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디더러운 세월을 한탄하는 글을 끼적여봐야 부처의 심정으로 글을 써도 야차가 뒤엉켜 싸우는 아귀다툼 소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고, 하느님 심정으로 글을 써도 사탄과 악마가 착한 소녀의 목 줄기 혈관에 대롱을 찔러 넣고 피를 빨아먹고 나서 입맛을 쩍쩍 다시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니, 그런 더러운 것에서 훨- 훨- 벗어난 시답잖은 시를 써 보렵니다.
어쭙잖은 글을 많이 썼지만 시(詩)는 영 못 쓰겠다.
시라고 써 놓고 보면 이건 시도 아니고, 해수병 걸린 김 첨지의 목구멍에 찹쌀 풀 같이 찰싹 달라붙은 가래 끓는 소리를 받아 써 놓은 꼴이다.
고산윤선도의 시가를 읽으면 시가가 읊은 풍경이 눈에 훤히 들어오고, 윤동주의 나라에 목숨을 바치는 시를 읽으면 한 글자 한 글자가 가슴에 와 서늘하게 꼽히고, 치매 걸려 정신이 해-까닥 하기 전의 김지하 시를 읽으면 한 글자 한 글자가 가슴을 후벼 쑤시는데 내가 쓴 이걸 시라고 해야 되나?, 비온뒤 황도마당을 어미 닭과 병아리가 어지럽게 밟고 지나간 발자국이라고 해야 되나?
초등학교 몇 학년(1950년대 후반)때인지 배고픔과 졸음이 엄습하는 한 여름 오후 선생님이 에밀레종의 전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못 하는 아이도 졸든 아이도 모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선생님의 결론은 너무 가난해서 목구멍 하나라도 덜어내려고 봉덕사종을 만드는데 불쏘시개라도 하라고 단 하나뿐인 딸을 시주하고 말았단다.
선생님의 그 얘기를 듣는 어린가슴의 아픔이라니!
불쌍한 그 계집아이가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 바로 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1965년)때 어머니가 이웃에서 어렵사리 꾸어온 돈으로 학교에 여행경비를 납부하고 눈물겨운 수학여행을 가서 계집아이와 내가 녹아들어간 에밀레종을 처음으로 상면을 했다.
내가 왕십리오두막집에서 사니 계집아이와 내가 녹아들어간 종도 종루도 없이 박물관 한편의 잡초 밭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때 해설사의 설명으로는 왜정시대 왜놈들이 에밀레종을 왜로 가져가려고 순전히 인력으로 운반을 하다 너무 무거워 어느 논에 처박혀 있던 것을 해방이 되고나서 여기로 옮겨와 임시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 것 같았다.
학교에 돌아와서 내가 녹아들어간 에밀레종을 상면한 소회를 시(詩)라고 써 보았다.
물론 머릿속에만 써 놓은 것이다.
<에-밀-레-라-!>
시주-ㅅ 바랑 속 아기보살이 너무 고와서
서러운 울음소리 쇳물에 어리어
즈믄 해를 두고 울어도 그 설음 더해라!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라-
그리고 한전엘 들어가서 3대째 물려받은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문어대갈 전두환이 한참 전성기 때 전두환이 청와대 외각 나들이를 하면 청와대경호실의 똘마니가 되어 문어대갈 전두환이나 주걱 이순자가 갈 곳을 앞장서서 가서 위대한 두 인물이 거기를 거쳐 갈 때 정전이 안 되도록 미리 살펴보는 업무를 3년간 담당했다.
그때 전두환이 현대조선인지 포항제철을 들러보러 왔을 때 그 일을 끝내고 잠간 동안 경주를 훑어볼 기회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석굴암과 불국사로 향했지만 나는 다 제체 놓고 박물관을 가 보았다.
새로 짓고 새로 단청을 해서 아주 깨끗하고 훤칠한 종루에 종이 잘 모셔져 있었다.
내가 왕십리 움막집을 벗어나 어엿한 집을 장만했으니, 계집아이와 내가 녹아 들어간 종도 훤칠한 고대광실저택(종루)을 장만하셨던 것이다.
내가 꿈에 그리던 집을 장만한 것 같이 가슴이 뿌듯했다.
하지만 고대광실을 장만해서 이사를 했다고 해도 슬픔은 슬픔대로 남는다.
서울로 올라와서 다시 그 감회를 위 고등학교 때 썼던 시에 이어 시랍시고 썼다.
물론 머릿속에 썼다.
<에-밀-레-라!>
가난의 잔혹함인가?
부처의 이끄심인가?
제 배불려 토해낸 딸 새끼를 끓은 쇳물에 집어 던지는 어미의 심중을 헤아릴 길이 없어라!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라-
즈믄 해를 두고 우는 울음이 뒤에-ㅅ 사람 가슴을 적신다.
죽기 전에 한 번 더 가서 종님을 뵈어야 할 터인데!
그러고 나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내 시의 3절을 채워 넣어 마무리를 지어야 할 터인데!
더러운 세상과 세월이 그럴 여유조차 주지를 않는구나!
윤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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