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上天下 唯我獨尊

*동방삭 (東方朔 BC 154∼BC 93)

황령산산지기 2006. 5. 7. 20:18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사람. 자(字)는 만청.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사람. 자(字)는 만청. 제(齊)의 산둥성[山東省(산동성)] 출생. 벼슬이 금마문시중(金馬門侍中)에 이르고, 해학·방술(方術)·기행(奇行)·풍자로 유명한 무제의 측신(側臣)이었다. 문사(文辭)에 특히 뛰어났으며 《답객난(答客難)》 《비유선생론(非有先生論)》 등의 저서가 유명하다. 《신이경(神異經)》 《십주기(十洲記)》의 저자로 알려져 왔으나, 황당한 내용의 문집 《신이경》은 위(魏)나라 때 진경(晉頃)이 지었다고 한다.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장수하였다는 속설이 전해지므로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이라고 일컫는다.



*東方朔 동방삭

東方朔(前154-前93)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로,
흰 얼굴에 흰 머리와 수염을 달고 흰색 도포를 입고 있다.

동방삭(東方朔 / BC 154~BC 93))에 대하여..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 염차(厭次:지금의 山東省 平原縣 부근) 사람.
옌츠[壓次] 출생. 막힘이 없는 유창한 변설과 재치로 한무제(漢武帝)의 사랑을 받아 측근이 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시중꾼이 아닌, 무제의 사치를 간언하는 등 근엄한 일면도 있었다.
‘익살의 재사’로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상주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를 자조(自嘲)한 문장 《객난(客難)》과 《비유선생지론(非有先生之論)》을 비롯하여 약간의 시문을 남겼다.
이미 한나라 때부터 황당무계한 문장을 이 이름으로 가탁(假託)하는 일이 많아 《신이경(神異經)》 《십주기(十洲記)》 등의 저자라고 전해지나 모두 진(晉)나라 이후의 위작(僞作)으로 추측된다.
속설에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장수하였다 하여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일컬어졌으며 ‘오래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그 뜻이 바뀌어 쓰인다.

♣ 도사(道師)삼천갑자 동방삭과 좌원방(左元放)

지금부터 2천4백∼5백년경 중국 한나라(前漢) 시대의 이야기이다.

