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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들의 사회'

황령산산지기 2006. 2. 19. 14:30
요절한 천재시인들 이야기


“은산철벽을 향해 날아가는 나비의 운명이 시인의 운명이기도 할 터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가로지르는 시혼은 아직 살아 있었다.”(’머리말’ 중)
순진무구한 욕망과 광기 어린 열정을 불꽃처럼 태우며 짧디 짧은 한 생을 살다간 천재시인들의 시와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우대식 시인의 ’죽은 시인들의 사회’(새움 펴냄)가 출간됐다.

김민부(31세) 임홍재(37세) 송유하(38세) 김용직(30세) 김만옥(29세) 이경록(29세) 박석수(47세) 원희석(42세) 기형도(29세)….

자신의 불우함을 거울에 비춰보며 밤마다 궁핍과 싸웠고, 기찻길 옆 판자촌에 몸을 누이고 온몸을 굉음으로 치환시키며, 외딴 논두렁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한 많은 열정의 시인들.

그들의 삶은 얼마나 치열했고 문학에 대한 드높은 열정은 또 얼마나 뜨거웠던가. 책은 그들의 삶과 문학을 하나하나 조문을 읽어가듯 곱씹어낸다.

“일찍이 여러 논자들이 입을 모아 그가 천재였음을 증언하였지만 정작 본인은 밤마다 자신을 물어뜯는 궁핍과 싸웠던 것이다. 그의 생을 돌아보건대 너무도 이른 나이에 가장 높은 정점에 이르렀다가 누구보다 빨리 가장 깊은 망각의 강으로 사라진 셈이다.”(’김민부’ 중)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거나 타인에 대해 결례를 범한 적이 없는 수도승의 자세를 가진 한 젊은 시인이 왜 의문의 죽음에 이르러야 했던가? ’가장 불행한 생활을’을 감수하고자 했던 강인한 내면이 왜 어이없이 무너져야 했는가?”(’송유하’ 중)

몸은 오래 전에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건만 그들이 토해낸 열정적이고 황홀한 시들만큼은 오롯이 남아 주인의 옛 손길을 그리워한다.

“나는 꽃나무./언제 피며, 무슨 색으로 머물며,/어떻게 지며, 얼마나 망설이며 살아야 하는지/(중략)/나는 동상(凍傷)에 걸린 꽃나무./가지 끝에서 미소가 떠난다./가지 끝에서 바람이 모인다.//나는 생각하며 사는 꽃나무./더 아프게, 더 뜨겁게, 더 예쁘게, 더 착하게,/더 고웁게……”(송유하의 ’나·꽃나무·바람’ 중)

“저녁 노을이 지면/신(神)들의 상점(商店)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성(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중략)/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城)//(중략)//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城)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도 역시”(기형도의 ’숲으로 된 성벽’ 중)

저자는 “요절이란 물리적 죽음과 의식의 죽음이 한 지점에서 만나 불꽃처럼 타오르다 소멸해간 흔적”이라며 “소멸의 흔적을 마주했을 때 어떤 통일적 인상을 느끼게 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시인들의 고향이나 그들이 거쳐간 장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유족과 친분이 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고인들의 삶과 문학을 복원해냈다. 2005년 5월부터 지난 1월까지 ’현대시학’에 ’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에 기형도 시인을 취재한 미발표 원고를 더해 책으로 묶은 것이다. 272쪽. 9천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