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스크랩] 술, 이승과 저승을 잇다

황령산산지기 2018. 9. 23. 09:31












                                










     술, 이승과 저승을 잇다



                                                                                                                                                    - 여강 최재효





 외국인들이 이해 못하는 우리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제사(祭祀)

이다. 물론 그들도 고인의 생일이나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면 고

인의 묘지를 찾아가 헌화하고 고인을 그리워하거나 성당에서 추

미사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인이 돌아가신 날 고인 영전에 술을 올리지 않

다. 만약에 그들에게 우리의 전통의식에 입각하여 왜 고인의 영

전에 술을 올리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깜짝 놀라리라. 고대 유대

나라에서는 조상에게 제물(祭物)을 올리던 문화가 있었다.


 예전에 우리는 부모형제나 지인이 사망하면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와 상관없이 ‘하늘

나라’로 가셨다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그렇다면 예전에 ‘돌아가

셨다’라고 하는 장소가 바로 하늘나라를 의미하는 것인가?


 특정 종교인이라면 그렇다고 하리라. 그러나 나 같은 무지한 무

신론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존재를 믿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

뚱거리면서 ‘글쎄요?’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아가신 조상님이 ‘하늘나라’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존재와 위치를 물으면 오

히려 묻는 사람을 정신 이상자 쯤으로 취급한다. 조상님을 북망

산천에 매장하거나,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셔 놓고도 왜 하늘나

라에 있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까지 돌아가신 조상님이 ‘땅속나라’에 계시다고 말하

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고인의

무덤과 납골함은 지상에 있으나 영혼은 하늘에 있다고 믿는 것이

고인에 대한 존경심과 효심(孝心) 그리고 술 문화에서 비롯된 생

각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에게 중요하고 분명한 것은 돌아가신 분이 하늘 나라던 땅

나라던 존재한다고 믿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있기에 고인의

생일이나 기일(忌日)에 가족들과 고인의 지인들이 모여 고인을 생 

각하고 술을 올리며 추모한다. 술을 올려 강신(降神)을 청하고 혼

령을 제상에 초대하여 술과 제물을 흠향케 한다.


 만약 우리의 후세들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라는 관념과 사

으로 무장하기 시작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그런 후세

들에게 조상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술을 올리는 제

사도 없고 차례문화도 없다.


 한민족의 미래가 두려운 것은 그 같은 세대가 점차 증가추세에

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명절은 귀찮은 연례 행사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우울하게 한다. 명절 연휴 기간에 조

상과 고향을 외면하고 해외로 빠져 나가는 동포들이 점차 늘어

간다.


 심장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에게는 뿌리가 있게

마련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찌 살 수 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는 고사하고 부모의 제사도 잊고 살거나 또는 애써 모르는 척

는 세대에게는 희망이 없다.


 ‘요즘 먹고 살기도 힘들에 죽겠는데 쓸데없이 무슨 제사 타령이

냐?’고 묻는 세대에게는 절망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고

급 양주나 명주를 마셔 댄다. 조상을 부정하고 제사나 차례(茶禮)

를 무시하는 가정에도 역시 미래가 없다. 자식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다행히 외래 종교도 토착 문화에 적응하여 변형된 제사문화가

있기는 하다. 다만 술을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같은

변형된 제사 문화를 뭐라고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필자는 술을 매개체로 한 조상님과 후손들 사이 언로(言路)를

이야기 하고자 입을 열었다. 술은 인간 사회 희로애락에 빠짐없

이 등장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술을 마실 자

격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보니 문제가 발생한다.


 술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회식자리가 몇몇 사람의 무분별한 폭주로 인하여 난장판

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술이 사람을 마셔버렸기 때문이리

라.   


 酒(술 주)자는 水(물 수)와 酉(술두루미 유)의 합성된 글자로

풀이 된다. 혹자는 술병(西)에 햇곡식(一)을 담은 모양으로 酉자

풀이하기도 한다. 유(酉)는 12지(支)의 열째이며, 방위로는 서

쪽, 계절로는 가을, 시각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 해당

된다.


 즉,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땀 흘려 일한 사람만이 햇곡식으로

술을 빚어 한가위 날 조상께 올리고 자신도 마실 수 있는 특권이

있다. 베짱이처럼 남에게 기생하면서 비싼 술을 마시는 자나,

조상을 거부하는 자들은 대개 폭주(暴酒)하는 버릇이 있어 사고

치거나 병이 나게 되어 있다.


 기제사나 명절 때 차례를 지내면서 우리는 조상님에게 술을 올

린다. 술을 올리는 이유는 조상님이 삼천대천에 영(靈)의 형태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생유어사(生由於死)하

고, 사유어생(死由於生)한다'고 갈파한다.


 즉, 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는

다,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사후에 혼은 하늘에 올라

신(神)이 되어 후손들에게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

되고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

된다고 하였다.


 이때 술은 중간자 역할을 하여 제사 지낼 때 자손이 올리고(酬-

술 권할 수), 조상님께서 흡족히 흠향하시면 후손에게 복을 내려

(酌 - 따를 작)주신다. 이승의 자손과 저승에 든 조상님이 서로

술을 올리고 복을 내리니 이 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술을

통한 완벽한 천지(天地)의 합일이다.


 즉, 술은 유명계(幽冥界)에 드신 조상님과 이승의 자손과의 통

수단이기도 하다. 자손이 먼저 올리고 영의 존재로 있는 조상

께서 자손의 효심에 감복하여 복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바로

우리네 수작문화라 할 수 있다. 그 수작문화의 신성한 의미가

오늘날 이상하게 변질되어 남녀은밀히 농지거리를 하거나 밀

통을 위한 못된 행위로 간주되어 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신체 조건상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 술을 강권하고

하는 바는 절대 아니다. 제사 이외에도 현대인에게 술은 필수

불가결한 매개체가 되고 말았다. 술과 친하지 못한 사람은 회식

자리가 고역이다.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 동료들과 함께 어울릴 수

도 있고 조상님의 숨결도 느낄 수 있다.


 주역 64괘 중 마지막 괘가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다. 불이 위에

있고, 물이 밑에 있는 괘이다. 불은 뜨거우니 위로 올라가려 하고,

물은 차가우니 내려가려 하니 이는 불균형의 상태이다. 여기서

미제는 미완(未完), 미결(未決)을 의미한다. 반대로 수화기제(水

火旣濟)는 물이 위에 있고, 불이 밑에 있어 균형을 이루었으니,

기제(旣濟)는 균형의 상태이다.


 그 미제의 끝 부분에 ‘유부우음주(有孚于飮酒)하면, 무구(无咎)

다. 유기수(濡其首)하면, 유부실시(有孚失是)하리라.’ 하였다.

즉, 믿음을 두고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지만, 머리까지 취하도록

시면 믿음을 두는데 옳은 것을 잃는다. 명절날 여러 집을 이동

며, 조상님의 차례를 모시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조상님과 수

한 술이라 하여도 과하게 음복하면 탈이 날 수 있다.




                                                                                                  - 창작일 : 2018.09.20. 오후에


 

 




















출처 : 시인의 파라다이스
글쓴이 : 여강 최재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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