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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보리달마-궁극에 이르는 길은 많다.

황령산산지기 2018. 6. 2. 10:32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 ⑤


 

궁극에 이르는 길은 많다.

 
이 말은 달마의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진리에 이르는 길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는 그대가 바로 진리이며 아무 곳에도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대는 어디를 향해 가는 행위를 당장 그만 두라. 그저 그대가 있는 곳에 머물러 있으라.

진리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길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다. 바로 그대 안에 머물러 있으라.

일단 그대가 어떤 길에 들어서게 되면 그것이 바로 실수의 시작이다. 이것이 바로 달마의 말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자들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그 두 가지란 원리적인 방법과 실천적인 방법이다.

 
달마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대를 궁극의 실체로 인도하는 이론 같은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이론이란 마음의 장난이다. 그리고 실천의 길이란 더욱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그대의 신념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고, 그대는 그것을 따라 자신을 훈련시킨다. 그때 그대는 흉내 잘 내는 원숭이에 불과하다. 그대의 본래 면목을 결코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실천도 필요 없다. 그대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완벽하다. 더 이상 다른 무엇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그대는 자신의 존재 속에 정주(定住)하지 않고 주변을 방황해왔다. 그대가 자신 속에 정주할 때 그때는 두 가지 길이 아니라 어떤 길도 사라지고 만다.

 
첫번째 원리적인 방법이란 경전에 의해 불교의 본질을 알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똑같은 진리의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감각과 망상에 의해 가리워져 있어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달마는 '믿는다'라는 말을 할 수 없다. '믿는다'는 말은 장님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믿음이 그대의 시력을 찾아줄 수 없다. 어떤 선입견도, 어떤 견해도,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대에게 빛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것들은 체험이 아니다. 달마는 오직 체험에만 관심이 있다.

 
감각과 망상에 의해 가리워져 있어--

 
이것은 평범한 수준의 말이다. 달마의 번뜩이는 지혜에는 미치지 않는 진부한 말이다.

 
그래서 망상을 등지고 실체를 향한 사람은 벽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다. 거기에는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다. 그런 사람은 경전을 대하고서도 흔들림이 없으며, 침묵으로 동의하며, 이론과 하나를 이루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를 우리는 이입(理入), 즉 도(道)에 들어갔다고 부른다.

 
이 문장에서 '이론과 하나를 이룬다'는 말은 '체험과 하나를 이룬다'로 바꾸어져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이 부분이 달마의 생각임을 나는 전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

 
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모든 생각을 버린 사람이다. 다시 말해 마음을 떨쳐버리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의 마음에 있는 화면은 벽과 같이 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서 비로소 그는 자아가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대 속에 에고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다'라고 말할 만한 존재가 없는 것이다.

 
존재만이 있을 뿐, 나는 없다! '무아(無我)'란 말은 석가모니 부처의 근본 사상이다. 달마 역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것은 석가모니 부처가 일으킨 모든 혁명의 머릿돌이다.

 
'중생과 부처가 하나다'라는 말은 석가모니 부처조차도 하지 않았던 말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달마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은 보통사람과 성자가 전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그들은 생각이 다르고 인격이 다르지만, 그들의 주체를 이루는 내면 자체는 같다. 죄인과 성자는 똑같다. 죄인은 불필요한 죄의식으로 고통 받고 있고, 성자는 '나는 너희들보다 거룩하다'라는 불필요한 에고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러나 무아라는 점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기본적으로 같다.

 
경전을 대하고서도 흔들림이 없으며--

 
이런 사람들은 경전의 말에 따라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아'를 경험한 것이다. 그들은 에고로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의식에 도달해보았다. 이 세상의 모든 경전이 틀렸다 하더라도 그들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침묵으로 동의하며 이론과 하나를 이루어--

 
이 부분에서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 첨가되었다. 달마의 말로 바꾸자면 '이론과 하나를 이루어'가 아니라 '체험과 하나를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를 우리는 이입, 즉 원리에 들어갔다고 부른다.

 
이 말은 달마에게서 나온 말이다.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말이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대는 움직이지 않는 침묵 속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아무런 노력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대는 마치 그대가 없는 것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때 그대는 존재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출처 : 상승의 문
글쓴이 : 대천광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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