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요가난다 강연집

황령산산지기 2022. 3. 6. 12:46

이전에 저작권이 없던 시절에...

요가난다 강연집 '인간의 영원한 탐구'의 일부가 출판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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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의 발견

 

처음 인간이 의학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몸이 아팠기 때문에 자신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인간이 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성실했었는가? 이 질문은 깊은 생각을 갖게 한다.

 

인도의 베다를 보면 신에 관한 초기의 실제적 개념이 있다. 그 성서에는 인도가 역사의 시련을 이겨낸 불멸의 진리를 세상에 전해왔다고 한다. 모든 물건의 발명가는 물질적 욕구에 의해서 동기가 유발되었다.  필요성은 발명의 어머니이다라는 말과 같이 필요성에 의해 시작된다. 일찍이 인도의 리쉬들은 열렬한 영적 탐구자들이 되었다. 이들은 내적인 만족감이나 외적인 큰 재산 없이도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인간이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인도의 현자들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자연의 세 가지 양상

 

선사시대에 신의 숭배는 자연의 여러 가지 힘에 관한 인간의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비가 많이 올 때면 홍수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겁에 질린 인간은 비, 바람, 그리고 다른 자연의 힘을 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중에 인간들은 자연이 세 가지 원리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알게 되었다. 대양으로부터 일어오는 파도는 창조적임을, 바다 한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은 보존적임을, 깊숙이 침잠되는 것은 분해적임을 예증하는 것이다.

 

예수가 사탄으로 인격화된 악마의 우주적인 세력을 보았던 것처럼 위대한 리쉬들은 명확한 형태로서 인성화된 창조, 보존, 분해의 우주적인 힘을 보았다. 옛 현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창조자로는 브라마, 보존자로는 뷔쉬누, 그리고 파괴자로는 쉬바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원초적인 힘들은 삼라만상의 너머에 신으로서 그들 의식 뒤에 항상 가려져있으면서 모든 창조물에 관한 그분의 무한한 꿈들을 펼치기 위해 드러나지 않는 정신의 투영물로서 창조된 것들이다. 우주의 분해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모든 삼라만상과 그의 광대한 활동세력은 정신으로 분해되고 만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제정하기 위해 위대한 통치자가 불러줄 때까지 휴식하고 있을 뿐이다.

브라마, 비쉬누, 쉬바에 대한 이야기

 

인도에는 브라마, 뷔쉬누, 쉬바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엄청난 힘에 대해 서로가 자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작은 소년이 다가와 브라마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창조했소?” 브라마는 모든 것이라고 점잖게 대답했다. 그 소년은 다른 두 신에게도 똑같이 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존하고 또한 파괴한단다.”라고 그들은 대답했다.

그 어린 방문자는 조그만 밀집대롱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브라마의 앞에 그것을 놓고 그는 물었다. “당신은 이와 같은 밀집대롱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브라마은 한참 애를 쓴 후에 놀랍게도 그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소년은 뷔쉬누에게 가서 밀집대롱을 그대로 보존되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소년의 집요한 응시에 그것은 서서히 용해되고 있었다. 그것을 유지시키려든 뷔쉬누의 노력은 역시 결실을 거둘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작은 여행자는 다시 밀집대롱을 만들어 쉬바에게 그것을 걲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쉬바가 그것을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할 때 조그만 밀집대롱은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작은 소년은 다시 브라마에게 가서 당신이 나를 만들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브라마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그는 도저히 이 놀라운 아이를 만들었었던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할 수 가 없었다.

순간 소년은 사라졌다.

세 신은 그들의 환상으로부터 깨어나 그들 힘 뒤에 더욱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은 우주의 원초적인 힘이다.

 

서구에서는 신에 관한 관념이 인과법칙의 관찰을 통해 발견되었다. 인간은 지구상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미리 생각했던 대로 그들을 형상화시킴으로써 사물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온 우주가 관념으로부터 창조되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졌다. 이는 모든 것이 관념으로부터 먼저 존재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사람이 원초적 관념과 우주적 기획을 만들어야만 했다. 반면 인과법칙의 분석을 통해 지자(知者)들은 최초의 원인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추론하였다.

