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황령산산지기 2006. 5. 7. 20:15

 

◆ 신에 대한 불경, 그것에의 논박
1983년, 미국에서 ‘그리스도가 결혼했고 그의 혈통이 서유럽으로 유입됐다’는 내용의 책, [성혈, 성배]가 출간되었다. 당시 그 책은 종교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에게 아내와 자손이 있었다니!
이번에 출간된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의 저자인 마가렛 스타버드도 그 책을 읽고 자신의 신학에 기초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불경스런 내용에 충격받은 이 신앙심 깊은 가톨릭 학자는 그에 대한 반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구를 하면 할수록 ‘예수의 신부’와 숨겨진 ‘성배의 교회’에 관한 부인할 수 없는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결국 마가렛은 예수의 신부가 ‘성배’, 즉 그의 자손과 성스러운 혈통을 밴 여인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번에 국내에 번역, 출간된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는 9년에 걸친 길고 치열했던 그녀의 연구 성과물이다.

◆ 신의 신부와 성배
책은 예슈아(예수)와 미리암(막달라 마리아)이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딸이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슈아가 십자가에 못박힌 뒤에 막달라 마리아는 이집트로 도망쳐 딸, 사라를 낳는다. 그리고는 프랑스의 프로방스로 이동한다.
그런 연유로 프로방스의 많은 사람들은 마리아가 신랑인 예수가 사형당한 후 예루살렘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을 믿었다. 하지만 로마 교회는 마리아와 예수가 결혼했고 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철저히 억압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없애려 했다. 그노시스주의와 마니교에 근원을 둔 ‘성’과 ‘자연’을 부정적으로 보는 로마 교회의 교리를 위협하는 사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와 마리아의 혈통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믿는 프로방스 지역의 사람들 15000여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종교재판에서도 같은 이유로 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로마 교회의 시각에서 보면 그들은 ‘이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재판의 억압과 고문이 심해질수록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진리를 교묘하게 숨기게 된다.

◆ '장미 아래', 이단의 교리
저자(마가렛 스타버드)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그러한 ‘이단의 메시지’들을 들추어낸다. 유럽의 전승동화를 비롯해, 보티첼리나 프라 안젤리코와 같은 거장들에서부터 디즈니 만화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감춰진 이단의 메시지를 말이다.
예를 들면 보티첼리는, 로마 교회가 성모상은 청색과 백색 옷만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야 한다고 명령한 뒤에도, 붉은 옷을 입은 성모를 그린다. 그 이유를, 전통적으로 백색, 적색, 청색은 각각 처녀(누이), 신부(배우자, 출산자), 여인(노파)를 상징하는데, 보티첼리는 로마 교회가 거부한 ‘육체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또 마지막 남은 카타르 교단이 스페인에서 강제로 해체된 직후 이태리에서 제작된 타로 카드의 예에서 '이단'의 압축된 교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 밖에도 매년 벌어지는 유럽 남부 지역의 막달라 마리아와 너무도 닮은 성인을 기념하는 축제라든가, 미군 군복에 남아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기장, 디즈니 만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이름이 하필 왜 ‘아리엘’이며, 백설공주가 독묻은 사과에 죽어야하는 이유, 신데렐라와 ‘검은 마리아’의 연관성 등을 문장학, 종교기호학, 문학, 프리메이슨, 신화학, 미술, 성서 등을 근거로 해석한다. 결국 그러한 이야기는 예수의 혈통이 메로빙거 왕조로 이어졌고, 템플 기사단과 시온 수도회, 프리메이슨, 장미십자회 등의 조직들이 성스런 혈통과 성배를 보호한다는 내용이 교묘하게 감춰진 것인데, 이러한 가설은 최근의 베스트셀러 [다 빈치 코드]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 여성성의 복원
앞서 밝혔듯이 책의 집필 동기는 ‘신성에 대한 불경’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 책은 성배 이설에 대한 연구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단연 돋보이는 부분은 정황적 증거를 바탕으로 예수의 아내를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거에 번성했던 ‘여성 숭배’가 남성주의에 우위를 두고 있는 기독교 교리에 짓눌려 사라지게 되었고, 그러한 ‘여성’의 상실이 서구문화를 얼마나 황폐화시켰는지를 설명하는 저자는, 서구 패러다임에서 ‘여성의 복원’, 즉 대립적인 에너지(남성, 여성)의 균형을 통해 서구문화의 ‘균형과 치유’를 모색한다.

◆ 진실과 허구
저자는 “예수가 결혼했다거나, 막달라 마리아가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이 이설이 중세에 폭넓게 신봉되었던 이교의 교의이고, 그 이교의 흔적을 수많은 예술작품과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것이 로마 교회에 의해 심하게 공격당했고, 아울러 그것이 냉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진위여부는 분명치 않지만 저자의 연구는 철저하고 완벽에 가까우며, 그만큼 설득력있는 이론들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 아카데믹한 책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힌다.
어찌됐건 성경을 굳게 믿는 정통 기독교 신자에게는 추천할만한 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보다는 [다 빈치 코드]에서 역사적인 사실과 소설적인 허구의 경계를 확인하려는 독자에게 훨씬 흥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또한 니케아 공의회나, 콘스탄티누스와 테오도시우스가 ‘이단적인’ 복음서와 책들을 억압하는데 일조했다는 등의 종교사적 배경 지식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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