海經"이라는 기묘한 지리서입니다. (지리서라기보다는 괴수대백과에 가깝지요. ^^) 이 책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왕조라는 하夏나라 때, 즉 BC 2000년 경에 쓰여졌다고 전해지지만, 학자들은 이 책이 실제로는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BC 770-221)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는 전반적으로 사람의 형상이지만,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의 이빨을 가졌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머리장식을 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아주 기괴한 모습이죠...^^;; 그녀는 또 휘파람을 잘 불고(?...!), 하늘에 있는 재앙과 질병의 신들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서왕모는 또 한漢나라(BC 202-AD 220) 때의 책인 "회남자淮南子"에 잠깐 나옵니다. 활쏘기의 명수인 예襤라는 영웅이 서왕모에게서 불사약을 두 개 얻었는데, 그의 아내이며 절세의 미녀인 항아姮娥가 그 약을 혼자 다 먹어버리고 신선이 되어 달로 달아났다는 것이죠. 결국 항아는 벌을 받아 추한 두꺼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전설에는 이설도 많은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고 관련된 문학작품도 많아서 나중에 따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탁본, 서왕모

    위의 그림은 한나라 때의 고분 벽돌을 탁본한 것인데, 이 탁본에 나오는 서왕모는 산해경에 나오는 그런 기괴한 모습이 아니군요. ^^ 그녀는 위엄있는 귀부인의 모습에, 음陰과 양陽의 균형과 합일을 상징하는, 한쪽은 용, 다른 한쪽은 호랑이인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그 아래로 왼쪽에는 발이 세 개인 새, 오른쪽에는 불로불사의 약초를 들고 있는 옥토끼가 있는데, 세 발 달린 새는 서왕모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파랑새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른쪽에 있는 옥토끼가 달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새는 해를 상징하는 세발까마귀, 즉 삼족오三足烏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운데의 두꺼비는 변신한 항아라고 합니다. 벌을 받아 두꺼비가 된 것 치고는 즐거워 보이는데요.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오른쪽 위쪽에 있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 바로 구미호九尾狐입니다. 구미호는 우리 나라의 무서운 전설에 요사스러운 존재로 흔히 등장하지만 원래는 신성한 동물이었다고 하네요.

민화, 서왕모    서왕모에게서 불사약을 얻었다는 예와 항아의 전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한나라 때 서왕모는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추구하는 신선사상神仙思想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죠. 신선사상은 춘추전국시대 말기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선사상은 그 시대에 함께 발전한 도가道家철학과는 다른 것이지만 관련은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우지만 ^^ 도가철학에서 세상 만물의 근본원리는 도道인데, 도道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고 스스로 존재하므로 자연自然하다고 하죠. 도道와 일체가 되어 자아와 세상 만물과의 구분이 사라진 사람을 진인眞人이라고 하는데, 즉 신선을 말합니다. 도가철학을 발전시킨 장자莊子(BC 369-BC 289?)는 서왕모가 바로 이러한 경지에 이른 진인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신선이라는 존재의 이런 철학적인 의미보다는 신선의 불로불사나 신선이 할 수 있는 갖가지 신비한 일들 (구름과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것을 포함해서 ^^)이 일반대중과 권력자들의 관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선사상과 신선이 되는 비법이라는 신선술이 유행하게 되었죠.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BC 259-BC 210)가 신선술을 닦는 방사方士들을 동원해서 불사약을 구하려 했고, 한나라의 무제武帝 (BC 156-BC 87)가 불로불사를 위해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방사들을 잘 대접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서왕모는 불사의 선약이나 먹으면 장생할 수 있는 복숭아를 지니고 있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불로장생으로 이끌어주는 중요한 신선으로 여겨졌습니다. 무제와 관련된 서왕모의 전설도 있습니다. 오른쪽의 조선시대 문자도文字圖를 보세요. 문자도는 민화의 한 종류로 효孝, 제悌, 충忠, 신信 같은 한자 속에 그 글자의 의미와 관련된 옛 이야기를 그려넣어 꾸미는 독특한 그림이죠. 그중에서 신信자 그림에는 대개 파랑새와 궁전이 나타나는데, 바로 "한무고사漢武故事"에 나오는 아래 전설에서 서왕모가 찾아온다는 약속과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죠.

    평소 복숭아를 좋아한 무제는 뒤뜰에 복숭아나무를 많이 심어 봄에는 꽃을 즐기고 여름에는 열매를 먹었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에는 복숭아가 한 개도 열리지 않았다. 무제가 이것을 근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마리의 파랑새가 날아와 무제 앞에 날개를 접고 앉았다. 무제가 이상하게 여겨 신하인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으니 그는 이 파랑새가 서왕모가 복숭아를 가지고 올 것을 약속하는 전령이라고 하였다.

    동방삭의 말대로 얼마 후에 서왕모가 잘 익은 복숭아 서른 개를 가지고 와서 무제에게 선사했다. 이때 동방삭이 그중 세 개를 몰래 감추었다. 무제는 그 복숭아를 맛있게 먹고 그 씨를 뒤뜰에 심으려 했으나 서왕모는 하늘의 복숭아라 땅에 심을 수 없다고 말렸다. 그리고 그녀는 이 복숭아 한 개를 먹으면 천년을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방삭은 빼돌린 복숭아 세 개를 먹고 3천년을 살았다고 한다.

