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소줏잔, 주름살, 할머니 웃음

황령산산지기 2006. 5. 1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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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진기자 정지윤의 취재 뒷얘기를 띄워드립니다. `소주 드시는 할아버지"를 찍으러 갔다가 할머니를 담아오게 된 재미있는 사연이 펼쳐집니다. 정 기자는 풍경과 인물을 역동적이면서도 따스한 시각으로 담아내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소주와 관련된 사진을 찍기 위해 트렁크에 소주 2박스를 싣고 2년 전 충주의 한 시골 마을을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사실 저는 밭고랑에서 자연스럽게 소주를 드시는
촌로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내려갔습니다.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밭고랑
에서 일을 하시던 할아버지께서는 사진 찍는 것을 쉽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소주의 이미지와 주름살 많은 촌로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사진 찍을 일이 많지 않았던 할아버지께서는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면 무척이나 긴장을 하셨습니다. 아무리해도 자연스런 표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난감해하던 차에 옆에서 물끄러미 이 광경을 지켜보시던 할머니께서 마지못해 소줏잔을 들고 할아버지를 훈수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광경이 더 재미있더군요. 한 순간의 동작이었는데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선이 굵은 주름과 붉게 탄 얼굴, 그리고 한 칸이 비어있는 틀니 사이에서는 가공할만한(?) 웃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결국 공을 들여 사진을 찍었던 할아버지는 소주 2박스를 차지하며 기뻐하셨고, 옆에서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기뻐하는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시고, 사진을 찍던 저도 덩달아 신이 나서 웃고…, 이렇게해서 한가로운 시골 밭고랑 사이로 한동안 웃음이 질펀했습니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이 사진 신문에 나가면 도회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부끄러울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절대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지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