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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
[동명왕릉 - 평양 역포구역 용산리]
[동명왕릉 (북한 평양)]
위 무덤은 북한이 [고구려시조 동명왕릉]이라고 발표한 것.
저 무덤이 [고구려시조의 릉]이든 아니든 간에
양식으로 보아 광개토대왕때의 고구려무덤보다 더 전 것.
그런데 그때 이미 피라미드에 흙을 덮는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하단만 돌피라미드고 그 위는 흙이 보인다.
안에는 변형된 작은 피라미드 모양이 있다.
[동명왕릉 묘실을 바라본 광경]
위와 같이 동명왕릉때는 이미 무덤 건축구조가 많이 달라져 있다.
[고구려 덕흥리 벽화고분]
위 덕흥리 고분은 수백자의 글자가 발견되어서 유명한 [유주자사 진]의 무덤.
그런데 이 고분에 쓰여진 것이
이 고분을 [광개토대왕 18년]에 만들었다는 것.
즉 광개토대왕 시대의 무덤.
이 고분은 피라미드 형식이 좀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많은 변화를 보인다.
아마도 진짜 광개토대왕의 무덤은 이 무덤과 비슷한 형식으로 크기는 더 클 것이다.
즉 장군총을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무덤으로 볼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
그리고
진즉 도난당했을테니까.
한국고대사가 일본고대사보다 빠르다는 것을 극력 감추고 싶어했다.
아마도 자존심도 상하고 또한
[
뿌리 얕은 일본]이 [뿌리 깊은 한국]을 통치한다는 것은 명분이 안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식민지의 고대사를 훼손, 폄하하는 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태왕릉 - 누군가에 의해서 많이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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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밑변 길이 64미터 (장군총은 32미터)
저 명문전(글자 써진 벽돌) 중에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그리고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정말로 태왕릉 위의 누각같은 데 사용된 것이라면
이는 태왕릉이 [광개토대왕]의 능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고구려임금은 모두 [태왕(太王)]이라 불렸다.
[광개토대왕]만 [태왕(太王)]이라 존칭된 것이 아니란 얘기.
[광개토대왕]을 [태왕(太王)]이라 존칭하면서
그 부왕(父王)을 그냥 왕(王)이라 했을 리 없고
그 할아버지왕도 그냥 왕(王)이라 했을 리 없는 일.
[태왕릉(太王陵)이 산(山)처럼 장구하기를 기원한다.]는 귀절은
당시 고구려인들이 태왕릉이 어느 임금의 능인지 모른다는 얘기.
예를들어 조선시대에 왕릉을 만들면서 벽돌에
" 이 '조선임금'의 능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는 글을 썼다면
이는 뭔가가 이상한 일.
" 이 세종임금의 능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 이 성종임금의 능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등
그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어느 임금이지)를 밝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냥 " 이 '조선임금'의 능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는 식으로 쓰지는 않는다.
예를들어 성종의 능을 만들면서
" 이 '조선임금'의 능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는 식으로 썼다면
이는 그 선대 임금들에 대한 엄청난 불경이 된다.
마치 성종이 모든 조선임금을 대표한다는 식의 표현이 되므로.
성종의 선대임금들도 모두 '조선임금'인데
성종의 능에 '조선임금'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는 없는 일.
'조선의 성종임금'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는 있어도.
이런 식으로
벽돌에 그냥 [태왕릉(太王陵)]이라 쓰여진 것은
당시 사람들이 태왕릉이 누구의 능인지 몰랐다는 얘기.
그냥 막연히 '태왕릉은 고구려 선대 어느 임금의 무덤일거야.'라 생각했다든지
아니면
태왕릉이 고구려임금의 능이든 아니면 고구려 이전 고대 임금의 능이든
한국의 임금은 모두 [태왕(太王)]이라 칭하면서
고구려가 고대한국의 정통성을 계승이라는 것을 표방한 것이라 하겠다.
고구려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구려임금들만 [태왕(太王)]이 아니라
고구려 이전 시대의 선조 임금들도 모두 [태왕(太王)]
확실한 것은
그냥 [태왕릉(太王陵)]이라 쓰여진 것은
당시 사람들이 태왕릉이 누구의 능인지 몰랐다는 얘기.
아마도 당시 고구려 사람들은 태왕릉에 대해서
" 고구려 어느 임금의 능인지 아니면 고구려 이전 시대 임금의 능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선조 어느 임금의 능인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하겠다.