    또 위魏나라(225-265) 때 쓰여진 "목천자전穆天子傳"이라는 소설에는 주周나라(BC 1046-BC 771)의 목왕穆王이 여덟 마리의 좋은 말을 타고 황허의 발원지를 찾아 서쪽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황허의 신의 안내로 서왕모와 만나 곤륜산의 아름다운 못 요지瑤池에서 잔치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지연도, 서왕모요지연도, 서왕모2

요지연도 瑤池宴圖 작자미상 (조선 19세기)
366x134.5cm, 경기도박물관 소장

    위의 그림은 요지연도, 바로 서왕모가 목왕을 맞아 요지에서 벌인 잔치를 그린 조선 후기의 민화입니다. 요지연도가 그려진 병풍은 생일, 혼인, 회갑 잔치 등에 많이 쓰여졌다고 합니다. 잔치의 이상이라고 할 만한 신선들의 화려한 잔치를 그린 그림인 데다가, 불로장생의 바램을 담은 그림이라 잔치 병풍으로는 적격이었겠지요.

    그림 가운데에는 서왕모가,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그림에서는 왼쪽)에는 목왕이 잔칫상을 받고 앉아서 선녀와 봉황이 춤추는 것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곤륜산을 둘러싸고 흐른다는 약수弱水가 물결치고 있는데, 잔치에 초대받은 신선들이 새의 깃털도 가라앉는다는 이 물을 걸어서 건너오고 있죠.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221-589)에는 신선사상이 도가철학과 불교의 영향을 받아 도교로 정립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서왕모에 대한 숭배가 특히 성행했고 그녀에 얽힌 전설도 많았습니다. 이후 서왕모는 점차 도교의 최고신인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부인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당唐나라(618-907) 초기에까지 서왕모는 신선일 뿐만 아니라 자비로운 어머니신으로 여겨져 대중에게 널리 숭배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교가 대중화되어 관세음보살에 대한 숭배가 더 성행하게 되면서 서왕모에 대한 숭배는 차차 약해지게 되었고 유교가 자리잡으면서는 더욱 약해졌다고 합니다. 요즘도 중국 문화권의 도교 사원에 가면 서왕모의 사당이 있다고는 하는데,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모양이더군요.

민화, 서왕모2    그러고보니 명나라 때 오승은吳承恩(1500?~1582?)이 쓴 "서유기西遊記"에도 서왕모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여행을 떠나기 한참 전 하늘에서 한창 말썽을 부리던 시절에, 옥황상제가 손오공을 반도원, 즉 먹으면 불로불사하는 복숭아밭의 관리로 임명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던 손오공은 몇천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이 복숭아들을 순식간에 거의 다 먹어치워 버리죠. 그리고는 벌레로 변하여 나뭇가지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옥황상제의 황후 서왕모의 명을 받고 선녀들이 복숭아를 따러 옵니다. 그 선녀들에게서 반도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손오공은 도술로 선녀들이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해 놓고는 반도회가 열릴 요지로 가지요.

    거기에 이미 차려져 있는 산해진미와 좋은 술을 보고는 자신의 털을 뽑아 잠벌레로 만들어 사방에 뿌려서 음식을 지키고 있던 이들을 재우고 거기 있는 술과 음식을 다 먹어치우고 도망쳐서 서왕모를 비롯한 여러 신선들을 아주 화나게 하죠... ^^

    우리 나라에도 도교가 전파되어 민간신앙에서부터 예술과 학문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서왕모 또한 그리 낯설지 않은 존재입니다. 위에 소개한 그림들이나 옆의 조선 시대 민화에 그려진 서왕모를 보아도 알 수 있죠. 고전소설에서도 그녀에 대한 언급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청의 어머니가 태몽을 꾸는 대목을 보면, 꿈속에서 아름다운 선녀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소녀少女는 서왕모西王母 딸일러니, 반도진상蟠桃進上가는 길에 옥진비자玉眞婢子 잠깐 만나 수어數語 수작酬酌 하옵다가 시각 조끔 어긴고로, 상제上帝께 득죄하야 인간에 내치심에 갈 바를 모르더니, 태상노군太上老君, 후토부인后土夫人, 제불보살諸佛菩薩 석가釋迦님이 댁으로 지시하여 이리 찾아 왔아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 "심청가沈淸歌" 중에서

     심청은 본래 서왕모의 딸인데, 옥황상제에게 복숭아를 바치러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어서 그 벌로 인간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죠. (우리 나라 고전소설 속 남녀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전생에 선인이나 선녀죠. ^^;; ) 또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를 보면 방자가 이도령의 명을 받아 춘향을 부르러 가는 대목에서 "맵시 있는 방자녀석 서왕모 요지연瑤池宴에 편지 전하던 청조靑鳥같이 이리저리 건너가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이지만 서왕모는 이처럼 낯설지 않으면서도 유럽 신화의 신들보다도 오히려 더 신비로운 신, 가깝고도 먼 신인 것 같습니다...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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