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인간들은 먹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죽이는 일을 즐기기 위해서
죽이기도 한다. 사냥이나 낚시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요즘 사람
들은 「레저」라고 한다. 여가를 이용한 놀이와 오락이라는 것이다.
당하는 쪽에서 보면 절박한 생사문제인데, 그것을 놀이와 오락으로
즐기고 있다니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산토끼는 어린 아이처럼 운다는 말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법구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모든 생명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 이치를
자신의 몸에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죽게 하지 말라. 모든 생명은
안락을 바라는데 폭력으로 이들을 해치는 자는, 자신의 안락을 구할
지라도 그는 안락을 얻지 못한다」.
한 생명의 숨결이 희미하게 꺼져가는 임종의 자리를 지켜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순간 한순간 마치 힘든 고개라도 올라가듯 어렵게
어렵게 들이쉬고 내쉬는 거미줄같은 그 가는 목숨의 숨결이 얼마나
엄숙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우리가 인간이라고 내세울 것이 있다면, 믿고 의지해 살아가면서
서로를 사랑과 존엄성을 지니고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존
엄성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는 거죽만 사람 형
상을 하고 있을 뿐 진정한 인간은 아니다.
○새끼품은 어미의 뼈
삼국유사 권5에는 혜통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혜통이
출가하기 전 세속에 있을 때, 그의 집은 남산 서쪽 기슭인 은냇골
어귀에 있었다. 어느날 집 근처 시냇가에서 수달 한 마리를 잡게
되었다. 고기는 끓여서 먹고 그 뼈는 뜰가에 버렸다. 이튿날 아
침 뜰가에 나가 보니 그 뼈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기고 자
세히 살펴보니 웬 핏자국이 띄엄띄엄 나 있었다. 그 핏자국을 따라
가보니 전날 수달을 잡았던 그 근처 보금자리에 수달의 뼈가 고스
란히 다섯 마리 새끼를 안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그는 크게
놀랐다. 자신의 행동을 자책한 끝에 그는 마침내 속세를 등지고 출
가 수행자가 되었다.
죽은 어미의, 새끼를 그리는 생각이 얼마나 지극하고 간절했으면
죽어서 버려진 뼈가 새끼를 안고 있었겠는가. 이것이 모성애요 영혼
의 작용이다. 짐승도 이러는데 사람이 어떻게 어린 자식들을 제 손
으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육체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만, 영혼은 그 무엇으로도 죽일수
없다. 영혼은 불생 불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신이 거주하는
사원과 같은 것. 사원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파괴할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가슴은 파괴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중심에 신이
, 혹은 불성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 죽이는 일
내 안에서 무엇이 숨을 쉬고 있을까. 무엇이 보고 들을줄 알고꿈
을꾸는가. 무엇이 들어 있어 아름다운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꽃향
기를 식별할줄 알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가.
살아있는 목숨을 죽이지 말자. 그리고 죽게 하지도 말자. 남의
목숨을 끊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이다. 인간사는
스스로 지어서 받는 인과관계로 엮어진다.
-《법정 스님》- http://cafe.daum.net/moneylove
세상의 희망 http://cafe.daum.net/moneylove
우리는 가끔 자신의 인생이 세상에서
가장 괴롭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볼 때 우리는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얻습니다.
우리가 힘든 삶 가운데서도
희망을 간직하고 살면 우리를 보는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줍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 앞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힘든 인생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에 희망을 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우리의 눈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자신의 숨소리가 들리고,
세상의 화려함과 비참함이 보인다면
아직 우리는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약함도 때로는
낙심한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빛날 수 있으니까요.
- 약한 것이 세상의 희망 중에서 -http://cafe.daum.net/money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