몇 백년을 살았다고 하는 삼천갑자 동방삭(본명 만청자(滿淸子))이란 사람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심산유곡에서 선도(仙道)에 열중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라에서 그를 필요로해 그를 찾기 위한 수많은 군사들이 산골짝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동방삭은 태연자약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어두컴컴한 석굴(石窟)에서 천리안(千里眼)의 도술을 통해 이미 군사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군사들은 동방삭이 거처하고 있는 석굴 근처에까지, 와와하고 몰려들었지만 깎아지른 듯이 험난한 절벽 위에 굴이 있어 아무도 그 굴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러자 묘안을 생각한 장수가 활촉을 이용하여,'지금 임금(漢武帝)께서 선사(仙師)님을 급히 모셔오라는 어명을 받고 왔소이다'는 내용의 서신을 굴안으로 쏴 올렸다.
그러자 동방삭은 날아온 화살을 왼손으로 잡아 그 화살대에 긴 손톱을 이용하여 '그대 군사들 보다 내가 먼저 갈것이오(君軍我身先臨)'란 답서를 써 굴 밖에 있는 장수에게 입바람을 통해서 날려보냈다.
답서를 받은 장수는 동방삭의 뜻을 금방 이해하고 곧 말머리를 돌려 궁성으로 향했다.
동방삭이 있는 산에서 궁성까지는 며칠 동안 걸리는 먼 거리였다.
동방삭은 긴 백발을 휘날리며 축지법으로 단숨에 궁성 뜰 앞에 학이 내려앉듯 살포시 내려 앉았다. 임금(무제)은 동방삭을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하며 동방삭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침식을 취하고 있는 대궐 처마에 구리종(銅鐘)을 매달아 놓았는데 이상하게 한두 달 전부터 종을 아무도 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울려 괴상망칙한 생각이 드는데 왜 우는지 그 까닭또한 알 길이 없어 선사를 부르게 된 것이오."라고 근심어린 어조로 말을 했다. 듣고만 있던 동방삭이 임금에게,"그렇다면 그 구리로 종을 만들 때 그 구리는 모두 다 어디서 구하셨사옵니까?"라고 묻자 임금은 구리산이라는 곳에서 캐어다 만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방삭은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고 두 손을 합장하여 천리통(千里通)이란 술법으로 구리산 한쪽이 무너져 내려 앉아 있음을 보고는 깜짝놀랐다.
동방삭은 자신이 본 바를 그대로 임금께 알려주자 임금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면서 뭣인가 믿어지지 않는 듯이 신하를 불러 구리산이 과연 무너졌는가를 알아보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동상삭의 말대로 무너진게 사실이라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동방삭에게 엄중한 자세로 물었다.
그러자 동방삭은 바른 자세로 다시 한 번 몸을 가다듬은 뒤 "구리종이 우는 것은 구리산이 무너졌기 때문인데 본래 땅의 기운(地氣)이란, 사람으로 비유하면 어머니와 아들과 같은 인연이옵니다.
이를테면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구리산이 무너졌기 때문에 아들격인 구리종이 따라서 울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미흑한 인간들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한 채 종이 저절로 울린다고들 하고 있을 뿐입니다."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므로 산이란 것도 우리 인간들과 같이 풍수학(風水學)에서 용(龍)이라고 일컬어 부르는 혈맥이란 것이 있어서이옵니다" 동방삭이 이렇게 설명을 하자 임금은 신기한 듯, "그러면 인간은 그 뿌리를 시조(始祖)라고 하는데 산에도 인간과 같이 그런 뿌리가 있을 게 아니오?"하고 묻자 동방삭은, "그래서 산에는 가장 근본이 되는 조종산(祖宗山)이란 것이 있고 그 다음에는 주산(主山)이 있사온데 그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인간의 혈맥과 조금도 다름없사옵니다."
임금은 동방삭의 말이 하도 신기하여 자신도 모르는 결에 점점 신비스러운 경지로 빠져들었다.
더구나 궁색함 하나없이 자신의 질문에 술술 답하고 있는 동방삭이 선뜻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임금은 동방삭에게, "그러면 선사(동방삭)께서 말한 대로 인간이나 땅이 한결같이 그 근본(뿌리)이 있다면 온천하(세계)도 반드시 그 뿌리가 있을 텐데 천하의 뿌리는 어디가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동방삭은, "그렇지요. 세상 모든 사물에 음양(陰陽)이 있듯이 온 세상이 만들어진 과정도 반드시 시작, 즉 발원성지(發源聖地)가 있사온데 바로 그 발원성지는 이웃나라 해동국(海東國)이옵니다." 라고 간단하게 설명하자 임금은 더욱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왜 하필이면 해동국이란 말이오?" 하고 조금은 상기된 모습으로 동방삭을 향하여 묻자 동방삭은, "주역에 시어간 종어간(始於艮終於艮)이라고 적혀있는데 그뜻은 모든 만물의 시작과 끝이 간방(艮方)에 있다는 뜻입니다. 헌데 이 간방은 지구 중심부에서 볼 때 바로 해동국이 있는 위치이옵니다."
임금은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고 바다와 같이 넓은 지식으로 답을 하는 동방삭이 마음에 쏘옥 들었다.
그리하여 동방삭이 궁성에서 며칠이라도 더 좋은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동방삭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궁궐을 빠져나와 짚고 있던 지팡이를 공중으로 휙하고 던져, 나는 차(飛仙車)로 둔갑을 시켜 그 차에 몸을 싣고 석굴을 향하여 구름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후 동방삭은 백일승천(百日昇天)을 했다.
