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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法을 지킨 判官

황령산산지기 2019. 5. 11. 18:14

그린나래    

 


춘추 오패 순서대로 제환공(齊桓公) 송양공(宋襄公) 진문공(晉文公) 진목공(秦穆公) 초장왕(楚莊王)

 

    ♧죽음으로 법을 지킨 판관♧

 


2019.05.07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정직이다.'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유가(儒家) 경전 순자(荀子)에 나오는 말입니다.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면서 남을 판단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재판을

통해 사안의 옳고 그름을 가리고, 공정·정직하게 법을 집행하는 일이야말로 법치의 생명

입니다.

순자보다 300여 년이나 앞서 법의 준엄함을 일깨워준 사람이 있습니다.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인 진 문공(晉 文公; 재위 BC 636~BC 628) 시절 판관을 지낸 이리(李離)입니다.

공정한 일 처리로 이름난 이리는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법리에 따라 벌을 주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사건기록을 살펴보다 부하의 보고만 믿고 자신이 잘못 판결하여 무고한 사람을 사형에 처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리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포박해 왕에게 데려가도록 했습니다. 스스로 죽임을 당하겠다는 이리의 사유를 들은 문공은 “관에는 귀천이 있고, 벌에는 경중이 있다. 부하에게 잘못이 있으니 그대의 죄가 아니다”고 말렸습니다. 이리는 “잘못 듣고, 살인하고, 그 죄를 부하에게 떠넘기는 것은 법이 아닙니다”라며 거절했습니다.

# 잘못을 떠넘기지 않고 자살한 李離


문공은 “그대는 스스로 유죄라고 하는데, 그러면 과인(寡人)도 유죄가 아닌가”라고 물었습니다.
이리는 대답했습니다. “법관은 법을 지켜야 합니다. 잘못 형을 내리면 스스로 형벌을 받아야 하고, 사형을 잘못 집행하면 사형을 당해야 합니다(失刑則刑 失死則死). 왕께서는 제가 사소한 것도 바로 들어 의옥(疑獄)을 잘 판단하리라 믿고 판관에 임명하셨습니다.

 

이제 잘못 들은 탓으로 잘못 살인을 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이리는 곧장 칼에 몸을 던져 자진했습니다. 문공은 이를 계기로 국법을 바로잡고 국력을 키워 마침내 패자(覇者)가 되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순리열전(循吏列傳)편)

이리가 칼에 몸을 던져 자진(李離伏劍;이리복검)한 지 2,000여 년 뒤 우리나라에서도 공직의 도를 몸소 실천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조선조 명종(明宗; 재위 1545~1567) 때의 영남 선비 남명(南冥; 아호)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입니다.

1555년 명종이 그를 단성(丹城) 현감으로 제수하자 바로 사직소(辭職疎)를 올려 임용을 고사했습니다. 조식 선생의 상소문은 평생 벼슬자리를 거부하고 파당정치와 적폐를 비판하며 지조를 지킨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 적폐와 파당정치 비판한 선비 曺植


사직소에서 남명은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가 득세하여 나라가 근본부터 썩었다”고 직언하고, 죽음을 무릅쓰면서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를 ‘과부’, 왕을 ‘고아’라고 칭했습니다. 명종이 발끈하여 그를 벌하려 하자 조정 신하들이 만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남명이 타계하자 다음 임금인 선조가 제문을 내렸습니다. 선조는 제문에서 “다른 사람들은 세속에 아부했지만 남명 선생은 변절하지 않았다. 소자(小子; 왕이 스스로를 칭함)는 누구를 의지하고 백성은 누구에게 기대겠는가”라고 애도했습니다.

법은 사회질서 유지와 정의실현을 목적으로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적 규범 또는 관습입니다. 인간의 도덕과 종교만으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도덕의 최소한’입니다.
그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고, 법에 따라 나라 살림을 책임질 사람을 가리는 일에 온 나라가 난리북새통이 되어버렸습니다. 국회 청문보고서 없이 대통령이 강행한 장관·헌법재판관 임용과, 국회 선진화법을 두고도 공수처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법안 처리 과정에서 맞선 여야는 ‘식물국회’를 ‘동물국회’로 만들었습니다.

# 스스로 원칙 저버린 사람 책임 져야


 고발과 맞고소전 와중에 상대 당 국회의원을 ‘도둑놈’으로 몰아붙이는가 하면, 입법의 문제성을 제기한 자기 당 의원도 ‘양아치’라고 매도했습니다.


국민의 법 감정과 배리되는 후보의 임명 강행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인사 5원칙(병역 면탈,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과 집권 후 발표한 7원칙(5원칙에 음주 운전, 성 관련 범죄 추가)을 스스로 팽개쳤다는 점에서 국민의 양해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대통령은 "이들 인사원칙에 위배되는 사람은 고위공직에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원칙을 지킬 수 없다면 더는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의 소신과 약속은 법 이상의 구속력을 갖습니다. 말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원칙을 지키지 않은 인물들만 북적대는 정권은 신뢰가 떨어집니다.

그런 인물들만 고르고 고른 참모들 중에도 복검(伏劍)할 기미가 있는 사람이 전혀 없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국회 동의 없는 인사 강행을 두고 “과거에도 그랬다”-“적폐라며 왜 따라하나” 하는 공방이나, 상상을 넘어선 부동산·주식 투기 의혹에 ‘잘못한 건 아내·남편 탓’으로 돌리는 공직자들의 태도는 더 역겹습니다. 법 모르는 관리가 볼기로 위세만 부릴까봐, 흑보기만 하다 부끄러운 흑역사를 만들까봐 걱정되어서입니다.

-법률이 많을수록 공정(公正)이 적어진다
-법이 무시되는 곳에 전제(專制)가 생긴다
오래된 영국 속담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내 마음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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