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떤 틀을 버리는 연습이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죽을 때까지
끝없이 반복되더라도 나는
수련에 임하는 그 시간 자체가 너무도 좋고 만족스럽다.
오늘도 가볍고 상쾌한 마음으로
도장을 향해서 가고, 돌아올 때는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명랑함으로 돌아온다.
국선도를 시작한지 벌써 2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 선배들이 얘기하는 호흡의 맛이라든가 그 어떤 특별한 느낌은 없다. 특히 국정감사 기간 동안 거의 20일 이상, 그리고 그 이후에 점심약속 등으로 1주일에 3 ~ 4일 정도 하면 잘 할 정도로 수련을 빼먹었다.
그래서 이즈음에 이런식으로 하면 정말 국선도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와 그런 호흡의 맛을 모른다면 너무 의미없는 반복된 수련이 아닐까 하는 자포자기의 우울증에 빠져 있는데 느닷없이 수련기를 쓰라는 말씀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어떤 수준에 올라서겠다고 시작한 운동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조금은 욕심이 생겼나보다 하는 생각에 우습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마음을 내리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으로 수련에 임하고 있고 빠지는 날에는 속상해 하지 않고 집에 가서 준비운동과 잠깐이라도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 단전에 어떤 것이라고 확실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배꼽 밑에서 느껴지는 둥글고 묵직한 것 혹은 배 아랫부분에 약간 넓은 막대같은 느낌의 것이 그 스스로 신축성을 가진 듯 앞으로 왔다 뒤쪽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국정감사 가기 전까지 느겼었다.
그런데 아무 느낌이 없다가 요즘 다시 조금 살아나는 느낌을 받고 잇다. 그래서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다시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무엇을 이루려는 욕심을 버리고 無心으로 바라보는 그런 수련시간을 가지리라, 그러면 국선도의 참 맛도 느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수련에 임하고 있다.
'97년 여름에 후배가 국선도를 권했을 때 국선도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단지 그 후배가 하고 있는 것이 무슨 운동인 것 같은데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운동이 건강해지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 후배의 굵은 머리결을 그렇게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곧바로 시작했다. 그 때나 그 전이나 나는 건강하지 못했고 신장염,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 과민성대장염, 저혈압으로 인한 빈혈증세, 디스크 증상까지 있어서 병원과 약국이랑 항상 친하게 지내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엔 소화제를 안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때는 후생관 2층에서 했는데 건강문제를 떠나서 그 곳에 가서 선도주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어떤 산 속에라도 와 있는 것처럼 나 혼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그것이 너무나 편안하고 좋았다. 정말 달콤한 꿈속에라도 있는 듯이 그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배꼽 및의 아랫배가 뜨거워지고 팽이가 돌 듯 소용돌이 치면서 등 아랫쪽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손은 뜨거워졌다. 그래서 내 몸이 항상 차갑고 손발과 배가 차가운데 이런 느낌은 나에게 뭔가 좋은 것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겻다.
그러다가 발가락과 발톱 밑을 파고드는 바이러스성사마귀때문에 냉동치료라는 것을 받았는데 냉동치료하기 전에 우선 칼로 그 부분을 떼어낸 다음에(마취 없이 하기때문에 거의 발악음 함) 그 부분을 얼리는데 그 고통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나는 평소에 아픔이나 슬픔이나 감정들을 어떤 모습과 형태인지 강하게 느껴보고 싶어서 정신을 집중하는데 그 고통을 느껴본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1년동안 치료를 받았는데 그 때도 몇 동작은 할 수 없었지만 수려은 계속했다. 중기단법 전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행공중에 꼭 그 발가락만 심한 진동을 하는데 그것이 내겐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통증도 조금 가라앉는 듯 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어떤 수준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좋은 기운이 가는 것일꺼야." 라는 생각으로 계속 수련에 임했다.