백일승천이란 사후(死後)의 현상을 말한 것으로 죽은 시신뿐 아니라 사용품 일체가 사라져 볼 수 없는 것을 일컫는 것이며, 죽은 사람이 생존시에 쓰던 옷가지나 지팡이 신발 등만 관속에 남아 있고 시신이 사라진 사후 상태를 시해(尸解)라고 일컫는다.
도가(道家)에서 백일승천이나 시해를 한 사람은 노자(老子)를 비롯 강태공(姜太公), 이소군(李小君) 등 사십여 명이 되는데, 이십여 명의 시체는 없어지고 쓰던 물건만 남아 있는 시해를 했고, 이십여 명은 물건도 시체도 깡그리 사라진 백일승천을 하였다.
이러한 죽음의 현상에 대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삼국시대의 조조(曹操)와 도인(道人) 좌원방(左元放)의 이야기다.
좌원방이 천주산(天柱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정진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자 시기 많은 조조가 불안을 느끼고 해치울 생각으로 우선 좌원방을 궁궐 안으로 불러들여 다짜고짜로 감옥에 밀어넣었다.
그리고는,'며칠동안 밥을 주지 않으면 죽겠지…….'하고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 반년쯤 지나도 아무런 이상이 없자 그로부터 일년쯤을 그대로 방치해두었다.
조조는 추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은근히 기대하며 좌원방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갔는데 죽어서 뼈만 남아 있어야 할 좌원방이 하하하 웃으며, "도를 닦을 수 있게큼 이렇게 조용한 방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깜짝 놀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진수성찬의 차림을 해놓고 화해를 하는 척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내 만약 그것을 못 맞추면 죽일 계략이었다.
조조는, 이윽고, "술안주로 다섯 자 가량의 큰 농어가 먹고 싶은 터에 다행히도 이곳에 유명한 선사가 계셔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니 선사께서 다섯 자 가량의 농어 한 마리만 구해줄실 수 있겠습니까? 하며 좌원방에게 당당한 태도로 묻자, 좌원방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좀더 큰 농어를 찾지 않으시고요. 그러면 제가 지금부터 농어를 잡아들일 테니 잡수기만 하십시오." 하며 큼지막한 구리 대야와 낚싯대를 가져오라 분부했다.
그리고 물이 가득 담겨 있는 대야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한참동안 침묵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주위에 모여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숨죽인 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느닷없이, "이얍!" 하고 소리친 좌원방은 곧 그 대야에서 펄펄 뛰는 커다란 농어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
그러자 주위에 모여 섰던 많은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함성을 올렸다.
조조는 더욱 화가 치민 얼굴로 눈을 위아래로 굴리며 이젠 노골적으로 좌원방에게 직접 술을 따라 올리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자 좌원방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조조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보란 듯이 술잔을 들어올려 조조에게 줄 듯하다가 자신이 먼저 두서너 모금을 마신 후 그 술잔을 조조에게 돌렸다.
속으로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조조는 마음 속으로 발끈하여, '무례한 놈 같으니!' 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좌원방이 주는 술잔을 받아 마셨다.
"이번에는 이 술잔을 공중에 올려보시오." 라고 좌원방을 쳐다보며 시험을 내리자 좌원방은 갖고 있던 젓가락으로 술잔을 허공으로 툭 튕겨 올렸다.
주위 사람들은 질색을 하며 술잔이 떨어질까 어쩔 줄 모르고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술잔은 공중에서 빙빙 돌아가며 조조와 만조 백관, 심부름하는 노비들 앞에 잠깐잠깐 머무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좌원방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화가 난 조조는 온 몸을 와들와들 떨며 그 자리에서 즉시 온나라에 좌원방을 체포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조조에게 쫓기는 몸이 된 좌원방은 양떼 무리 속에 숨어 들어 순한 양으로 둔갑을 하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한쪽 눈이 찌그러지고 걸레같이 갈기갈기 찢겨진 옷을 입고 있는 늙은 거지로 둔갑하기도 했다.
또한 한 마을에 똑같은 모습의 거지들이 득실거리게 만들어 포졸들을 어리둥절케도 하고 포졸들의 훈련장에 들어가 포졸들을 만취케 하여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조조를 회롱할대로 회롱하기도 하였다.
좌원방은 오(吳)나라에 가서 갖가지 둔갑술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게 되었으나 손책(孫策)의 미움을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손책이 여러 신하들과 한 고을을 행차하여 돌아보고 있을 때 좌원방이 느닷없이 손책이 타고 간 말 앞에 나막신을 신고 어정어정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가 치민 손책은 좌원방을 찔러 죽일 생각으로 창을 휘두르며 말을 채찍질하여 달렸지만 끝내 잡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후 좌원방은 곽산(藿山)이란 곳에 은거하며 선도(仙道)의 비법을 갈현(葛玄)이란 제자에게 물려주고 백일승천 하였다.

