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소주 한 잔 정화에 맑은 물 1t 필요?

황령산산지기 2006. 1. 22. 20:55
서울시는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환경 이슈를 논한다면서 실제로는 현실의 환경과는 동떨어진 탁상 계산으로 귀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시민을 현혹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며칠 전 서울시의 발표 내용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서울시는 소주 한 잔(20 cc)을 정화하는 데는 무려 5만 배의 부피(1 m3)에 해당하는 1 t(톤)의 맑은 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주의 BOD(Biochemical Oxygen Demand)는 24만3천 ppm이므로, 이를 통상적 하수 처리수의 BOD인 10∼20 ppm 수준으로 희석하는 데는 이만한 양의 맑은 물이 필요하다는 게다.

이런 수치를 도출한 근거 자체도 궁금하지만, 이런 탁상 계산치를 발표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소주 한 잔을 버리려면 수돗물 1 t을 함께 흘려보내라는 건가. 곤드레가 되더라도 마지막 한 잔까지 말끔하게 마셔 치우라는 뜻일까. 아니면 그저 재미삼아 듣고 잊으라는 걸까.현실적으로는 소주와 같은 유기물을 희석법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서울시 관계자도 잘 알고 있을 게다.

통상적 하수처리장에서는 유기물을 맑은 물로 희석하는 게 아니라, 폭기조(曝氣槽)에서 미생물의 도움을 얻어 처리한다.

하수 중의 생분해성(生分解性) 유기물은 미생물의 먹이이다.

호기성(好氣性) 미생물이 유기물을 섭취해 분해하기 위해서는 물 속에 녹아있는 산소, 즉 용존산소(溶存酸素)도 함께 섭취한다.

다시 말해서 미생물이 소비하는 용존산소의 양은 생분해성 유기물의 양에 비례한다.

따라서 유기물의 양을 용존산소 소비량으로 대체해 나타내고자 한 것이 BOD이다.

BOD 농도가 높으면 그만큼 생분해성 유기물의 농도가 높다는 의미가 된다.

통상적인 생물학적 하수처리장에서는 폭기조 부피 1 m3 당 하루에 0.5-0.6 kg의 BOD를 처리한다.

이는 소주 100 잔 이상의 BOD에 해당하는 양이다.

하루에 소주 한 잔을 처리하는 데는 폭기조 부피 1 리터 정도로 충분하다.

맑은 물 1 t이 필요한 게 아니다!하기야 돌이켜보면 소주병을 딸 때마다 습관처럼 첫 잔을 버리던 시절도 있었다.

고수레 심리에 편승한 소주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주 한 병은 일곱 잔 정도이므로, 매상고가 족히 15% 가량 증가했으리라.소주에는 두통이나 현기증을 일으키는 퓨젤오일(fusel oil)과 같은 불순물이 들어있기 마련이고, 이런 것은 위로 떠오르므로, 첫 잔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너도 나도 한 잔씩 버리곤 했다.

소주의 주성분은 에틸알콜(에탄올)이고 퓨젤오일의 주성분은 아밀알콜(펜탄올)이다.

소주에 설령 이런 불순물이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섞일지언정 분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열역학(熱力學)을 강의하는 대학교수도 어처구니없는 속설에 놀아났다.

무엇보다도 소주에 이런 불순물이 다량 들어있다면 판매 자체를 금지시켜야 마땅했지만 사람들은 어수룩했다.

어쩌면 막소주마저 귀하던 시절을 상기하면서 그나마 감지덕지했기에 너그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불순물이 듬뿍 들어있는 소주로 고수레했다면, 단군 때 농사와 가축을 관장하던 신장(神將)인 고시(高矢)가 진노했을 게다.

아무튼 이런 소주 한 잔 정화에 맑은 물 1 t이 필요하다는 서울시의 탁상 계산은 공연히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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