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그것이 고통의 끝입니다

황령산산지기 2019. 10. 20. 10:10

파라다이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질문해 보기 전에는 자기의 진면목을 알 수 없습니다.

자기의 진면목을 아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자체입니다. 


내가 이따금 거울 앞을 지나가다 그 안에 있는 ‘나의’ 얼굴을 우연히 보게 되면,

“저 여자는 정말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어서 그게 나라는 것을, 사람들이 ‘나’라고 부르는 사람임을 깨닫고는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나는 나에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얼굴이나 몸을 매력적으로 보든 안 보든 상관없습니다. 


가끔 스티븐은 그에게 특히 아름다워 보이는 여성이나 잘생겨 보이는 남성을 가리켜 보이지만, 내게는 그런 아름다움의 기준이 없습니다.


나는 이따금 노숙자와 함께 인도에 앉아 있는데,

그 노숙자가 뚱뚱하고 지저분하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여자일지라도,

내게는 어린아이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녀가 허락한다면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를 껴안을 것입니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모든 것은 나름대로 선하며, 모든 것은 나름대로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이 아름다운지를 내가 어떻게 알까요.

만일 내가 어떤 것을 아름답지 않다고 본다면, 그건 나의 내면에서 올바르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실입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 생각에 대해 질문하자

온 세상이 하늘처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말에 동의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걸 이해하려면 우리의 온 세상을 잃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반된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잃는 걸 두려워합니다.


고통 받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우리의 소중한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그런 세상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유롭기보다 옳기를 원합니다.


붓다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습, 소리, 감촉, 맛, 냄새, 또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에 의지하지 않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 말은 전적으로 정확하며 이보다 더 분명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이 무엇을 지각하든 마음은 그것 이전입니다.

마음은 맑고 순수하며, 모든 것에 완전히 열려 있습니다.


아름다운 듯한 것만큼 추한 듯한 것에도 열려 있고,

수용만큼 거부에도 열려 있으며, 성공만큼 실패에도 열려 있습니다.


마음은 자신이 언제나 안전하다는 것을 압니다.

마음은 삶을 끊임없는 흐름으로서 경험합니다.

마음은 어디에도 발을 딛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어디에든 발을 디디면 한계가 된다는 것을 압니다.


마음은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생각을 알아차리지만, 어떤 생각도 믿지 않습니다.

마음은 발 디디고 서 있을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전혀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 깨달음에서 자유가 흘러나옵니다.


‘서 있을 곳 없음’이 마음이 서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 마음의 기쁨이 있습니다.

당신의 내면에 탐구가 살아 있을 때,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생각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고통의 끝입니다.



- 바이런 케이티,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