  字曼?,平原厭次(今山東惠民東北)人。性?諧幽默,善辭賦,武帝時大臣、文學家。   武帝?位初年,徵召天下賢良方正和有文學才能的人。各地士人、儒生紛紛上書應聘。東方朔也給漢武帝上書,上書用了三千片竹簡,兩個人才?得起,武帝讀了二個月才讀完。在自我推薦書中,他說:「我東方朔少年時就失去了父母,依?兄嫂的扶養長大成人。我十三歲才讀書,勤學刻苦,三個冬天讀的文史書籍已?用了。十五歲學擊劍,十六歲學《詩》,《書》,讀了二十二萬字。十九歲學孫吳兵法和戰陣的擺佈,?得各種兵器的用法,以及作戰時士兵進退的鉦鼓。這方面的書也讀了二十二萬字,總共四十四萬字。我欽佩子路的豪言。如今我已二十二歲,身高九尺三寸。雙目炯炯有神,像明亮的珠子,牙齒潔白整齊得像編排的貝殼,勇敢像孟責,敏捷像慶忌,廉儉像鮑叔,信義像尾生。我就是這樣的人,?得上做天子的大臣?!臣朔冒了死罪,再拜向上奏告。」   武帝讀了東方朔自許自誇的推薦書,讚賞他的氣?,命令他待詔在公車署中,俸綠不多,也得不到武帝的召見。   過了一段時間,他不滿意目前的處境。一天出遊都中,見到一個侏儒,恐?他道:「?的死期要到了!」那侏儒問他?何,他說:「像?這樣矮小的人,活在世上無益,?力不能耕作,也不能做官治理百姓,更不要說拿兵器到前方去作戰。像?這樣的人,無益於國家,只是活在世上糟?糧食,所以如今皇上一律要殺掉?們。」侏儒聽後大哭起來。東方朔對他說:「?暫時不要哭,皇上就要來了,他來了?去叩頭謝罪。」一會兒,武帝乘輦經過,侏儒號泣叩首。武帝問:「?何哭!」侏儒說:「東方朔說皇上對我們這些矮小的人都要殺掉!」武帝問東方朔?什?要如此說。東方朔回答道:「臣朔活著要說,死了也要說這些話。那矮子身長只有三尺多,一袋米的俸祿,錢二百四十。我身高九尺多,?也只拿到一袋米的俸祿,錢二百四十。那矮子飽得要死,我餓得發慌。陛下廣求人才,?認?我講的話對的,是個人才,就重用我;不是人才,也就罷退我,不要讓我在這裏浪費糧食。」皇上聽了哈哈大笑,任命他?待詔金馬門,這樣見到皇帝的機會就多了些。   一天武帝在宮裏玩?,把一隻壁虎放在盂盆下要大臣們猜是何物。大臣們都猜不出。東方朔上前猜道:「?是龍?,沒有角;是蛇,?有?,???脈脈地會在牆壁上爬行,這不是壁虎,就是四?蛇!」皇上說「是的」,便賜給他十疋緞子。接連又叫他猜,他都能猜中,得到?多的賞賜。   武帝身旁的寵優郭舍人有些不服氣,把一個長有菌芝的樹葉放在盂盆下讓他猜,如猜出他甘願受笞一百。東方朔說:「生的肉叫膾,較的肉叫脯;生在樹上寄生的東西叫芝菌,盂盆下就是這個東西。」一聽東方朔又猜對了,漢武帝叫人打郭舍人一百下。郭舍人被打得??直叫。東方朔又說:「?!口上沒有毛,聲音??叫,?股翹得半天高。」郭舍人怒道:「東方朔膽敢譏笑皇帝身旁的近臣,罪當棄市。」武帝問東方朔:「?何要笑他?」東方朔說:「臣?未笑他,只是與他作個謎語罷了!」武帝說:「謎語是??說的?」東方朔說:「那口上沒有毛的,是狗洞,聲音??是烏在哺他的小烏,?股翹得?高的,是仙鶴低頭在啄食。」郭舍人仍不服氣,說道:「我要再問他一個謎語,他如果猜不出也應受打。」接著他用諧音作一謎:「令壺齟,老柏塗,伊優亞,??牙。這是什??」東方朔想了一會兒說:「令,就是命令。壺,是盛東西的器具;齟,是牙齒長得不整齊;老,是人們對他的敬重;柏,就是鬼廷;塗,是慢慢浸濕的路;伊優亞,是說話不定;??牙,是兩隻狗在爭?。」凡是郭舍人出的謎語,沒有能難倒他的,大臣們對東方朔的思路敏捷,幽默風趣都?驚訝,漢武帝也非常喜歡他,任他?常侍?。   一天,大伏酷暑,武帝下詔官員到宮裏來領肉。等了好久,分肉的官員還未來,東方朔就自己拔出劍割了一大塊肉,?對同僚們說:「大伏天,肉容易腐爛,大家快快拿回去?!」第二天,武帝對東方朔說:「昨天賜肉,??何不等詔書下來,擅自割肉歸家,這是?什???要自作批評!」東方朔說:「朔來!朔來!