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태로움을 탄식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학생들이 사학과나 철학과를 회피하고 인문학 서적들이 팔리지 않아 재고만 쌓이는 현실이기에
당연한 걱정이라 하겠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가는 ‘국민’에 대한 국가주의적 세뇌를 목적으로 ‘민족적 긍지’를 심어준다는 ‘국학’이나 ‘국민윤리’로 연결될 수 있는 철학 등을 전략적으로 지원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과제가 ‘민족’보다는 자신을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팔 줄 아는 인간의 대량생산이니, 전통적 의미의 ‘국민적 인문학’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돈 안되는 학문’이 연구비 분배의 주된 주체인 정부나 기업화돼 가는 대학들의 푸대접을 받고 쇠퇴하는 것은 위기의 외재적 원인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과연 오늘날과 같이 틀에 박힌 인문학이 자신의 위기를 자초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가? 지금 자본과 국가가 인문학의 목을 졸라 질식사시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국가가 생산한 인문학은 자본과 국가의 공격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미 지역에서 근대 대학 제도의 형성과 함께 20세기 초반에 그 틀이 완성되고, 그 뒤에 한국으로 이식된 아카데미즘(순수학술) 인문학에는 주된 두 개의 특징이 있다. 하나는 연구 주체와 대상의 철저한 분리, 연구자의 ‘중립과 객관’이라는 고답적 자세이고, 또 하나는 ‘전공’끼리의 정밀한 구별과 연구자들의 극단적인 전문화다.
물론 ‘중립’이 강조된 상황에서도 철학도인 박종홍이 박정희를 위해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파시즘의 선언문을 기초해 주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국가에 의해 키워지는 학문이니 국가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 당연했겠지만, ‘고상한’ 현학이 장려되는 오늘의 분위기에서 아나키즘 연구자가 실재하고 있는 아나키스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 연구자의 다수가 현존하는 급진 좌파 운동과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하지는 않는다. 공부가 실존적인 ‘나’와는 무관한 하나의 ‘작업 재료’처럼 다루어지는, 지행합일이 불가능한 분위기에서 니체나 프롬과 같은 위대한 반란자를 연구했던 사람이 1980년대 독재정권 하에서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교육’을 강요하는 문교부 장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시적인 분야 나누기는 공부의 깊이에서 장점도 많지만 결국 사회와 소통할 수 없는, 지식 생산의 ‘라인’에서 한 나사만 돌릴 줄 아는 ‘전공자’를 만듦으로써 자본과 국가 앞에서 지식인을 무력화시키게 된다. 1930년대의 백남운이나 신남철, 전석담, 인정식 같은 거인들은 그들의 좁은 ‘전공’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사회’ 전체를 꿰뚫어볼 수 있었기에, 식민지 현실의 비판자로서 일제에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국사’ 전반 중에서도 하나의 인물, 하나의 기간, 한가지 비문이나 문헌만 ‘전문 연구’하는 사람은 신자유주의적 국가를 이념적으로 분석, 비판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낮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있는 광범위한 피해대중의 처지에서라면 그러한 종류의 인문학이 관심의 대상이 될 리 없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인문학 위기의 내재적 본질이 아닌가. 자유주의자들은 소련·중국에서 쓰였던 ‘학문의 당성(黨性)’과 같은 표현을 조롱하지만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특정 정치 조직에의 충성이라는 스탈린주의적 의미의 ‘당성’이 아닌, 체제에 짓밟히는 피해자의 처지에 서서 체제의 변혁을 도모하려는 의미의 ‘당성’이 필요하다. 사회를 진보시킬 수 있는 공부야말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가는 ‘국민’에 대한 국가주의적 세뇌를 목적으로 ‘민족적 긍지’를 심어준다는 ‘국학’이나 ‘국민윤리’로 연결될 수 있는 철학 등을 전략적으로 지원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과제가 ‘민족’보다는 자신을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팔 줄 아는 인간의 대량생산이니, 전통적 의미의 ‘국민적 인문학’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돈 안되는 학문’이 연구비 분배의 주된 주체인 정부나 기업화돼 가는 대학들의 푸대접을 받고 쇠퇴하는 것은 위기의 외재적 원인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과연 오늘날과 같이 틀에 박힌 인문학이 자신의 위기를 자초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가? 지금 자본과 국가가 인문학의 목을 졸라 질식사시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국가가 생산한 인문학은 자본과 국가의 공격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미 지역에서 근대 대학 제도의 형성과 함께 20세기 초반에 그 틀이 완성되고, 그 뒤에 한국으로 이식된 아카데미즘(순수학술) 인문학에는 주된 두 개의 특징이 있다. 하나는 연구 주체와 대상의 철저한 분리, 연구자의 ‘중립과 객관’이라는 고답적 자세이고, 또 하나는 ‘전공’끼리의 정밀한 구별과 연구자들의 극단적인 전문화다.
물론 ‘중립’이 강조된 상황에서도 철학도인 박종홍이 박정희를 위해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파시즘의 선언문을 기초해 주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국가에 의해 키워지는 학문이니 국가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 당연했겠지만, ‘고상한’ 현학이 장려되는 오늘의 분위기에서 아나키즘 연구자가 실재하고 있는 아나키스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 연구자의 다수가 현존하는 급진 좌파 운동과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하지는 않는다. 공부가 실존적인 ‘나’와는 무관한 하나의 ‘작업 재료’처럼 다루어지는, 지행합일이 불가능한 분위기에서 니체나 프롬과 같은 위대한 반란자를 연구했던 사람이 1980년대 독재정권 하에서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교육’을 강요하는 문교부 장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시적인 분야 나누기는 공부의 깊이에서 장점도 많지만 결국 사회와 소통할 수 없는, 지식 생산의 ‘라인’에서 한 나사만 돌릴 줄 아는 ‘전공자’를 만듦으로써 자본과 국가 앞에서 지식인을 무력화시키게 된다. 1930년대의 백남운이나 신남철, 전석담, 인정식 같은 거인들은 그들의 좁은 ‘전공’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사회’ 전체를 꿰뚫어볼 수 있었기에, 식민지 현실의 비판자로서 일제에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국사’ 전반 중에서도 하나의 인물, 하나의 기간, 한가지 비문이나 문헌만 ‘전문 연구’하는 사람은 신자유주의적 국가를 이념적으로 분석, 비판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낮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있는 광범위한 피해대중의 처지에서라면 그러한 종류의 인문학이 관심의 대상이 될 리 없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인문학 위기의 내재적 본질이 아닌가. 자유주의자들은 소련·중국에서 쓰였던 ‘학문의 당성(黨性)’과 같은 표현을 조롱하지만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특정 정치 조직에의 충성이라는 스탈린주의적 의미의 ‘당성’이 아닌, 체제에 짓밟히는 피해자의 처지에 서서 체제의 변혁을 도모하려는 의미의 ‘당성’이 필요하다. 사회를 진보시킬 수 있는 공부야말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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