 

과학은 모든 물체가 집이 벽돌로서 지어지는 것과 같이 보이지 않는 건물의 벽돌인 양자와 전자로서 만들어져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왜 어떤 전자와 양자가 나무가 되었고 다른 것들은 사람의 뼈가 되었는가 등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러한 일련의 의문은 이상적 세계 본질에 관한 재료학자들의 이론까지도 신에게 맡겨진다. 인도의 현자들은 모든 것의 원천인 신으로부터 와서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우주는 질서와 조화로 이루어졌다.

 

모든 인간이 물질과 마음의 복합체라고 알고 있지만 일찍이 서양 사상가들은 두 가지 자연과 마음의 독립된 힘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후에 그들은 스스로 자문하기 시작했다.

왜 자연에 있어서 모든 것이 특별한 방법으로 정렬되어 있는 가?” “어째서 사람의 두 개의 팔 길이가 똑 같을 까?” “어떻게 별과 혹성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을 까?”

 

모든 곳에서 우리는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본다. 그들은 마음과 물질이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군주 같은 한 사람이 모두를 통치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결론은 그것의 뒤에 또는 안에서 물질과 지능의 원천이 되는 바로 유일한 신이 있다고 하는 생각을 자연적으로 낳게 하였다.

최상의 지혜에 달한 사람은 정신이 본질적으로는 비록 가려져 있지만 만물은 정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러분이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으로부터 신을 볼 수 있다. 구도자들이 어떻게 해서 처음에 신을 발견했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다.

 

시작단계에서 그들은 가려진 지능을 발견하는데 더욱 완전히 몰입해질 수 있도록 세상일과 물질에 직접적인 접촉을 차단키 위해 눈을 감았다. 그들은 평범한 오감을 통해서 자연 속에 있는 신의 출현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더 깊고 깊은 집중력으로 그들 자신의 내부에서 신을 느끼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물질의식으로부터 일시적으로 탈출하면서 모든 오감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정신의 내부 세계는 열리기 시작했다. 내부세계를 알아야 한다라고 꿋꿋이 고집했던 인도의 위대한 사람들에게 신은 드디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헌신과 바른 행동은 신의 관심을 끈다.

 

현인들은 그들의 신에 관한 개념이 신을 깨달아 아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것은 여러분이 신을 알기 원한다면 반드시 알아야 되는 것이다.

오랜 기도로 머무르지 마라. 첫째로 신의 바른 개념을 가져야 한다. 즉 여러분이 그것을 통해서 신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명확한 개념을 갖도록 하라. 그 다음에 명상을 해야 하고, 정신적 개념이 실제적 감지로 변화할 때까지 기도하라.

그때 여러분은 신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끝까지 이런 방법대로 고수해 나가면 신을 찾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감시하고 살피는 이는 오직 여러분의 진실한 사랑만을 원하고 있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이가 자신의 모든 부귀영화를 바친다 해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이가 그에게 주여! 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친다면 그는 구하는 자의 마음속으로 달려온다.

어떤 다른 생각으로 신을 찾지 마라. 그러나 그에게 헌신적으로 기도하라. 즉 무조건적이며 일념으로, 꾸준한 헌신으로, 그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만큼 커질 때 그는 당신에게 올 것이다.

 

신을 찾는 일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헌신이 활동에 앞서는 것이다. “신은 힘이다. 따라서 우리는 힘 있게 행동하자라는 말이 있다. 여러분이 선을 행할 때 전에 없었던 최상의 기분으로 신과 함께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그를 이러한 방법으로 느끼고 알 것이다. 그러나 선을 행한데 조차 바른 행동만큼이나 그릇된 행동도 있다.

자기 자신만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집회에 단지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어떤 열성적인 목사의 그런 활동을 통해서는 신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성스러운 내재자의 출현을 보는 것이 모든 사람의 첫 번째 희망이 되어야 한다.