受賜不等詔書下來,?何這樣的無禮!拔劍割肉,?何這樣勇敢!割得不多,?何如此廉儉!帶回家給細君(妻妾),又?何表現得如此的仁愛!」漢武帝聽後說:「要?自作批評,倒是表揚起自己了!」又賞賜給他酒一石,肉一百斤。他都拿回家去孝敬老婆。   武帝喜歡微服出巡,恣意遊獵。常率衛隊西到黃山,南到長楊宮,西至宜春宮。一路上帶了一?武騎浩浩蕩蕩,他們騎馬射鹿,追逐狐?,甚至空手格?熊?,在遊獵過程中,馬隊踐踏莊稼,百姓怨聲載道。有人建議武帝?一個皇家苑?。武帝命吾丘壽王等人設計,南至阿房宮,東至??,西至宜春宮的一大片土地內圍造上林苑,專供武帝遊獵、休憩。要用這?大的一片土地築造苑?,東方朔上書力勸武帝。他說:「如築造這樣的苑?,破壞了陂池水澤的環境。侵?了百姓膏?的土地。這上對國家無用,下對百姓無利。這是第一個不能造的理由。其次,?破壞了百姓的?墓,?黎民的室廬,使百姓死無所葬,生無所居。其三,造這樣的苑?,用馬東西?著,用車南北走著,還要?深溝大渠,這是勞民傷財的事,以陛下一日之樂,來損害皇上無上的聖名,這是萬萬不可的。」東方朔的諫阻上林苑書寫得?切感人,武帝讀罷奏疏後,任東方朔?太中大夫,給事中,賜黃金百斤。然而武帝仍按吾丘壽王所上奏的那樣,建造了上林苑。   隆慮公主的兒子昭平君是個驕奢淫逸的公子哥兒,娶了武帝的女兒夷安公主。其母?自己死後,兒子闖禍犯罪,於是預先拿出黃金千斤、錢千萬給政府,贖他的死罪。隆慮公主去世後,兒子果然日益?道,一天酒後殺了夷安公主身旁的僕人,被拘繫在內官那裏。因?他是皇親國戚,不能隨便懲處,廷尉於是把他交給武帝處置。武帝身旁的大臣都?他求情,說「他母親已?他出了一筆錢,贖了他的死罪,陛下也答應過」。武帝說:「我那可憐的妹妹,年紀?大了才有這個兒子,生前還託付給我。」說看流下了眼淚。過了一會兒,他擦乾了眼淚,又說:「法律是先帝制訂的,如果是妹妹的關係破壞了先帝的規矩,我有何?面進高帝的宗廟?!如何去下對黎民百姓??」於是核准了對他外甥的懲處,同時武帝又悲傷地哭了起來。這時東方朔上前高高?起酒杯獻酒道:「臣聽說聖王?政,賞賜不避仇家,誅罰不分骨肉,如今?陛下遵循古訓,所以四海之內兆民百姓都能各得其宜,這是天下的榮幸。今天,我捧了這杯酒,?皇上敬酒,冒著死罪,再拜萬歲、萬萬歲!」武帝對他說:「古書上講『該說話的時候才說話,這樣人們才不會討厭他』,今天的情景,是?應該上壽酒的時候??」東方朔說:「臣聽說快樂過度了,陽氣要溢滿;悲哀過度了,陰氣要減損。陰陽變了,心氣就要動;心氣?動,精神澳散,邪氣乘虛而入,能?消憂解愁的最好是酒。所以我奉上壽酒,一來表明陛下公正無私,二來要解除?的悲哀。我不知忌諱,?是罪該萬死!」這時東方朔已喝得酪?大醉,在殿上小便,大臣們彈幼他「大不敬」罪,被下詔罷官,貶?庶人。後待詔在宦者署中,因對策有功,任中?,賜帛百匹。   武帝的姑?館陶公主,亦叫竇太主,其夫堂邑侯陳平去世後,守寡多年,已五十多歲。一個賣珠寶的女子經常到?家去,還帶了個十三歲的兒子董偃。董偃長得?漂亮,竇太主就把他留在身旁,?他御射術數。到了十八歲他已是個儀表堂堂的英俊少年。他與竇太主出則執?,入則侍側,關係非同一般,整個京師都知道他與竇太主的關係,叫他董君。   一天武帝到竇太主家做客,公主激動萬分,親自下廚做菜。武帝坐定後對姑?說:「希望見見?的主人翁。」竇太主就把董偃引了出來。只見董?頭戴綠帽子,手套皮筒子,?在公主的後面,對武帝說:「臣董偃,公主家的?人,冒死叩拜皇上萬歲!」武帝見他長得?美貌,也?喜歡,賞賜他?多東西,?喊他「主人翁」。從此,董偃經常與武帝??走狗,遊獵?球。由於他與武帝關係日趨親熱,董?名聲大?,京城王公貴戚沒有一個不認識他的。一天,武帝在宣室設酒宴款待竇太主和董偃。當他們要進入宣室時,東方朔執戟上前阻?,對武帝說:「董偃有三個罪名可殺:他以人臣的名義,私侍公主,這是第一條死罪。敗壞男女風化,?