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밤마다 죽는 남자

황령산산지기 2006. 2. 12. 10:25
양송이 (qkfmsthfl)님 블로그 글


나르키소스가 호수에 빠져 죽자

생전의 그를 쫓아다니던 숲 속의 오레이아스 요정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 했을까?

원본대로 한다면 호숫가에는 노란 꽃이 피어나야 맞겠습니다만,

우리들의 오스카 와일드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합니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 속의 어느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애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수선화야 피던지 마던지, 나르키소스가 죽었던지 말았던지,

오레이아스 요정들은 또 다른 쫓아다닐 대상을 찾아 숲 속을 배회했을 것이고

그가 날마다 찾아와서 얼굴을 비춰보던 호수는 나르키소스가 그토록 아름다운 남자인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합니다.


날마다 찾아와서 몸을 구부리고 얼굴을 비춰보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을

호수가 몰랐다니 말이나 되겠습니까만, 말이 됩니다. 


나르키소스가 왔을 때, 몸을 구부리고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

실은 호수 역시 나르키소스의 깊숙한 그 눈동자 속에 비치는 호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느라

정신없이 바빴으니까요...

 

웃었습니다.

어릴 때 저는 분명 나르키소스와 수선화의 전설을 읽었고

그것이 나르키시즘의 원조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원조 나르키시스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왜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살아 있는 것은 호수들인가 봅니다. 숲 속의 요정들인가 봅니다.

.

.

.

죽은 나르키소스의 눈동자 속에 살아남은 <뉴 나르키소스>들은

사람을 찾습니다. 자신들에게 눈동자를 빌려 줄 수 있는

혹시나 이 세상 어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를 <올드 나르키소스>를 찾고 있습니다. 


호수는 수선화엔 관심 없고

오레이아스 요정들은 숲 속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마리 사자가 숲 속을 지나갔을 때

숨을 죽이고 숨어 있던 토끼들은 풀숲에서 뛰어 나와 저마다 한 마디씩 했습니다.


사자의 눈은 여덟 개 달렸다,

뿔이 네 개 달렸다.

다리가 열두 개였다.

꼬리가 아홉 달렸다. 

 

저 마다 한 마디씩 했습니다. 서로 우겼습니다. 싸웠습니다.

서로 자기는 사자가 두렵지 않다고 으스대면서 두 눈으로 똑똑히 사자를 봐두었다는 것입니다.

 

배불러 누워 낮잠 자고 있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다람쥐는

사자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멀리 바람결에 튕겨 나갔지만

사자는 토끼들의 싸움에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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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기 위해서 작문 할 것인지

팔리기 위해서 꿈을 꿔야 할 것인지

사랑은 반드시 옷을 벗어야 시작되는 것인지

단어는 가능한 짜릿하고 박두하는 것으로 선택하고

줄거리는 되도록 선명하고 알아보기 쉽게 늘어놓은 신변잡기

나르키소스의 눈동자에 호수 자신의 아름다운 동영상을 올리기.


사과나무도 아니면서 사과장수들이 사과를 팔고 있는 가로에서

선채로 나도 꿈을 꿉니다.

기꺼이 나를 버려

時空(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보편적 사랑을 노래 할 수는 없다 해도

그래도 팔려가는 당나귀는 되지 말자.

사랑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단어는 가능한 온유하고 은은한 것으로 선택하고

줄거리는 있는 듯 없는 듯, 초월한 듯 초월하지 말고 

그냥 매일 밤마다 순순히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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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같이 아름다운 詩를

볼 수 없으리라.


달콤한 즙이 흐르는 흙의 품에

목마른 입을 대고 있는 나무.


진종일 하느님을 우러러 보며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여름에는 그의 머리털 속에

꾀꼬리의 둥지를 이고, 


그의 품에는 눈도 쌓이고

비와 정답게 사는 나무 

 

詩는 나같이 어리석은 자가 쓰지만

나무는 하느님만이 만들 수 있다.


                            [나무]- <Joye Kil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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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