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크랩

포샤의 납 상자

황령산산지기 2006. 1. 14. 22:38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 수전노 샤일록의 복합적 인간성, 지혜로운 여인 포샤의 결혼담 및 재판 장면 등 여러 면에서 지금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낭만 희극의 형식을 통해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사회의 문제성을 풍자했다. 봉건적인 신분이나 위계 중심에서 경제적인 부(富)가 중심이 되는 자본제 사회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갈등과 역전의 드라마를 펼쳐 보였다.

‘잔인한 유대인 및 세 개의 상자 이야기가 있음’이라는 부제를 붙여 출판했던 이 희극은, 샤일록이라는 봉건적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와 반봉건적 초기 자본주의 상인인 안토니오 사이에 벌이는 돈과 인간 사이에 얽힌 갈등과 겨룸의 드라마이다. 그 중에서 세 개의 상자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벨몬트에 사는 포샤는 매우 아름다운 처녀였다. 상속받은 재산도 어지간했다. 그녀가 배필을 구한다. 많은 젊은이가 결혼자금을 지참하고 벨몬트를 방문한다. 포샤는 결혼 상대자를 고르기 위해 금·은·납의 세 상자를 준비한 상태다. 그 중 하나에 자기 초상화가 들어 있다. 그 상자를 골라야 결혼할 수 있다. 각 상자에는 나름의 경구가 쓰여 있다. 금 상자에는 “나를 선택하는 자는 많은 남자들이 바라는 것을 얻으리라”, 은 상자에는 “나를 선택하는 자는 자신에 합당한 만큼을 얻으리라”, 납 상자에는 “나를 선택하는 자는 그의 것 모두를 내어 놓고 모험을 해야 하느니라” 하는 경구다.

처음 온 모로코공은 금 상자를 열었다. 남자들이 바라는 바를 얻고 싶었던 터이다. 그러나 거기엔 해골바가지가 들어 있었다. “번쩍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란 말과 더불어. 다음으로 아라곤공은 은 상자를 골랐다. 그에게 ‘합당한 만큼’이란 고작 ‘바보의 머리’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바사니오가 도착했다. ‘외모와 내부가 같지 않음을 통찰했던’ 이 베니스의 신사는 ‘모험’을 선택했다. 거기엔 포샤의 초상화와 더불어 축하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외모를 보고 고르지 않은 자는 그것이 공정하고 그 선택이 참되리라! 이 행운, 당신의 것이 되었으니 ….”

응당 현실적 시선에서라면 금이 가장 고귀하고 선호되는 대상이다. 당시 상황 또한 바야흐로 금으로 상징되는 돈과 경제적 가치가 급부상하던 때였다. 하지만 찬란한 황금이 거부되고 창백한 납이 행운의 상징으로 선택되는 아이러니는 매우 극적이다.

새해 새 희망으로 아직은 넉넉한 때다. 지금, 우리네 희망의 눈길은 과연 어떤 상자를 응시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인가, 자신에 합당한 것인가, 혹은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아직도 많은 이들이 번쩍이는 금 상자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번쩍인다고 다 금은 아닐’ 수도 있지만, 번쩍이면 금일 가능성이 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말할 것이다. 현실이 꼭 드라마 같은 것은 아니라고.

어쨌든 올 한 해 많은 이들이 가망 없는 희망 때문에 허망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은 합당하지 않은 모험 때문에 절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눈에 보이는 허황한 희망에만 미혹되지도 말아야겠다. 진실한 희망, 가치 있는 희망을 일구고 가꾸기를 원한다. 무엇보다도 더불어 사는 사람들로부터 희망의 비전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믿을 수 없어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작가 박경리가 ‘불신시대’라고 명명한 바 있던 전쟁 직후의 불신 풍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신뢰가 무너진 불신의 시대에는 누구나 마음의 황무지를 경험하게 된다. 남에게 속았기 때문에 남을 의심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어느새 남을 적극적으로 속이려 든다. 불신의 악순환은 전면적으로 확산될 소지가 많은 악성 바이러스다.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상에서라면 바람직한 희망의 샘물은 솟아날 수 없다.

예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납 상자를 응시하는 눈의 지혜가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희망보다 보이지 않는 심연의 희망을 위해 정신적인 투자를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행운이 거기에 예비돼 있을지 모른다. 포샤의 납 상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