亂婚姻禮制,有傷先王的制度,這是罪二;陛下正當壯盛之年,須積思放六經,留心於王事,追慕唐虞的政治,仰敬三代的?化,而董偃?不知依經書勸學,反而以靡麗?重,奢侈?稱,盡狗馬之樂,極耳目之欲,行邪枉之道,徑淫?之路,這是國家之大賊,社會之大害,這是他第三條死罪。」武帝聽後,默不作聲,過一會說:「我已經擺好酒宴,下次再改?!」東方朔說:「不可以。宣室是先王的正殿,不是議論正當的國事,不能進去!正是這樣,淫亂的事情才漸漸消除下去。不要弄到這樣的境地:?貂?桓公淫亂,後來終究和易牙一同?患;慶父縊死於?國,魯國方得安寧;管蔡誅滅了,同室方得治安。」武帝聽罷說:「是的。」便下詔停擺酒宴於宣室,改擺在北宮。讓董?從東司馬門進去,後又把?改稱東交門。賞賜給東方朔黃金三十斤。從此,董偃逐漸失去了寵愛,三十歲就去世了。過了幾年,偃太主也去世,董偃與?一起合葬在?陵。   東方朔還是一個文學家,他的散文賦《答客難》,假設客人向作者問難,嘲笑他雖有「博聞辯智」,?難與蘇秦、張儀的地位相比。然後便辯解道:「彼一時也,此一時也,豈可同哉!」戰國之時,諸侯?爭,「得士者?,失士者亡」,談說之士,身處尊位,而如今天下一統,由朝廷掌握用人大權,賢與不肖沒有區別。文章表達了知識分子在漢代大一統局面下才智無所施展的壓抑感,暴露了統治者隨意抑揚人才,致使賢愚不分的現實。作品採用說反話的形式,充滿了牢騷不平之氣。他的?一篇《非有先生論》,假託非有先生之口,發表「談何容易」的感慨,也是抒寫懷才不遇之情的作品。   東方朔的散文賦以上述兩篇最著名。現存作品十八篇,以《七諫》、《答客難》最著。《七諫》借屈原的身世寫自己的不遇,表白對國君的誠貞。《答客難》用滑稽口吻說明了專制君主愚弄臣下的把?,反映了當時政治上的混亂。兩篇雖不以賦標題。實際上?是賦體。屬于神話傳說的《神異經》、《海內十洲記》,雖題?東方朔撰,實際上是?托。
복숭아에 대한 이야기 중국 한무제는 복숭아를 무척 좋아하여 뒤뜰에 복숭아나무를 많이 심어 봄이면 아름다운 꽃을 즐기고 여름이면 그 열매를 즐겨 먹었다.
그런데 어느 해엔가는 때가 되어도 복숭아가 열리지 않았다.(복숭아도 해거리 하는 것이 있다) 무제는 은근히 마음 아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리의 파랑새가 날아와 무제 앞에 날개를 접고 앉는게 아닌가!
무제는 이상하게 여겨 신하인 동방삭을 불러 그 이유를 물었다.
동방삭은 무제에게 공손히 아뢰었다. "그것은 장차 서왕모가 복숭아를 가지고 오실 징조입니다."
동방삭의 말대로 얼마 후에 서왕모가 잘 익은 복숭아 27개를 가지고 와서 무제에게 바쳤다.
서왕모가 가져온 복숭아는 본디 30개였으나 동박삭이 그 중 세개를 훔쳐먹고 얼른 병풍 뒤로 숨었다. 무제는 그 복숭아의 맛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뒤뜰에 심겠다고 했다.
그러자 서왕모는 이를 극구 말리면서 말했다. "이것은 하늘의 복숭아로서 땅에다 심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개를 먹으면 천 년을 더 살 수 있습니다." 세개의 복숭아를 훔쳐먹은 동방삭은 삼천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 외에도 복사꿏에 대한 아름다운 얘기는 수없이 많다.
이를 볼 때 선인들은 복사꽃을 즐겨 감상하고 아껴 가꾸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근교 부천의 옛 명칭도 복사골이었다.


