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행들과 마주쳤다. 성지순례를 했기 때문인지 모두 흡족한 얼굴로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 정겨워 보였다.
이들에게 성지순례는 자신들이 가진 신앙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들이었다.
내 앞자리에 앉은 노신사 한 분은 무아지경(無我之境)이 되어 성지를 순례하면서 맛본 환희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성스러운 땅에서 자신의 속됨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 축복일 것이다.
그리고 성스러운 그곳에서 '진리가 먼 곳에서 실현된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 역사로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자체가 경이롭고 신비롭기까지 한 일이다.
그래서 어렵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성지순례의 행렬은 계속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인이 갖는 성지순례의 열정은 무슬림에 버금간다.
이러한 성지순례의 열정은 한국인의 종교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런 종교에 대한 열정이 과연 우리 사회를 정화하는 힘이 되고는 있는가.
불행히도 한국인이 보여주는 이율배반적 신앙 형태와 집단이기주의는 무슬림과 흡사하다.
무슬림이 평화를 외치면서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자비를 외치면서도 자신 이외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은 형태를 달리했지만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종교 안에서만 착한 사람이 되고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악인이 되어도 된다는 논리에서 말이다.
성지순례의 환희에 빠진 나머지 자신들과 함께 탑승한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고통받고 있는지를 돌아볼 여지도 없는 것이 한국인의 신앙 형태인 것이다.
이런 신앙 형태는 무슬림이 세계를 혼돈의 도가니로 만든 것과 같이 종교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한국사회가 예의도 도덕도 염치도 없는 사회로 전락해 가고 있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얼마 전 우연히 최근에 종교를 바꾼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개종한 사실에 대단한 긍지를 보인 나머지 자신은 사랑과 봉사로 삶을 사는데 개종하지 않은 자신의 부모, 형제, 친척들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삶만을 추구한다고 비판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어떤 종교를 가졌다는 것이 자신의 인격을 대변한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종교는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어느 종교를 선택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선택했든 그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이 진정 중요한 일입니다.
종교적 실천으로 이 세상을 보면 작은 풀잎조차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나야말로 이웃이 베푼 사랑과 봉사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가를 알게 되지요."
끼리끼리 문화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에 줄 서듯 어느 종교에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외적인 요인에 의해 종교를 선택한 경우 종교가 가진 사회적인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포장하려고 한다.
종교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스스로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행동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로 이 점이 한국 종교가 타락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고, 종교인구가 증가하지만 종교가 사회를 정화하는 힘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도심(道心)은 사라지고 도인인 양 행세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이 한국 종교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소운 스님
이들에게 성지순례는 자신들이 가진 신앙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들이었다.
내 앞자리에 앉은 노신사 한 분은 무아지경(無我之境)이 되어 성지를 순례하면서 맛본 환희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성스러운 땅에서 자신의 속됨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 축복일 것이다.
그리고 성스러운 그곳에서 '진리가 먼 곳에서 실현된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 역사로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자체가 경이롭고 신비롭기까지 한 일이다.
그래서 어렵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성지순례의 행렬은 계속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인이 갖는 성지순례의 열정은 무슬림에 버금간다.
이러한 성지순례의 열정은 한국인의 종교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런 종교에 대한 열정이 과연 우리 사회를 정화하는 힘이 되고는 있는가.
불행히도 한국인이 보여주는 이율배반적 신앙 형태와 집단이기주의는 무슬림과 흡사하다.
무슬림이 평화를 외치면서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자비를 외치면서도 자신 이외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은 형태를 달리했지만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종교 안에서만 착한 사람이 되고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악인이 되어도 된다는 논리에서 말이다.
성지순례의 환희에 빠진 나머지 자신들과 함께 탑승한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고통받고 있는지를 돌아볼 여지도 없는 것이 한국인의 신앙 형태인 것이다.
이런 신앙 형태는 무슬림이 세계를 혼돈의 도가니로 만든 것과 같이 종교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한국사회가 예의도 도덕도 염치도 없는 사회로 전락해 가고 있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얼마 전 우연히 최근에 종교를 바꾼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개종한 사실에 대단한 긍지를 보인 나머지 자신은 사랑과 봉사로 삶을 사는데 개종하지 않은 자신의 부모, 형제, 친척들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삶만을 추구한다고 비판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어떤 종교를 가졌다는 것이 자신의 인격을 대변한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종교는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어느 종교를 선택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선택했든 그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이 진정 중요한 일입니다.
종교적 실천으로 이 세상을 보면 작은 풀잎조차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나야말로 이웃이 베푼 사랑과 봉사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가를 알게 되지요."
끼리끼리 문화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에 줄 서듯 어느 종교에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외적인 요인에 의해 종교를 선택한 경우 종교가 가진 사회적인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포장하려고 한다.
종교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스스로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행동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로 이 점이 한국 종교가 타락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고, 종교인구가 증가하지만 종교가 사회를 정화하는 힘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도심(道心)은 사라지고 도인인 양 행세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이 한국 종교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소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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