꾸준히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신의 사랑으로 고취된 생각을 가지고 모든 일을 실천할 때만이 신을 영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점철되는 삶의 조그만 물결이 되어온 대양임을 안다. 모든 행동개시에 앞서 신을 생각하게 되면 여러분은 그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 또는 그 일을 끝낸 후에 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통해 신의 일을 하도록 하라. 이는 헌신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인 것이다. 여러분은 끊임없이 신이 여러분의 발을 통해서 걷고 있고, 여러분의 손을 통해서 일하고 있고, 여러분의 의지를 통해서 성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신을 발견할 것이다. 여러분은 신에 대한 어떤 생각이 없이 수행하는 일보다는 영적인, 또는 건설적인 신의식(神意識)식을 가진 활동을 좋아하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명상은 행동의 최고의 형태이다.

 

행동, 헌신, 또는 이성보다 더 위대한 것은 명상뿐이다. 기실 명상한다는 것은 홀로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는 심원한 명상이다. 또는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행동 중의 최고의 것이다. 신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조화된 방법이다. 만약 여러분이 쉬지 않고 일만 하고 있다면 기계적으로 되거나, 직무로 인한 선입견 때문에 신을 잃게 될 것이다. 또 여러분이 특수한 사고로만 신을 찾으려고 한다고 해도 끝없는 논리의 미궁으로 빠져들어 신을 잃게 될 수 있으며, 신에 대한 헌신만을 일삼아도 여러분의 발전은 단지 감성적으로 될 뿐이다. 그러나 명상은 모든 이들을 조화시킬 것이다.

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만 일하고, 먹고, 걷고, 웃고, 울며, 명상하자. 이것만이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여러분이 그분을 섬기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과 영적교섭을 나누게 되면 실제로 행복해질 것이다. 여러분의 욕망과 육체의 나약함을 여러분의 사고와 행동이 지배하도록 한다면 신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항상 육체의 주인이 되라. 여러분이 교회나 사원에 앉아 있을 때 아마 약간의 헌신과 특별한 감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여러분이 실제로 신의 모습을 알기 원한다면 명상의 비상한 행동이 필요하다.

여러분은 명상하기 약 2시간 후부터는 내가 몹시 지루해 졌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겁먹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신만큼 몰입케 하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내 영혼의 해묵은 포도주를 마실 때 공활한 행복이 내 가슴에 고동을 친다. 성스러운 즐거움이란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있다. 햇빛은 똑같이 탄소에도 다이아몬드에도 비친다. 다만 다이아몬드는 그 빛을 반사한다. 그러한 것들은 영혼을 알고 반사하는 투명한 마음이다.

반면에 명상의 심원한 행위에 있어서 우리는 신을 아는 미스테리의 해결책을 갖게 된다. 나는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나무라지 않는다. 여러분은 신에 대해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너무 바빠서 여러분을 돌보지 않는 신을 상상해보라! 그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여러분의 감각과 습관으로부터 마음을 쥐어짜라. 어째서 그와 같이 속고만 있는가? 나는 여러분에게 이 땅에 일찍이 없었던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밤낮 여러분들을 몰입케 하는 행복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노예로 만드는 감각적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당신의 몸과 정신을 훈련시켜라. 당신의 감각을 다스리도록 하라. 신을 발견하라!

 

나는 이 육체가 전화 교환기이며 오감은 전화기라고 종종 말한다. 그들을 통해서 나는 이 세상과 통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원치 않을 때는 나의 오감을 차단시키고 형용할 수 없는 신의 기쁨 속에 살고 있다. 하느님은 자신의 자식인 여러분이 더 이상 고통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여러분이 거하고 있는 감각의 환상은 극복되어져야 한다. 여러분은 인생의 궁극적인 필요성으로서 신을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범주의 속박을 풀어라. 나는 신에 대한 인간의 망각과 불신을 저주한다. 신은 명상의 기법으로 알 수 있다. 그때 그는 지혜로서 여러분의 정신 속에 기쁨으로 임하고 마음속에 고동칠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이전의 삶보다 더욱 활기차고 성공적일 것이다.