[출처 - 동아일보]
고구려에서 광개토대왕만 [호태왕]으로 불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만약 방울의 [호태왕]이 광개토대왕이고
진짜로 이 [호태왕 방울종]이 [태왕릉 피라미드]에서 나왔다면
[태왕릉 피라미드]는 더더욱 광개토대왕릉이 될 수가 없다.
광개토대왕 때의 신묘년(辛卯年 : 391년)은 광개토대왕이 즉위하던 해.
18세 젊은 왕이 즉위하면서 이미 자신의 능이 완성되어 있었다는 얘기인가.
만약 위 방울의 [호태왕]이 광개토대왕을 뜻하는 것이라면
위 방울은 [광개토대왕]이 즉위하면서 그 즉위를 하늘과 선조에 고하는 행사 를 태왕릉에서 했다는 얘기가 된다.
방울종을 만들고 피라미드에서 [즉위식]을 했다는 얘기.
만약 [태왕릉 피라미드]가 어느 고구려 임금의 무덤이었다면
피라미드 위에 올라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선대왕의 무덤 위에 올라가는 일은 차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고구려 당시에도 [태왕릉 피라미드]는 고대의 것이었고
그래서 거기서 즉위행사를 했다고 본다.
[태왕릉 피라미드]가 선조들이 만든 신성한 제단임에 분명하므로.
- 그리고 당시 이미 유해는 없었을 것이므로
고구려인들은 태왕릉을 무덤이 아니라 제단으로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태왕릉은 무덤이기 이전에 제단.
또한 그래서 고구려인들이 피라미드위에 누각을 세웠을 수는 있다.
[태왕릉 내부]
[태왕릉 내부]
출처 - http://cafe.naver.com/8653kpi.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379
그런데 고대 이집트인이 한국에 온 흔적은 없다.
압록강 주변에는 장군총, 태왕릉 말고도 한민족 피라미드들이
무려 1만2천기나 있다.
황하문명의 뿌리라는 만주서부 [홍산문명]이라는 것도 [환웅 배달문명]의 한 지류(가지)에 불과하다.
만주남부 압록강 지역에 널려있는 저 한민족 피라미드들.
이에 대한 발굴은 중국당국이 이미 오래전에 했고
유물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동북꽁정.
때가 되면 중국당국은 세계에다 대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이다.
' 고조선사도 쭝국역사라고 보고...근거는 없지만...허험...
그러므로 고조선 이전 역사도 쭝국역사라고 보고...흐허허험...
그러므로 저 피라미드들도 쭝국역사라고 보고...크하하하...
거래서 피라미드도 쭝국의 창조물이고...캬캬캬캬...
그냥 우기면 다 우리거거든~~~"
이런 의도로
동북꽁정을 지나서 그들은 '탐원꽁정'이라는 이름까지 붙인것.
탐원이란 근원을 찾는다는 것인데 탐원꽁정이란 중국의 근원만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고대한국문명을 통째로 삼키시겠다는 말씀.
실로 으스스한 짓거리다.
허나 그들이 세계인들의 다수를 포섭하기는 불가능할 것이고
결국 동북꽁정, 탐원꽁정은 역사왜곡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양심적인 학자들은 동북꽁정을 우려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수는 없으므로.
결국 중국에 망신만 갖다 줄 것이므로.
'꽁정파'는 [진실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동북꽁정'이 결국 자신들의 조국인 중국을 '역사왜곡이나 하는 비열한 나라'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위에서부터
1.장군총
2,3. 서울 석촌동 고분
[서울 석촌동 고분]
장군총 태왕릉과 마찬가지로
서울시 석촌동 피라미드들도 백제 때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백제보다 훨씬 더 전 것들이라는 근거는 많다.
고대부터 원래 있었던 저 피라미드들이 백제 때도 천제를 올리는 장소로 사용되었을 수는 있지만.
- 수십년전 서울시 강남개발계획서등을 보면 당시 대부분 논밭과 벌판의 시골이던 강남에는 수많은 피라미드가 있었고 위 피라미드보다 훨씬 더 큰 피라미드들도 있었는데 모두 없애버리고 3개만 남겨놨다. 나머지는 모두 사라지고 그 위에 집과 길이 들어섰다. 그리하여 지금의 강남이 되었다.
평양 단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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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릉이라 전해오는 원래의 피라미드는 좀 떨어진 곳에 따로 있다.
그 피라미드는 누군가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많이 파괴되었고
북한당국이 위 사진처럼 좀 떨어진 곳에 새로 재건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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