*도사(道師) 삼천갑자 동방삭

지금으로부터 2천4백∼5백 년경 중국 한나라(前漢) 시대의 이야기이다.

몇 백년을 살았다고 하는 삼천갑자 동방삭(본명: 만청자(滿淸子))이란 사람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심산유곡에서 선도(仙道)에 열중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라에서 그를 필요로 해 그를 찾기 위한 수많은 군사들이 산골짝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동방삭은 태연자약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어두컴컴한 석굴(石窟)에서 천리안(千里眼)의 도술을 통해 이미 군사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군사들은 동방삭이 거처하고 있는 석굴 근처에까지, 와~와 하고 몰려들었지만 깎아지른 듯이 험난한 절벽 위에 굴이 있어 아무도 그 굴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묘안을 생각한 장수가 활촉을 이용하여, '지금 임금(漢武帝)께서 선사(仙師)님을 급히 모셔오라는 어명을 받고 왔소이다' 라는 내용의 서신을 굴 안으로 쏴 올렸다.

그러자. 동방삭은 날아온 화살을 왼손으로 잡아 그 화살대에 긴 손톱을 이용하여 '그대 군사들 보다 내가 먼저 갈 것이오(君軍我身先臨)' 란 답서를 써 굴 밖에 있는 장수에게 입 바람을 통해서 날려보냈다. 답서를 받은 장수는 동방삭의 뜻을 금방 이해하고, 곧 말머리를 돌려 궁성으로 향했다.

동방삭이 있는 산에서 궁성까지는 며칠 동안 걸리는 먼 거리였다.
동방삭은 긴 백발을 휘날리며 축지법으로 단숨에 궁성 뜰 앞에 학이 내려앉듯 살포시 내려앉았다.

임금(武帝)은 동방삭을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하며 동방삭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침식을 취하고 있는 대궐 처마에 구리 종(銅鐘)을 매달아 놓았는데, 이상하게 한두 달 전부터 종을 아무도 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울려 괴상 망측한 생각이 드는데, 왜 우는지 그 까닭 또한 알 길이 없어 선사를 부르게 된 것이오.' 라고 근심 어린 어조로 말을 했다.

