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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포석정은 과학기술의 결정체

황령산산지기 2010. 8. 4. 15:22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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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포석정 사진들 -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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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 '포석정은 과학기술의 결정체'

 

연합뉴스 | 2001-03-29 

 

 

(대전=연합뉴스)

 

`신라시대 왕과 귀족들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며 시를 읊었다는 포석정(鮑石亭.사적 제1호.경북 경주시 배동 소재)은

고도의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결정체다.'이런 주장에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우선 포석정의 구조를 살펴 보면 수로(水路)는 다양한 크기의 63개 석재를 이용해 만들었는 데

20㎝ 높이의 측벽 석재의 최대 폭은 15㎝ 정도로 상당히 안정돼 있고 내측 함몰도 보이지 않는다.

형태는 마치 `포어(鮑魚)'라는 물고기처럼 구불구불하고

동서의 긴 축이 10.3m,폭은 7m, 수로의 총 길이는 22m이며 수로 폭은 24-40㎝로 일정치 않지만 평균 30㎝ 정도다.

포석정이 과학적으로 설계됐다는 것은 수로가 유체역학적으로 술잔이 물을 따라흘러 가다가

어느 자리에서 맴돌도록 하는 `와류(渦流.회돌이)현상'을 응용했다는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과학기술원 장근식 교수가 포석정과 같은 형태의 모형을 제작,

직접실험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포석정의 유체역학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수로에서 와류현상이 일어남을 확인했다.

특히 포석정은 물이 흘러 가는 경로가 다양하기 때문에

술잔을 서로 다른 위치에서 출발시킬 경우 결코 같은 경로로 이동하지 않으며

수로 경사가 급격하게 변하는 곳이나 굴곡 지점에서 수로 폭을 확장, 내측 바닥면의 함몰을 만들어 술잔이 엎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이런 유체학적 기술은 수천번 이상의 실험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에

포석정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흘러 내리는 물의 양 및 속도와 수로의 형태 및 폭,

측면의 만곡률, 표면장력, 술잔의 크기 및 무게 등이 치밀하게 고려된

고도 과학기술의 산물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면 포석정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놀이'를 위한 시설에불과한 것인가?

포석정이 놀이 시설이라는 주장은 삼국사기에 `서기 927년 12월 후백제의 견훤군대가 신라 금성(지금의 경주)에 쳐들어 가

포석정에서 흥청망청 놀고 있던 경애왕(景哀王)을 자살케 했다'는 대목에 근거하고 있다.

또 삼국유사의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도 `제49대 헌강왕(재위기간서기 875-885년)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南山神)이 춤을 추자 왕도 따라 췄다'는 대목도 포석정이 놀이 시설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포석정이 놀이 시설이 아니라 국정(國政)을 의논하던 `회의 장소'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화랑세기(花郞世記)' 필사본에 포석정이 사당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는 `포석사(鮑石祀)'라는 말이 나오고

포석정 주변에서 음이 같은 `포석(砲石)'이라고 쓰인 명문기와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포석정이 위치한 남산이 신라의 4대 성지(聖地) 중 하나라는 것과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숨을 거둔 12월은 날씨가 추워 술을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것도

놀이 시설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다.

어쨌든 포석정의 용도가 놀이 시설이었느냐 회의 장소였는가의 공방은 차치하더라도

포석정이 신라인의 뛰어난 과학기술의 결정체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이동칠기자>chil8811@yna.co.kr

 

기사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0062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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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즉 후기신라 즉 신라, 발해(후고구려)가 공존했던 [남북국 시대]의 신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가 융화되어 그 전보다 한단계 더 높은 문화를 이루죠.

한민족의 융화는 한국을 살리고 발전시키며

나아가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를 이루는 것이라 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융화된 문화는 고려시대에 더욱 꽃을 피워서 

그 결과 탄생한 것 중 하나가 [금속활자]라 하겠는데

이 한국 고유의 발명품인 [금속활자] 기술이 서양에 알려져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탄생하는 기반이 되었다는 것도

차차 세상에 알려지는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졌다."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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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하겠습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들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코리안 2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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