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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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천년간 세계 최고의 발명으로 꼽히는 금속활자
예전에 엘 고어 (전 미 부통령)이 한국에 와서 말하기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한국의 기술이 전해진 것이라 했죠.
당시 교황사절단이 한국에 왔고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을 배워갔으며
그들이 구텐베르크의 친구였기 때문에 구텐베르크가 그걸 배웠고
이 사실을 앨 고어 자신이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고 했죠.
구텐베르크 금속 활자는 한국에서 배워간 기술 <- 관련글
이에 대한 KBS 이동식 기자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동식 기자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기 전에 이미 한국은
특히 조선 세종 시대에 금속활자로 활발한 출판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종 시대의 문화발전에 금속활자의 공도 컸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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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동식 기자의 칼럼 중에서 - 2006.12.16
출처 - KBS 홈페이지
http://news.kbs.co.kr/bbs/exec/ps00404.php?bid=101&id=418&sec=&page=10
지난해 5월 19일 서울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05'에는 미국의 앨 고어 전(前) 부통령이 개막식 기조연설을 했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이날 눈에 번쩍 띄는 말을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은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인쇄술에 이어
세계에 주는 두 번째 선물"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말을 한다: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당시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이후 얻어온 기술이다"
당시 교황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해서 금속활자의 기술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말이다.
당시에 교황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했는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고어 부통령은 이 말에 이어서 이것은 자신이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알게 된 것"이라며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할 때 교황의 사절단과 이야기했는데
그 사절단은 한국을 방문하고 여러 가지 인쇄기술 기록을 가져온 구텐베르크의 친구였다"고 전했다
(2005년 5월 19일 연합뉴스).
앨 고어의 말은 마침 이 포럼이 한국에서 개최된 것이기에, 한국인들이 듣기 좋은 말을 골라서 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지만,
한국에서 지금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이 혁명은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한국이 세계에 주는 두 번째 선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서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정의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한국이 세계에 준 첫 번째 선물인 금속활자에 관한 이야기는 또한 전혀 새로운 사실(fact)이다.
우리로서는 듣지도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텐베르크가 한국을 방문한 친구들(교황의 사절단)으로부터 인쇄술을 배웠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구텐베르크가 처음으로 인쇄술 개량을 시작한 것이 1434년에서 1444년 사이이고, 첫 성서발행이 1452년쯤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으므로,
그가 만약 한국을 다녀온 친구를 만난 것은 1430년 이후 1440년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텐베르크는 1397년 생이므로 1430년 이후면 그의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때여서, 이 무렵 이후에 그의 친구를 만났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1430년경이라면 당시 한국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1430년은 조선왕조 세종 12년, 1440년은 세종 22년이다.
이 당시에 가장 조목을 받은 사건은 태종 3년인 1403년에 이뤄진 계미자(癸未字)의 주조와 이에 따른 서적의 대량인쇄이다.
새로 임금이 된 태종은 1403년 계미년에 주자소를 처음으로 설치하고 신하들에게 구리를 헌납 받아서 몇 달에 걸쳐 구리활자를 만든다.
이 활자로 <十七史略古今通要(십칠사략고금통요)> 등 서적들을 대량으로 인출하기 시작한다.
이 계미자 주조는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발명된 이후 170년 뒤의 일이지만
처음으로 인쇄술로 일반인들에게 대량으로 서적을 간행 보급한 사건으로서,
이때 간행된 서적들은 여전히 구텐베르크를 앞서는,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이후 태종으로부터 왕권을 인수받은 세종은 계미자를 개량하여 즉위 2년 후인 1420년에 경자자(庚子字)를 주조하였고,
1434년(세종 16년)에는 자체가 가장 아름답다는 갑인자(甲寅字)를 만들어 조선시대를 이어 내려가며 각종 서적을 인쇄하는 기본 자체로 활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약에 구텐베르크의 친구가 교황의 사절로서 한국을 방문했다면 바로 이 무렵인 것이다.
즉 조선 왕조 초기 태종과 세종에 의해 막 활자혁명, 인쇄혁명이 일어난 때이다.
고려 왕조에서 금속활자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면,
새로 세워진 조선왕조는 새로운 이념의 보급을 위해 금속활자로 대량으로 서적을 인쇄하는 출판혁명을 시작한 것이고,
바로 이 무렵에 유럽사람이 이 상황을 보고 듣고 새로운 움직임에 충격을 받고 관련된 증거나 물품들을 가지고 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본다면 구텐베르크의 친구들이 진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는지 아닌지 그 사실여부는 세계 문화사 사상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만약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 사실이라면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이 한국에서 직수입됐다는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관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앨 고어는 자신이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해결의 열쇠는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이 쥐고 있을 것이다.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이 몇 개나 있는가?
필자가 구글에 검색해보니 전문박물관은 바젤과 비숍첼에 있는 2군데 정도가 나오고 있고,
그 외에 다른 박물관에 포함된 것이 있다고 해도 3~ 4개 밖에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교황청과의 연관이 있는 박물관이라면 그 수는 더욱 적을 것이다.
그런데도 앨 고어가 이 발언을 한 지 일 년 반 이상 지났지만 아직까지 우리 대사관에서 이 문제를 알아보았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또한 국내의 많은 연구기관에서도 이 문제를 알아보았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왜 이런 중요한 문제를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가?
앨 고어에게 그 박물관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물어보는 것으로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문제가 규명되면 세계사를 새로 써야할 사안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난 해 이 소식이 우리에게 알려진 이후 사람들은, 앨 고어 부통령이 이런 사실을 전했다는 점에만 만족하고,
아무도 그 뒤의 보다 큰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고어의 특종보도가 그대로 사장되는 듯한 느낌이다.
서울 디지털 포럼에서의 앨 고어 (연합뉴스 사진)
고어 부통령은 한국에 오기 전인 1995년 한 국제회의의 기조 연설에서 한국인들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으나,
유럽에서와 달리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한국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어는 그 원인으로 한국의 금속활자가 서적의 대중화 내지는 자본주의화를 이루어 내지 못한 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발명된 이후의 상황만을 두고 말하면 그렇지만,
조선시대 초기 태종과 세종 때의 금속활자의 개량과 서적의 대량인쇄를 보면, 고어의 지적은 틀린 것이 된다.
오히려 우리나라도 조선왕조 초기 금속활자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정신문명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바로 그 중요한 시기에 서양의 교황사절단이 어떤 연유로든지 한국에 와서 바로 그 혁명의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직수입한 것으로,
그것이 바로 서양의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그 중요한 역사적인 고리가 앨 고어가 주장한 '교황 사절단의 한국방문'의 사실여부이다.
지금 우리가 제2의 커뮤니케이션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디지털 혁명의 선두 주자에 서있게 된 배경도
과거 커뮤니케이션 제1혁명을 선도한 전통을 이어받는 것이기에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확립해 놓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약에 이를 역사 속에 묻어놓고 잘못된 역사를 방치한다면 고어 전 부통령이 정말로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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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KBS 이동식 기자의 칼럼 중에서
구텐베르크 금속 활자는 한국에서 배워간 기술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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