듣고만 있던 동방삭이 임금에게, '그렇다면 그 구리로 종을 만들 때 그 구리는 모두 다 어디서 구하셨사옵니까?' 라고 묻자 임금은 구리 산이라는 곳에서 캐어다 만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방삭은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고 두 손을 합장하여 천리통(千里通)이란 술법으로 구리 산 한쪽이 무너져 내려앉아 있음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동방삭은 자신이 본 바를 그대로 임금께 알려주자. 임금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면서 무엇인가 믿어지지 않는 듯이 신하를 불러 구리 산이 과연 무너졌는가를 알아보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동상삭의 말대로 무너진 게 사실이라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동방삭에게 엄중한 자세로 물었다.

그러자. 동방삭은 바른 자세로 다시 한 번 몸을 가다듬은 뒤 '구리 종이 우는 것은 구리 산이 무너졌기 때문인데, 본래 땅의 기운(地氣)이란, 사람으로 비유하면 어머니와 아들과 같은 인연이옵니다
이를테면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구리 산이 무너졌기 때문에 아들 격인 구리 종이 따라서 울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미혹한 인간들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한 채 종이 저절로 울린다고들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어 '그리고 산이란 것도 우리 인간들과 같이 풍수학(風水學)에서 용(龍)이라고 일컬어 부르는 혈맥이란 것이 있어서 이옵니다' 동방삭이 이렇게 설명을 하자.

임금은 신기한 듯, '그러면 인간은 그 뿌리를 시조(始祖)라고 하는데, 산에도 인간과 같이 그런 뿌리가 있을 게 아니오?' 하고 묻자.

동방삭은, '그래서 산에는 가장 근본이 되는 조종산(祖宗山)이란 것이 있고 그 다음에는 주산(主山)이 있사온데, 그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인간의 혈맥과 조금도 다름없사옵니다.' 임금은 동방삭의 말이 하도 신기하여 자신도 모르는 결에 점점 신비스러운 경지로 빠져들었다. 더구나 궁색함이 하나도 없이 자신의 질문에 술술 답하고 있는 동방삭이 선뜻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임금은 동방삭에게, '그러면 선사(동방삭)께서 말한 대로 인간이나 땅이 한결같이 그 근본(뿌리)이 있다면 온 천하(세계)도 반드시 그 뿌리가 있을 텐데 천하의 뿌리는 어디가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동방삭은, '그렇지요. 세상 모든 사물에 음양(陰陽)이 있듯이 온 세상이 만들어진 과정도 반드시 시작, 즉 발원성지(發源聖地)가 있사온데, 바로 그 발원성지는 이웃나라 해동국(海東國)이옵니다.' 라고 간단하게 설명하자. 임금은 더욱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왜 하필이면 해동국이란 말이오?' 하고 조금은 상기된 모습으로 동방삭을 향하여 묻자.

동방삭은, '주역에 시어간 종어간(始於艮終於艮)이라고 적혀있는데, 그 뜻은 모든 만물의 시작과 끝이 간방(艮方)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간방은 지구 중심부에서 볼 때 바로 해동국이 있는 위치이옵니다.' 임금은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고 바다와 같이 넓은 지식으로 답을 하는 동방삭이 마음에 쏘옥 들었다.

그리고, 동방삭이 궁성에서 며칠이라도 더 묵으며 좋은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동방삭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궁궐을 빠져나와 짚고 있던 지팡이를 공중으로 휙 하고 던져, 나는 차(飛仙車)로 둔갑을 시켜 그 차에 몸을 싣고 석굴을 향하여 구름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 후 동방삭은 백일승천(百日昇天)을 했다.

백일승천이란? 사후(死後)의 현상을 말한 것으로 죽은 시신뿐 아니라 사용품 일체가 사라져 볼 수 없는 것을 일컫는 것이며, 죽은 사람이 생존시에 쓰던 옷가지나 지팡이 신발 등만 관속에 남아 있고 시신이 사라진 사후 상태를 시해(尸解)라고 일컫는다.

도가(道家)에서 백일승천이나 시해를 한 사람은 노자(老子)를 비롯하여 강태공(姜太公), 이소군(李小君) 등 사십여 명이 되는데, 이십여 명의 시체는 없어지고 쓰던 물건만 남아 있는 시해를 했고, 이십여 명은 물건도 시체도 깡그리 사라진 백일승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