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출가한 이후 나 자신과 무언의 약속을 부모님을 대상으로 한 적이 있다.
세간에서 말하는 자식 된 도리는 할 수 없지만 심신 건강하게 수행자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사는 것이 최선의 효도라고, 꼭
그렇게 사는 모습으로 효도하겠다는 약속 말이다.
무더운 지난여름 하루 1000배씩 절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얼굴로 흐르는 땀이 눈물처럼 고이고, 문득 외출을 거의 못하시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가끔 훌쩍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곧 삶의 활력소라 생각하니, 출입이 불편한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가족들의 일이라면 더 냉정해지는 것이 수행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선물처럼 하고 싶다는 약속을 했다.
이생에서 떠날 날을 준비하는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말이다.
기도하다 망상이 된 아버지와의 그 여행을 시월
둘째 주 시원하고 화창한 날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 그리고 스님이 된 동생과 길동무가 되어 제주도로 2박 3일의 여정으로 떠났다.
산중에 사는 사람이니 바다를 맘껏 보고 싶다는 아버지 말씀에 해안도로만 찾아가다가 풍경 좋은 곳에서 흔적도 남기고 차도 마시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스님이 된 두 딸과 처음으로 나들이를 하신 어머니는 기분 좋은 마음을 연방 콧노래로 표현한다.
운전을 하던 내가 “엄마, 예전에 잘 부르시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한번 불러보세요”라고 하니 굽이굽이 해안도로처럼 유연하게 넘어가는 노래 솜씨를 자랑한다.
빙그레 웃으며 창밖만 바라보던 아버지는 “엄마 젊어서는 이미자 꼭 닮았었지.
튀어나온 입도 어찌 그리 닮았던지. 노래 솜씨도 이미자 못지않다”하시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모처럼 보는 아버지의 웃음과 어머니의 노랫가락 뒤로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의 물결이 흐른다.
아버지, “인생은
초대하지 않아도 저 세상으로부터 왔다가, 허락하지 않아도 저 세상으로 떠나간다”는 부처님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떠났듯이 자식들 허락 없이도 그렇게 가시겠지만, 이번 여행길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노래는 꼭 잊지 마십시오.
진명 스님·소불(笑佛)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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