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절로 찾아 온 명경지수(明鏡止水)

황령산산지기 2022. 4. 24. 04:10
절로 찾아 온 명경지수(明鏡止水)


70여 년 동안의 한글 전용화나 한자(漢字)로부터의 탈피에 반감을 가졌으면서도 크게 무게를 두지 않고 무심코 지나치다가
문득 내가 살아오는 동안 들어 보지 않던 생활 언어를 듣는 순간 이 나라에 국어 교육이 있는가 싶은 의문이 든다.



수 백명이 모인 어느 모임에서 30~40대의 행사 안내원이 퇴장 순서를 알리는 멘트가 그랬다.

"다음 좌석의 손님께서 내려오실께요"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한 한기를 느꼈지만 그 모임에 참석한 회원 모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착실하게 안내

원의 지시에 따라 퇴장했다.

나는 해방되는 해부터 1933년 10월 29일에 반포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기초로 한글(국어)을 배워왔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정되는 대로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잘 따른 셈이다.

어쩌다 이해하기 힘든 변경사항에 대해서는 불복하기도
하고 고집대로 변경 전
한글 맞춤법 통일안 대로 글을 쓰다 시험때 불이익을 받는 고집을 부린 적이 있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학교에서 배운 국어 교육이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벗어나는
반동같은 말이나 글은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간 신문을 외면한지 15년이 훌쩍 넘었다. 거짓말을 제 식성대로 맞추어 내 뱉는 언론의 추태나 가짜뉴스를 걸르지 않고 벳겨 내는 사이비 언론에 식상할 대로 상해버린 나머지 그나마 내 가냘픈 정서마져 퇴락할까 보아 그어버린 신문과의 절교였다.
도무지 이겨 낼 수 없는 거대 메머드 언론을 대항하기보다 차라리 무시해버리자는 비겁함이 상책이였으니 말이다.

"절 싫으면 중이 절 떠나라"

이 말 처럼 속 시원한 명구가 없을 듯 싶었다.
이렇게 깔끔하게 외면한 신문의 빈 시공간에 내가 펼수 있었던 소중한 그 어떤 것
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대학 재학 중에 간간히 치뤄지는 학점 따기 위한 논문(시험지)을 써 본이래 한번도 써보지 않던 글을 2천 여점을 써 보았다는 것이다.
그 글이 습작이던 뭐든 아무도 간섭하지 못할 범주에 속하는 내 글이지만~


월 전에 뜻하지 않게, 그리고 전혀 내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약없는 공짜베기 신문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고맙다고 말하기엔
좀 뭣하고 그렇다고 싫은 생각도 없어 매일 새벽에 현관에서 주어 왔다.

신문을 대하면서 새삼 놀란 것은 내가 신문을 외면한지
얼마 되었는지 따지기도 전에
어느 결엔지 경제 부록을 제외한 본지 32페이지가 철저하게 한글전용화되고
대충 15만자 앞뒤 글
가운데에는 한문이 한자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 격세지감에 어리둥절 할 뿐이었지만 그보다도 신문을 끊은지 15년이란 세월 동안에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우리의 글과
국어와의 괴리(?)에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국어 따로 언어 따로 그 위에 생각 마져 따로 따로~

엊그제 일요일의 1TV 프로 진품명품에 출품된 고지도(古地圖)를 보면서 60~70대면 왠만하면 알수 있는 한자 를 식별 못하고
오히려 자랑인양 희희덕대는 40~50대 출연자를 보면서 씁쓸한 연민의 정을 느끼던 참이었다.

4월 20일자 31면 15만자의 활자 가운데 딱 4글자의 사자성어 "역지사지(歷知思志)"가 컬럼 부제목으로 "공신"이라는 글제가 올라 있었다.

중종실록에 기록된 중종반정의 공신 박원종이 쓴 기록이다. 연산군의 학정으로 벌어진 중종의 반정에 차별화는 그만두고 오히려 구태를 재현한 역사적 사실이 결국은 기묘사화 같은 비극을 초래케 한 역사적 사실을 들어 같은 의미를 가진 역지사지(易地思之) 를 비유하여 쓴 컬럼으로 짐작되지만 이글을 보는 내 입장은 좀 다르다.

15만자 한글 가운데 4글자만의 한문 사자성어가 굳이 한자로 해야만 의사 전달이 크게 될 수 밖에 없는 팩트에 허전함을 느낀다

"역사를 알면 그 뜻을 안다" 아니면 "역사를 모르면 그 뜻을 모른다"

그 뜻을 중고교때 배운 몇자 안되는 한문가지고도 족히 동양
의 역사를 짐작하는 도구가 되련만~

한 달동안의 사경에서 벗어 나면서 한글 전용화의 글 속에서 본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사자성어에서 새삼 좀더 주어진 여명을 생각하는 차분함을 얻고 있다. 지옥과 같은 보름동안의 복통과 구토에 차라리 저승으로의 첩경이 훨씬 가능했든 그 순간을 생각하며 되돌아 온 오늘을 생각한다.

매일처럼 수행하는 복식 호흡 후의 잔잔해진 거울같은 맑음을 생각하며 지나간 아쉬움에 미소짓고 미움도 잊고 오늘을 다시 사는 감사함에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오묘함을 간직하고 있다.

홀로 초등학교 2학년때 한문공부하던 내 손주에게 易地思之 明鏡止水 塞翁之馬의 12자 만이라도 가르쳐야 하겠다.

- 글 / 日 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