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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의해 강탈당했다 100년 만인 지난달 20일 반환된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의 보수 및 보존처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연구원 5명이 북관대첩비(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 13cm)에 묻어 있는 100년 설움을 닦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선 “따닥, 딱, 따다닥”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보안경을 쓴 김진형(33) 연구원의 얼굴 쪽으로 단발성 딱총소리와 레이저 광선의 불꽃이 튕겨 올랐다. 레이저 세척이라고 했다.
“사람 얼굴의 점을 빼는 것과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약물로 이물질을 녹여내면 간단하지만 약물이 비석에 남습니다. 레이저 세척은 레이저로
오염 물질을 때려서 태워버리는 겁니다. 비석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이죠.”
그 옆에서 이주완(38) 연구원은 정교한 드릴로 표면에 붙어 있는 시멘트모르타르를 조심스럽게 갈아내고 있었다. 시멘트모르타르 제거는 문화재연구소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고난도의 작업. 자칫 잘못하면 비석의 표면 대리석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관대첩비의 표면에 왜 이렇게 시멘트모르타르가 묻어 있는 것일까.
이 연구원은 “이 비를 약탈해 간 일제가 비석 몸체 위에 머릿돌을 만들어 붙였는데 지진으로 인해 머릿돌이 떨어질까 봐 시멘트모르타르를 많이 사용해 고정시켜버렸다”면서 “그 과정에서 시멘트모르타르가 비의 몸체로 흘러내려 음각으로 새긴 비문의 글자 속에도 남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사덕(46) 연구원이 설명을 이어갔다.
“치과용 드릴이나 치석을 제거하는 도구처럼 매우 정교하면서 강한 도구를 사용합니다. 시멘트모르타르를 조금씩 갈아서 제거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가로 세로 5cm 크기의 글자에 들어 있는 시멘트모르타르를 제거하는 데 보통 너덧 시간이 걸립니다.”
반환 직후 서울 용산의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됐던 북관대첩비가 보존 처리를 위해 대전으로 내려온 것은 7일. 그동안 정밀 실측, 3차원 입체 촬영, 탁본이 진행됐고 10일부터 본격적인 오염물 세척, 시멘트모르타르 제거, 균열 부위 보강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문화재청에서는 비석의 머릿돌과 받침돌을 제작하고 있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정문부(鄭文孚)를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이 왜군을 물리친 것을 기리기 위해 1707년 숙종의 지시로 함북 길주에 세운 전공비로 러-일전쟁 당시인 1905년 일본군이 강탈해 갔다.
17일로 예정된 북관대첩비 귀환 국민 행사(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 일정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석조물 보존처리팀 10여 명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밤이 깊어 갔지만 연구원들은 증류수로 비석 아래쪽 이끼의 흔적을 세척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통상 이끼류를 제거할 때는 바이오사이드라는 약물로 이끼를 고사(枯死)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비석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가장 깨끗한 증류수를 사용하기로 한 것.
합성수지로 균열 부위를 보강하는 작업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북관대첩비 100년의 한을 씻어내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군요”라는 기자의 말에 연구원들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답했다.
“경천사 10층석탑 보수 보존처리도 해냈는데요. 그건 10년이나 걸렸습니다.”
대전=이광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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