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

[스크랩]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 류시화

황령산산지기 2016. 5. 20. 15:37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 류시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 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속의 물풀처럼 졸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에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출처 : 【우수카페】신비한 약초세상
글쓴이 : 올렛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