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시 관직. 수의(繡衣)·직지(直指)라고도 한다. 임금의 직속으로 지방에 밀파되어 그곳 행정과
백성의 실정을 조사하였다. 암행어사는 임금이 직접 임명하며 그 임무는 대외비(對外秘)였다. 《중종실록(中宗實錄)》에 이 관명이
처음 나타나는데, 자주 파견된 것은 인조 이후였다. 이 제도에는 반대도 있었으나 역대임금은 꾸준히 활용하였다. 특히 왜란·호란으로
왕조정치가 쇠퇴되자 더욱 빈번히 파견되었고 또한 제도도 정비되었다. 암행어사에 임명되면 임금으로부터는 봉서를, 의정부로부터는
사목(事目)·마패·유척(鍮尺)을 받았다. 암행어사로 임명되면 목적지로 직행, 변장하고 염문정찰하여야 했다. 관찰사와 동등한 직권을
지녔으며, 패행수령(悖行守令)은 당장 관인을 압수하고 봉고파직시키기도 하였다. 중앙에 돌아와서는 서계(書啓)와 별단(別單)을 임금에게
바쳤다. 이 제도는 1892년(고종 29) 전라도 암행어사 이면상(李冕相)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유척 [鍮尺]
<명사> ≪역사≫ 검시 때 지방 수령이나 암행 어사 등이 쓰던, 놋쇠로 만든 자. <동의어> 놋자.
*봉서 [封書] <명사> ① 봉투에 넣어 봉한 편지. <동의어> 봉장(封狀). 함서. 함찰.
② 임금이 종친이나 근신에게 내리던 사사로운 편지. ③ 왕비가 친정에 내리던 사사로운 편지.
*사목
[사ː―][事目] <명사> 공적인 일에 관한 규칙.
*왕조시대의 탐욕스러운 관리들은 도량형(度量衡)을
속여 부정 축재를 했다. 백성들에게는 엉터리 측정기구를 써서 세금을 많이 거뒀으나 나라에는 정량만 바치고 나머지를 챙겼다.
그
탐관오리들을 적발하던 암행어사의 휴대품은?우선 마패. 마패는 지방 출장길에 나선 관원이면 누구든 역마(驛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증표였다.
마패 외에 반드시 지녀야 하는 게 유척(鍮尺)이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로서 도량형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물건이다. 요즘으로
치면 국가표준의 측정기구다.
동서를 막론하고 위정자는 도량형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길이(度·도), 부피(양·量),
무게(형·衡)의 기준을 통일해야 공정하게 세금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도량형은 세종대에 정비됐다. 악성(樂聖)
박연(朴堧)은 문란한 아악(雅樂)의 기본 음률을 바로잡기 위하여 황종률관(黃鐘律管)을 만들었다. 이 황종률관의 길이를 척도로 나타낸 것이
황종척(黃鐘尺)이다. 황종척은 길이와 부피의 기준이 됐다. 또 황종률관에 들어가는 만큼의 물을 무게의 기준으로 정했다. 이는 마찬가지로 물
무게를 기준으로 한 프랑스 미터법보다 370년가량 앞선 과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등 전란을 겪으면서 도량형법은 다시 문란해졌다. 여러
번 정비했으나 전국적으로 실시되지는 못했다.
조선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독립국임을 선포했다. 풍전등화 같았던
대한제국은 1905년 3월 21일 제1호 법률을 공포했다. ‘도량형법’이다. 척(尺)을 길이와 부피의 기본으로, 냥(兩)을 무게의 기본으로 삼고
미돌(米突·미터)법을 병용할 수 있도록 했다.
1척은 30.303선지(先知·센티)미돌이었다. 그런데 30.303cm는 일본
곡척(曲尺)의 기준이었다. ‘독립국’ 대한제국이 도량형에서 일본에 ‘예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일제의 경제 수탈에 날개를 달아 준 셈이
됐다.
대한제국은 이에 앞서 1902년 도량형기의 제조 검정 기관으로 평식원을 설치하고 미터법을 도입했다. 1909년엔 일본식
단위인 ‘돈’과 ‘관’을 도입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1961년 옛 도량형 관계법을 폐지하고 국제 추세에 따라 미터법만 사용하도록
했다.
죄다 사라진 고유 도량형을 복원해 쓰는 건 불가능한 형국이다. 하지만 지금껏 일본 도량형 단위인 돈과 평(坪)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낄 만하지 아니한가?
*사각유척
소 장 :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유물번호 家 1053)
재 료 : 놋쇠 크 기 : 주척 103.50mm(반척), 예기척 137.37mm(반척), 황종척 173.08mm(반척), 포백척
246.27mm(반척), 영조척 154.19mm(반척)
놋쇠[鍮]로 만든 사각기둥 모양의 자의 사면에 주척, 예기척, 황종척,
영조척, 포백척이 음각(陰刻)되어 있습니다. 이 자에 새겨진 눈금은 매우 균일하며, 영조척과 포백척에 새겨져 있는 설명문은 그 자의 용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매우 뚜렷하고 품위가 있습니다.
*나노 유척(鍮尺)
“암행어사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마패, 박문수, 춘향전… ”
왕은 암행어사에게 봉서(封書)·사목(事目)·마패(馬牌)·유척(鍮尺)을 줬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어사 박문수’나 ‘춘향전 이몽룡’의 멋진 활약에 힘입어 ‘마패’만큼 매력적인 게 없는 것 같다. 마패는
말(역마)과 군사(역졸)를 동원할 수 있는 증명서로서 암행어사의 막강한 ‘힘(권한)’을 잘 보여줬다. 그런데 그 권한을 공명정대하게 써
탐관오리를 응징하려면 엄밀한 기준이 필요했다. 그 기준의 하나가 ‘유척’이다.
유척은 한 자 한 치 길이 표준 자. 지방 수령의
세금을 거두는 도구나 형벌을 내리는 도구가 규격에 맞는지 측정하는데 쓰였다. 말하자면 암행어사는 걸어다니는 국가
표준이었다.
2005년 12월, 가까운 문구점에서 서로 다른 회사가 만든 ‘플라스틱 30㎝ 짜리 자(尺)’를 10개쯤 사서 천천히
비교해보자. 대략 1㎜ 정도씩 들쑥날쑥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만든 기준(표준)자와 대부분 1㎜ 정도씩 차이가 날 것이다.
심지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만든 표준자조차 ‘20℃를 기준으로 ±1℃씩 변할 때마다 0.03㎜씩 오차가 날 수 있다’는 문구가 박혀 있을
정도다. 과학·산업적으로 0.03㎜∼1㎜ 편차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 그만큼 기준은 중요하다.
신관우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1㎚ 구조를 살펴보려면 여러 기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1㎚씩 정확하게 금이 그어진 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노
유척(표준) 만들기가 시작됐다. 궁극적으로는 0.1㎚ 짜리 잣대로 활용할 ‘X-선’, 0.4㎚씩 측정할 수 있는 중성자선에 대한 연구다. 이를
위해 지난 8, 9일 이틀간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에서 국내외 나노 구조 측정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전에 없던 수준(나노)에서
사용할 잣대의 기준을 가장 먼저 세우는 곳이 세계 나노기술 연구 중심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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