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이데아에서 유신론이 발전하고, 19세기 과학이 발달하며, 확정설로부터 불확정설로 전진함에, 세계의 철학적 사조는 필연성과 우연성의 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우연성을 보다 중요시하게 되었고, 우주 삼라만상은 과학적 개념에 있어서 우연성이 지배하고 있다고 결론할 수 있다.
기상학자 로렌스는 남미 아마존강 유역에 사는 나비의 약동하는 날개의 파장이 북미 대륙에 강력한 토네이드의 바람을 일으키는 나비 효과를 발표하여 카오스 이론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우주 삼라만상에서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현상인 혼돈의 이면에는 음양 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상대적 조화가 적용되는 규칙적 조건이 존재한다는 것이 카오스 이론이다.
양자 물리학의 보아는 태극의 음양에서 발견되었고, 아인스타인의 상대성 원리도 마찬가지며, 물리학자 호킹박사는 태극에서 블랙홀을 발견하고 우주는 이미 계획된 필연의 프로그램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무한한 우주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처럼 우연에 지배되고 있는 것도 드물다. 하나의 정자가 이억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난자와 합궁하여 수정된 인간은 518,400개중의 하나인 팔자로 시작되는 출생부터가 우연중의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인간 사회에 있어 우연이라는 사실을 숙명, 또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세상에서 우연과 필연의 숙명적 인과 관계가 불가피하다고 하여도, 그것은 자유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삶에 대한 중대하고도 거창한 압박감이 될 수 밖에 없다.
무위자연이라, 자연은 잇는 그대로의 법칙이라는 기본사상이 인식되면서 自然的 秩序의 관점은 하늘을 대표하는 별의 괘도(掛圖)가 천도(天道)이며 自然이라 하였다. 동양 철학의 근간이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에서 비롯되어, 하늘과 사람은 서로 상응한다는 天人相應의 사상이 역학이며, 음양오행과 천문 역법을 명리학에 이용하였다.
천명(天命)이 처음 기록된 곳은 공자의 논어이며, 명(命)은 하늘로 부터 命은 부여 받았으나, 知命하는 것은 人間에 있으며, 사람마다 命이 있으나 사람마다 자신의 명(命)을 안다고는 볼수 없다.
지명(知命)은 명리학의 학문이 아니면 그 극치에 이를수없고, 그 사람의 지나간 과거지사를 보지 않으면 그 공을 다할수 없다. 고로 군자는 명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오십이 넘어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독파한 위편삼절의 책인 주역을 연구한 공자는 五十세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논어의 마지막 편에 다시 말하기를 명을 모르면 군자가 아니라고 했다.
운명이란 말은 맹자에 나오는데 이는 숙명(宿命)이라는 의미로 명이 머무는 곧인 별자리의 움직이는 기운이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흥망성쇠를 지배함을 의미한다.
사람의 출생 년월일시와 운명간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현대 과학적 개념으로는 실증하기가 물리적으로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삶의 생애중에서 가장 우연적 사실은 출생 그 자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 못할 진리이다.
숙명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몸부림은, 숙명의 본질을 과학적 방법으로는 감각하고 처리할 수가 업다. 그리하여 숙명이란 필연성 너머에 있는 우연성에 있음을 밝히고, 이미 현상화한 우연을 소급하여 이를 변환하지는 못하더라도 우연을 낳게 한 유인력인 음양 오행의 기를 구명하여 그 정체를 파악함에 의하여, 이후에 닥쳐올 우연성을 인간 생활에 이용하려고 했다.
운명의 우연성에서 어떤 필연성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과 연구의 역사는 길고 그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이런 연구중에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우연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출생이라는 사실을 그 대상으로 한 것이 사주명리학이다.
천태만상의 세상의 생물 중에서 지구상의 인간으로 태어나고 위로는 고관대작의 맏아들로부터 밑으로는 비천한 집 막내동이로 태어나 고해의 생노병사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정신인 기는 하늘로 사라지고, 육체는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개인의 운명을 판단함에 있어 출생년월일시를 제일 먼저 주목하는 것도 당연지사이다. 최첨단 과학 기술 시대를 달리는 현대 사회에서도 신화적, 비논리적 설법의 종교를 숭앙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명리학을 과학적 필연적 관련성을 입증 못한다고 무조건 미신이라고 단언함은, 과거 삼천년간에 연구한 역사적 사실과 통계적 과학을 부인하는 것은 과거 역술가들의 무지와 당사주와 관상위주로 한 장사술에서 나온 잘못된 관습이라 하겠다.
유신론의 종교는 정신적 영생과 창조를 신봉하고, 유물론적 과학은 물질적 진화를 추구하나, 생기론적 명리학은 정신과 육체의 창조와 진화의 중용(中庸)과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며 미지의 미래를 예측하는 통계적 학문이다.
온고지신(溫故之新)이라 옛것을 알아야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법이다.
명리학은 생기론의 인지학이나, 심리학이나 정신 분석학처럼 자연의 법칙과 삶의 이치를 명료하게 밝혀서, 어지러운 세상 인심을 교화하여 개인의 정신을 평안하게 유도하여 발긍 세상을 추구하는 철학이다.
명리학은 자신의 운명을 정확히 인식함으로 가정과 사회의 기강을 안정시켜 위로는 국가간에 전쟁을 없애고, 아래로는 개인 관계간에 분쟁을 방지하여 인류 평화를 존중하며, 각자의 천명과 분수를 지켜서 광명한 세상을 만들려는 유일무이한 학문이며 또 여기에 철학적 사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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