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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끄트머리 한번 겁나게 달궈' 보고 싶을 뿐

황령산산지기 2006. 2. 19. 13:21
■황동규 3년만의 신작시집 '꽃의 고요'

“시여 터져라.
생살 계속 돋는 이 삶의 맛을 이제
제대로 담고 가기가 너무 벅차다.
반쯤 따라가다 왜 여기 왔지, 잊어버린
뱃속까지 환하게 꽃핀 쥐똥나무 울타리,
서로 더듬다 한 식경 뒤 따로따로 허공을 더듬는
두 사람의 긴 긴 여름 저녁,
어두운 가을바람 속에 눈물 흔적처럼 오래 지워지지 않는
적막한 새소리,
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설 때 기다렸다는 듯 날려와
귀싸대기 때리는 싸락눈을,
시여!”

(‘시여 터져라’ 전문)

황동규(68)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은 “생살 계속 돋는 삶의 맛을 제대로 담아내는 일”이다. 한편으로 생에 대한 ‘도취’이기도 하고, 그 생 너머를 ‘홀로움’으로 허허롭게 응시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시로 도취하고 술로 취한다. 그에게는 도취야말로 삶을 삶답게 만드는 중요한 에너지다. 그가 3년 만에 새로 펴낸 시집 ‘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는 문단 인생 50년이 가까워지는 즈음에 내놓은 도취의 한 정점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다 편안하고 호방하되 더 깊어지고 따스해졌다.

“비가 다시 창을 두드린다.
나뭇잎 하나가 날려와 창에 붙는다.
그걸 떼려고 빗소리 소란해진다.
빗줄기여,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이어온 몸살과 몸살의 삶,
사로잡힘, 숨막힘, 캄캄함, 그리고
불현듯 긴 숨 한 번 들이쉬고, 그럼 어때!
이게 바로 삶의 맛이 아니었던가?
한줄기 바람에 준비 안 된 잎 하나 날려가듯
삶의 끝 채 못 보고 날려가면 또 어때!”
(‘그럼 어때!’ 부분)


 

시인이 ‘그럼 어때!’라고 짐짓 생을 희롱할 때의 마음은 미련에 발목 잡히지 않는 자의 호방함이다. 이리 호방하고 강건해지기까지 그가 그려온 시의 궤적을 뒷받침한 것은 생에 대한 냉철한 직시와 성찰의 힘이었다. 끝없이 시를 통해 “형이상학을 부수고 다시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시인은 맑고 따뜻한 깊이와 큰 허무 하나를 획득한 것인가.

“매미 허물 하나/ 터진 껍질처럼 나무에 붙어 있다./ 여름 신록 싱그런 혀들 사방에서 날아와/ 몸 못 견디게 간질일 때/ 누군들 터지고 싶지 않았을까?/ 허물 벗는 꿈 꾸지 않았을까?/ 허물 벗기 직전 매미의 몸/ 어떤 혀, 어떤 살아 있다는 간절한 느낌이/ 못 견디게 간질였을까?/ 이윽고 몸 안과 밖 가르던 막 찢어지고/ 드디어 허공 속으로 탈각(脫殼)!/ 간지럼 제대로 탔는가는/ 집이나 직장 혹은 주점 옷걸이 어디엔가/ 걸려 있는 제 허물 있는가 살펴보면 알 수 있으리./ 한 차례 온몸으로/ 대허(大虛)하고 소통했다는 감각이.”(‘허물’ 전문)

 

시인은 청년 시절 베토벤이 죽은 나이인 57세를 10년만 더 넘겨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가 바랐던 삶의 나이를 이제 훌쩍 넘겨버린 뒤로는 ‘덤으로 사는’ 생이라고 스스로 규정한다. 서울대에서 정년퇴직하고 여행과 술과 벗들로 소일하는 그에게 ‘덤으로 사는 생’이라는 인식은 시에게 한결 여유로운 호흡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아무리 강건한 시인이라고 왜 슬픔을 모르겠는가. 강건하기에, 슬쩍 드러내는 슬픔의 물기는 더 축축하다.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밤/ 젖은 나무에 기대어 남자에게 따뜻한 젖 먹이고 있던 여자…/ 찬 술 마지막 방울까지 들이켰지,/ 앞으로 모쪼록 피 따끈히 도는 삶을 살라 빌며.”(‘훼방동이!’ 부분)

 

젊은 남자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훔쳐보며 노시인은 찬 술 마지막 방울까지 들이켰다고 고백한다. 오래전 어느 바닷가에서 주워온 돌 속에 남녀 형상의 인간들 살이 서로 엉켜 있는 문양을 보면서는 ‘절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이란 “황혼이 어둠에 막 몸 내주기 전 어느 일순(一瞬), 홀린 듯 물기 맺힌 눈이 아니고는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물기 맺힌 가슴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가 ‘보통 법신(普通法身)’에서 갈파한 것처럼 바다 속 캄캄한 어둠 속에 사는 심해어들조차 저마다 자기 불빛을 가지고 있기에 슬퍼할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다. 다만, “한 차례 온몸으로/ 대허(大虛)하고 소통”하며 “삶의 끄트머리 한번 겁나게 달궈”보고 싶을 따름이다.

조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