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335

죽은 후의 삶이 존재할까

꿈을 꾸었다. 죽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 때부터 이십대 중반까지 내가 살던 낙산 자락의 오래된 일본식 작은 목조건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니까 당장 집이 달라졌다. 낡고 더럽고 부서져 가던 재래식 화장실이 깨끗하게 닦여져 있었다. 아버지는 변기까지 새로 만들어 놓았다. 깔끔한 목공솜씨였다. 쓸쓸한 냉기가 돌던 집안이 훈훈해 진 느낌이었다. 잠을 깼다.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간지 삼십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이따금씩 꿈속으로 찾아오신다. 육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도 생생하게 꿈에 나타나곤 한다.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고 했었다. 가난했던 시절 야산 위의 붉은 흙으로 만든 봉분은 떼가 자라지 않고 황량한 느낌이었다. 산 아래 흙이 좋은 곳 푸른 나무 아래로 할아버지를 옮기려고 하기 전날 밤이었다. ..

죽음이란? 2021.12.25

성자와 죄인의 죽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갤러리 점심 무렵 친구가 하는 컨설팅 사무실을 들렸다. 퇴직을 한 몇 명이 모여 자문에 응하는 법인이었다. 그 구석의 칸막이 책상 앞에 음울하게 앉아있던 고교후배가 있었다. 그는 늦은 밤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컴퓨터바둑을 두면서 음울하게 지냈다. “그 친구 죽었어. 사무실에서 전혀 몰랐어. 가족이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야 통보를 한 거야. 문상도 가지 못했어. 왜 그런지 몰라.” 물거품이 스러지듯 가뭇없이 주위에서 사람들이 사라진다.변호사를 하면서 서초동 부근에서 삼십년을 보냈다. 웃고 떠들며 법원 앞길을 다니던 선배 변호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연기같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죽음이 낯설지 않게 주변에 다가와 있다. 여러 사람의 죽는 모습을 눈여겨 보았다. 성자로 알려진 한 노인을 찾..

죽음이란? 2021.12.04

저승에 가면

저승에 가면 저승에 가면 한 번도 못 만나 좋을 거야, 참 좋을 거야 잘난 사람들 악질들 모두 천국엘 재주껏 갔을 테니 못난 사람들만 만날 거야 눈물 흘릴 때마저 숨어서 눈물 흘리고, 그러나 노역을 기쁨으로 빚어 목마름 풀어주는 물병 하나 가득히 서러움 채워 허리띠에 졸라매고 큰소리 한번 못 치지만 푹 고개 숙인 체 오늘도 저승으로 영어 연습하며 아이 엠 해피! 막노동판 찾아간다 -글 문충성-

죽음이란? 2021.10.24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나의 죽음은 확실하다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 나는 안죽고 왜 살아 있을까?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의심해 본다. 수많은 죽음을 보면서 나만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불가사의해 보이는 것이다. 세상은 왜 존재할까?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사실에 의문해 본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항상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제도 있었고 그제도 있었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몹시 두려웠다. 죽음은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무섭고 두려운 것이었다. 죽음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만큼은 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기 마련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과 같다. 태어남은 있는데 죽음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

죽음이란? 2021.10.17

지금 이순간 저 세상으로 간다면

지금 이순간 저 세상으로 간다면 새벽이다. 눈을 뜨니 3시 반이다. 잠을 청할 수 있다. 그러나 사나운 꿈만 꿀뿐이다. 차라리 앉아 있는 것이 낫다. 앉아서 무엇을 해야 할까? 멍하니 있다 보면 시간만 지나 간다. 뭐라도 하나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게송을 암송하는 것이다. 최근 외웠던 법구경 마음의 품 열한 게송을 빠알리어로 암송했다. 경전을 보지 않고 머리에서 꺼냈을 때 내것이 된 것 같다. 차를 마신다. 보이차를 마시니 속이 짜르르하다. 목구멍에서 부터 부글부글한다. 보이차를 마셨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치 수채구멍에서 찌꺼기가 내려 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런 맛에 보이차를 마시는지 모른다. 새벽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애써 해보려 하기 보다는 고요함을 즐긴다. 아침 6시까지는 내 ..

죽음이란? 2021.10.09

사고사(事故死)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고사(事故死)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태어났으니 끝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날이 언제가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왜 그런가? 우리는 모두 업생(業生)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은 업이 익어서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죽음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적시적 죽음’이고 또 하나는 ‘비시적 죽음’이다. 적시적 죽음은 수명대로 살다 죽는 것을 말한다. 나이 들어 오래 살다 죽었을 때 제명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경우 ‘호상(好喪)’이라고도 말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고 등으로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이다. 이를 비시적 죽음이라고 한다. 비시적 죽음은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비시적 죽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상의 존재라면 적시적 죽..

죽음이란? 2021.10.09

무엇이 존엄한 죽음인가

"나 좀 죽여줘. 제발 부탁이야." 아내는 일 년 동안 남편인 정씨(80세)에게 부탁했다. 차마 정씨는 아내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엄연히 살인이니까. 아내는 20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아내 병세는 조금씩 악화했고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 정씨는 아내 병간호뿐만 아니라 자녀 돌봄도 책임진 다중 간병인이다. 아들은 나이가 50살이지만 몸은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이다. 키 130cm에 몸무게가 30kg 남짓이다. 아들은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몸과 마음 발달이 더뎠다. 복합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래도 정씨 부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이다. 정씨 아내는 아들에게 물리치료, 재활치료, 음악치료까지 안 해본 게 없다. 그러나 아들의 병은 좋아지지 않았다. 30년간 아들 병시중을 한 아..

죽음이란? 2021.09.19

죽는 기술(技術)

우리 모두 그 언젠가는, 각자의 묘비 뒤에 쓸쓸히 눕겠지만 겨울을 향해 누워버린 애잔한 가을처럼 하얀 서리 묻은 외로운 낙엽처럼 기억을 모두 털어내고 침강하는 시간처럼 오직 적막한 기다림으로 텅 빈 가슴처럼 마지막 풀잎소리에 기울이는 허황된 귀처럼 모든 건 공허하기에, 입으로 미망(迷妄)의 시를 부르며 나는 서서히 나에게 스스로 부드러운 사망을 권유하는데, 또 다른 낯선 사람이 어느덧 내가 되어 먼 소망의 눈짓으로 미련한 사랑을 한다 몸 안에 숨가쁘게 헐떡이는 예리한 심장 그 뜻을 모르는 나는 아직도, 세상을 모질게 살아내는 삐에로의 숙명(宿命)만 생각한다 아, 죽음보다 창백한 영혼에 못박힌 삶 하나 부여잡고 줄기차게 언제나 내 줄을 끊어버리곤 했던 절망 같은 것, 그것은 지치지도 않는지 이번엔 기어코 ..

죽음이란? 2021.09.11

니체와 퇴계의 죽음~

니체와 퇴계의 죽음~ 비참한 죽음, 인간답지 않은 죽음을 날마다 접합니다. 끔찍하지만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죽음은 삶만큼 중요하다란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웬만한 사람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화두가 죽음이고 결론은 항상 비슷합니다. "나는 인간답게 죽겠다". 그러면서 또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 인간답게 죽는 것인가,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 서양 정신세계에 니체만큼 큰 영향을 준 인물도 드뭅니다. 니체는 당시까지의 모든 철학과 종교관, 인간관을 비판하고 새로운 인간상을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한 최대의 화두는 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것은 종교의 부정이 아닙니다. 피안의 존재에 의지하는 나약한 인간상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의 완성에 전념하라는 주문이었..

죽음이란? 2021.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