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둘을 포함해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 엄마도 여섯 아이의 엄마였다. 하루 세 번 여덟 개의 밥그릇과 여덟 개의 국그릇과 열여섯개의 젓가락과 여덟개의
숟가락을 씻었을 엄마. 싱크대가 넘칠 만큼의 그릇들을 보며 엄마의 어느 한때를 생각해본다. 삶은 어느 순간 문득, 징그럽게 순환하는 그
무엇이 된다. 예전에 밥을 남기면 엄마가 그랬다. 죽어 저승가면 자기가 흘린 밥알 다 주워먹는 거라고. 살아온 족적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저승어느 구석에서 형벌처럼 다 기억해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몸스리가 쳐지곤 했다. 그러나 멀리 저승까지 가지 않아도 우린 문득 문득
그것들과 부딪힌다. 부모가 되었을 때, 내가 자식이었던 것을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한사람의 삶을, 아니 사람의
삶을 더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예전에 엄마를 속썪일 때면 엄마가 늘 내게 하던 악담이 있었다.
"너도 꼭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그럼 알 것이다."
그것은 어떤 욕설보다 잔인한 악담이었다. 현재의 나, 와 미래의 나, 를 깡그리 부정하는 말이었으니까. 말하자면 나를 두번 죽이는 말,
쯤으로 난 그 말을 이해했다. 그러나 이젠 그 말의 의미를 좀 알 것 같다. 그것은 욕이 아니라 이해를 구하는 간곡한 부탁이었다는 것을.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알아 듣는데 삼십년이 걸렸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삶의 순환 때문이리라. 그것 또한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면 자꾸 쓸쓸해진다. 삼십년 전에 흘린 밥알을 주워먹는 기분처럼 많은 생각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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