 

친애하는 이들이여! 나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다. 나는 진리와 행복을 찾으며 세상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나에게 기쁨을 약속한 모든 것이 불행을 주었기에 나는 신에게 돌아갔다. 여러분 모두는 여러분 자신의 신성함을 발견해야 되고 자신들을 위한 신의 왕국을 건설해야 한다.

 

진아(眞我)는 당신의 구조자

 

이런 깊은 진리들은 지나치는 순간의 영감에 대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큰 유익을 위해 실제적이어야 하고 흡수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선()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진아는 그릇되게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적이다. 진아의 편에 서라. 그러면 진아는 여러분을 도울 것이다. 여러분 진아 외에 다른 구조자는 없다. 무지와 나쁜 습관의 족쇄는 여러분을 묶어 둔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고통 받고 있는 나쁜 습관에 따르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가지 않도록 좀 더 앞에 있는 삶을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힌두교인들 사이에는 어린이들은 놀기에 바쁘고, 젊은이들은 섹스에 바쁘고, 어른들은 걱정하느라 바쁘다. 신에 대해서는 전혀 바쁘지 않단 말인가!”라는 말이 있다.

 

행복이 세상에서의 성취로부터 올 것이라라는 상상의 꿈을 깨부수어라.

재물을 축적하는 것에 만족이 있을 수 없고 인자한 삶 역시 만족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영원히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당신 안에 있는 신을 붙들고 진아만이 신성함 그 자체라는 것을 알도록 하라. 여러분은 어디로부터, 어떻게, 왜 내가 생겨나는가?”라는 여러분 지능의 최고 형태의 질문에 대한 확답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신과 불멸의 영원성은 신화가 아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고 믿으면서 죽는 것은 여러분 안에 있는 진아에 대해 최대의 모욕을 주는 것이다. 여러분은 얼마나 오랫동안 알 수 없는 마야(maya)를 정복하기 위해 일생을 통해 시도치 않으므로 해서 신의 아들인 여러분 자신을 죽음의 칼날로 아무런 도움 없이 쓰러지도록 할 셈인가?

 

이성은 인간에게 신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신은 존재한다. 그는 인간에게 독립된 힘과 이성을 주어 왔다. 인간은 이성의 선물로 신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의 시간을 단지 인생을 즐기는데 소비하거나 신을 발견하는데 쓰지 않는다면 당신 안에 성스럽게 부여받은 힘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성의 열쇠를 사용하라. 그것은 돌이나 동물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신은 인간이 죽어야 된다는 운명의 환상으로부터의 자유를 발견하도록 이성을 주었다.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성을 이기적이거나 그릇된 습관에 의해 짓밟혀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들이 여러분의 의지에 절을 하게 되면 그때는 어떨까? 행복은 여전히 여러분을 피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가 악마로부터 시험받을 때 사탄 대신에 신을 택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세상의 힘에 상당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 우주의 모든 풍요보다 더욱 큰 어떤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많은 인간들이 바라고 있는 것들은 없어지고 마는 것들뿐이다. 그러나 신은 예수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없는 곳이 없는 곳’(無所不在)에 있는 신성한 왕국(천국)을 아직도 즐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 각자는 신에게 인도하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여러분은 그것을 매장시킴으로서 점철되는 물질 계속에 잠을 자면서 영혼을 벌하고 있고 죽음과 고통스러운 악몽으로 인해 놀라고 있다. 여러분은 자신이 바로 그 영혼임을 깨닫도록 하라. 여러분의 느낌에 가려진 그 느낌, 지금의 의지에 가려진 그 의지, 여러분의 힘에 가려진 그 힘,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지혜에 가려진 그 지혜가 바로 신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마음속의 감각과 정신의 이성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도록 결합시켜라. 자신을 고요한 성에 앉히고 세상의 신분과 직분을 떨쳐 버리고 여러분의 천국정신을 발휘하기 위해 깊은 명상으로 뛰어 들어라.