그리고 나도모르게 좋아진 것이 있는데 그것이 위와 장 계통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나는 소화를 잘 못시켜서 항상 소화제를 먹었고 등을 두드리거나 손을 따고, 소화를 위해서 무지막지하게 아프게 손을 만져주는 우리과 조 선배에게 손을 맡기고 비명을 지르곤 했었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소화제를 찾지 않았다. 지금은 먹고싶은 것을 마음 놓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만 하다. 특히 꼭 건강하기 위해서만 한 것이 아니었고 그 수련 자체가 내가 원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 주어서 그것으로도 너무나 만족했지만 건강뿐 아니라 마음도 달라진 것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하는 것이 아닌데도 나도모르게 달라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소 차분하다가도 화 나는 일이 생기면 꼭지가 돌고 두껑까지 열리는데 그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 예를 들면, 언젠가 직장에서 돌아와서 옷을 갈아 입다가 몹시 화가나서 두껑이 열린 적이 있다. 거실로 나가서 한바탕 포악을 부린 후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현관에 아랫집 할머니께서 와 계셨던 모양이다. 너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서 계셨다. 나는 너무도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숙였는데, 아뿔싸, 내가 팬티만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때의 창피함을 지나 그 참담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또 그것으로 인한 우울증은 한참이나 자신을 괴롭혔다.
그런데 요즘은 화 나는 것은 똑같지만 꼭지가 돌고 뚜껑까지 열리는 정도로는 가지 않는다. 설사 크게 화가 나더라도 얼마 못가서 제풀에 시들해진다. 약간 극단적인 면이 있는 편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원만해지는 느낌이다. 여유도 생기고 얼굴도 밝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나처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데도 이런 효과를 거두어도 되는 것인지 미안스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은 중기후편을 하고 있는데 동작도 잘 안되고 조금만 잡념이 들어서면 호흡이 어디로 사라지고 무감각해지기 일쑤이다. 또 손을 올리면 단전에 있던 그 느낌이 배꼽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럴 때는 너무 속상하지만 그럴수록 많이 느끼려는 욕심을 버리려고 자꾸 버리는 연습을 한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잔머리를 굴린답시고 이틀이상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하루건너 점심 약속을 했는데 그러면 매일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것을 느꼈다. 건강과 마음 의 평정심은 어느사이인가 생길지 몰라도 내 나름대로 단전이라고 느끼는 그 신축적인 느낌, 그리고 빠져드는 그 느낌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점심약속을 하려면 3일 연속 수련 후에 하루 정도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특별수련시간에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완전히 나를 맡기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국선도가 우선이 아니고 다른 모든 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 건강이라든지 대인관계를 위한 인간성이라든가 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이라든지 등등 - 필요한 것인데 점심약속이나 인간관계를 멀리하고 국선도만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런데 요즘은 꼭 내가 건강하고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냥 단순히 호흡만 계속 몇 시간씩 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간절해 지는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요즘 내 나름대로의 단전의 느낌을 받았다. 특히 위로 뜨는 것을 막기 위해서 치골에서 한 마디쯤 꼬리벼에서 한 마디쯤에 의념집중을 했는데 숨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1주일 내리 설사를 했다. 너무 심할 때는 쓰러질 정도 였지만 일을 마친 후에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밥도 잘 먹고 아픈 증상은 없었다. 1년 동안에 서너차례 그랬는데 얼마 전부터는 그런 증상이 없다. 또 골반과 어깨가 무너져 내리듯이 아프기도 여러차례였다. 그러나 요즘은 수련을 통해서 나타나는 변화는 거의 없다. 아랫배가 뜨거워지는 현상도 없어서 섭섭한 생각도 들고 내가 너무 열심히 안했구나 하는 반성도 들지만 그런 현상이 있든 없든 꾸준히 수련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나의 어떤 틀을 버리는 연습이 시지프의 신화처럼 죽을 때까지 끝없이 반복되더라도 나는 수련에 임하는 그 시간 자체가 너무도 좋고 만족스럽다.
오늘도 가볍고 상쾌한 마음으로 도장을 향해서 가고, 돌아올 때는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명랑함으로 돌아온다.
...
위 글은 책 '가을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 한순덕님의 수련 체험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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