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황령산산지기 2022. 4. 24. 05:57
Q: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쇼:
삶은 삶 자체가 목적이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삶은 신의 다른 이름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목적을 가질 수 있고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 될 수 없으며 모든 것의 최종적인 목적지가 되는 한 가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그것을 존재로 부를 수도 있고 신으로 불러도 좋다. 또는 삶이라고 불러도 좋다.
이런 단어들은 하나의 실재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신이라는 이름은 신학자들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 명칭은 완벽하게 보호받지 못한다.
거부와 반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을 부정한다. 그러나 어떻게 삶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삶은 그대의 심장 속에서 고동치고 있다. 삶은 그대의 호흡 안에서 숨쉬고, 그대의 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삶은 그대의 사랑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나무와 새, 산과 강 등 만물을 통해 삶이 다양한 축제를 벌이고 있다. 

삶은 모든 것의 목적이다. 따라서 삶은 그 자체 이외의 다른 목적을 가질 수 없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삶의 목적은 삶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삶은 그 자체 안에서 성장하고, 팽창하고, 찬미하고, 춤추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목적을 갖는다.
이 모든 것이 삶의 모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종교도 이 삶을 우리가 노력하고 애쓰는 모든 것의 최종적 목적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반대로 종교는 이 삶을 부정하고 가공의 신을 유지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이 삶의 에너지는 너무나 실재적이다.

수천 년 동안 모든 종교가 삶을 반대해 왔지만 그들은 이 삶에 조그만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그들이 주장한 신은 이 삶의 중심부에 자리 잡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 삶을 부정하고 포기한 자들에게서만 발견되었다.
이것은 인류에게 큰 위기상황이 되었다.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존경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죽음을 숭배한다. 사람들이 이미 죽은 성인(聖人)만을 숭배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성인들이 살아 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십자가형에 처한다. 그 성인들을 죽이려고 돌을 던지고 사약을 내린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죽으면 그제야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한다.

이 돌발적인 변화의 바탕에 어떤 심리적 요인이 숨어있는지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죽은 성인들은 존경받고, 살아 있는 성인들은 비난받는가?
그 이유는 죽은 성인들은 종교적 인물이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죽었으므로 웃을 수 없다. 그들은 즐거워하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춤출 수가 없다. 그들은 이 세상에 실재하는 어떤 것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삶을 떠난 자들이다. 그들은 숨 쉬지 않는다. 더 이상 가슴이 고동치지 않는다.

죄를 범할 수도 없으므로 이제 그들은 완벽하게 종교적인 인물이 되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제 그대가 그들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그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인물이므로 마음 놓고 기대도 좋다.
그러나 살아있는 성인에게는 그렇게 의지하기 힘들다. 당장 내일 그 성인의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인으로 존경받다가 죄인으로 죽은 사람들도 많고,
죄인이었다가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죽은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성인들이 죽기 전까지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가톨릭 교회에서, 불교 사원에서, 이슬람 모스크에서, 구르드와라에서,
유대교 회당에서 이미 죽은 자들을 숭배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를 숭배한다.
현재가 과거를 숭배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지만 그대는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
그대는 이 삶에게 죽은 것을 숭배하도록 강요한다.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이유는 이 삶을 반대하는 종교들 때문이다.
그대들이 믿는 종교에 의하면, 삶을 포기하고 파괴하는 것이 곧 삶의 목적이다.
신화적이고 허구적인 신의 이름 아래 그대 자신을 고문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동물들은 삶 이외에는 어떠한 종교도 갖지 않는다. 나무와 별에겐 삶 이외의 다른 종교가 없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가 오로지 삶을 신뢰한다. 그들에겐 신도 없고 사원도 없다.
그들에겐 신성한 경전도 없다. 그들에겐 삶이 전부이다. 삶이 신이고 사원이며 경전이다.

이 삶을 전체적으로 사는 것, 그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종교이다.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이다. 더 충만한 삶, 더 깊고 승화된 삶이 삶의 목적이다.
삶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존경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 삶에 대한 존경심을 그대의 종교로 삼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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