 

여러분 자신의 내부세계를 바라보라. 모든 곳에 무한한 것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초의식 세계로 깊게 빠져들게 되면 여러분은 영겁을 통해, 즉 가장 빠른 별보다 더욱 빨리 갈 수 있다는 정신력으로 여러분의 정신을 질주 시킬 수 있다. 정신의 서치라이트는 진리의 폐부 속으로 초의식 광선이 비추어 질 수 있도록 완전히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정신의 서치라이트를 사용하라.

 

천국으로 가야만 될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천국은 어떤 특별한 인도에 의해서 갈 수는 없다. 각 사람은 홀로 자신의 길로 서둘러야 한다. 오늘 부터 신을 찾기로 작정하라. 많은 열성적인 신도들이 신을 향해 나아갈 때 거기에는 신과 인간의 지도자, 안내자로서 신의 사랑이 함께 하는 세계 연합국이 생겨날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단지 나의 말의 일시적인 영감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주고 싶다. 다시 말하면 나는 지혜의 조명탄을 여러분의 영적 어둠 속에 직접 쏘아 내가 언급해 온 진리를 그 쏟아지는 빛에 의해 여러분 혼자의 힘으로 볼 수 있도록 하겠다.

 

두 갈래 길: 활동과 명상

 

요약한다면, 신을 깨닫는 데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외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인 선험적 방법이다. 외적 방법은 신에 중심을 둔 의식으로서 인류를 위해 봉사하며 사랑하는 바른 행동에 의한 것이며, 선험적인 방법은 명상에 의한 것이다.

선험적인 방법으로써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깨닫고, “내가 호흡이 아니고, 몸도 아니고, 뼈도 살도 아니다. 나는 정신도 감각도 아니다.”라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한다. 여러분을 알며 전에는 결코 없었던 신의 의식이 바로 여러분임을 알게 된다. 여러분은 우주만물의 근본이 된다.

 

여러분은 눈을 감고 있을 때 왜 어둠 뒤에 있는 것에 대해 묻지 않는가? 바로 그곳이 탐험해야 할 곳이다.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어도 그 어둠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그곳에 광대한 빛과 우주의 힘이 있다.

 

영원의 축복은 열려 있다.

 

사마디는 여러분이 즐거움과 기쁨의 광대한 침대 위에서 부유하는 수많은 세계들을 바라 볼 수 있는 즐거운 경험과 화려한 빛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영적 무지를 없애버리도록 하라. 여러분 혼자의 힘으로 신 안에서 영원한 사마디를 통한 이들의 아름다운 경험을 갖도록 하라. 오로라 빛으로 하늘의 영원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열릴 것이다. 모든 위대한 스승들은 이 몸속에는 불멸의 영혼이 있고 모든 것을 지탱하는 그의 불꽃이 있다고 말해 왔다. 영혼을 알고있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진리를 안다.

 

나는 유한한 모든 것 너머에 있다. 나는 지금 우주 속에서 항상 새로운 기쁨과 함께 있는 영혼이 광대한 자연의 지체로서 그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나는 별이고, 물결이고, 모든 것의 생명이다. 나는 모든 것의 마음속에 있는 웃음이고, 꽃의 얼굴에 피어나거나 각자의 영혼 속에 있는 미소이다. 나는 모든 창조물을 지지하는 지혜요 힘이다.”

 

여러분은 이를 깨달아야 한다. 나의 말은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환상 속에 잠을 자고 있다면 알 수가 없다. 여러분이 깨어있을 때만이 내가 말해온 진리가 여러분의 영혼 속에 언제나 고동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상하라! 이런 자유를 주는 수업을 배우라. 더 이상 기다리지 마라. 나는 세상적인 축전이 여러분을 즐겁게 하지 못하도록 하고 영원불멸에 대한 여러분의 희미한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왔다. 여러분은 환상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닥치는 고통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자신들 속에 밝은 빛이 있음을 깨닫도록 모든 일을 할 것이다.

영원한 자유를 누리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