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80평짜리 청와대 침실

황령산산지기 2022. 6. 6. 12:05

80평짜리 청와대 침실

1998년부터 20년간 청와대에서 요리사로 근무한 천상현씨가 최근 개방된 청와대를 방문해 관저를 보면서

“대통령님 침실이 한 80평 되는데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 엄청 무섭다”고 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박근혜·문재인 등 총 다섯 대통령 내외의 식사를 담당했다.

관저에는 청와대 직원 중에서도 정해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데

“요리사들도 관저에 오기까지 네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고 했다.

80평이면 ‘국민평형’이라 불리는 32평 아파트 3개를 합친 것에 가까운 면적이다.

10인 이상의 가족이 여유롭게 거주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 내외는 이런 방에 침대 하나 달랑 놓고 지냈다고 한다.

 

과연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부간 대화도 소리가 울려서 침실에선 제대로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주변에서 지켜보기에 ‘무섭다’는 말이 나올 만한 장소다.

청와대 관저는 1991년 건립됐다.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규모는 약 1800평(6093㎡)이다.

대통령과 가족이 쓰는 사적 공간인 내실은 200평 정도 된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에는 내실에 참모들도 꽤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김 전 대통령은 매일 아침 침실에서 의무실장과 간호부장의 건강 체크를 거친 뒤에 8시쯤 거실로 나왔다.

그러면 공보수석 등이 대기하고 있다가 조간신문 내용을 중심으로 당일 여론과 이슈를 정리해 보고했다고 한다.

청와대 본관의 대통령 집무실 규모도 엄청났다.

51평(168㎡)으로 백악관 오벌 오피스(23평)의 2배가 넘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처음 집무실에 들어서면서 “테니스를 쳐도 되겠다”고 농담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적막강산에 홀로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간이 너무 넓어 한기를 느꼈다고 한다.

집무실 출입문부터 대통령 책상까지 약 15m로 상당한 거리였다.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으로 나오다 넘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어떤 장관들은 대통령에게 인사한 뒤 등을 돌리고 퇴장하다 중간쯤 다시 돌아서 인사하고

출입문에서 밖으로 나가면서 또 고개를 숙이는 ‘3중 인사’를 할 정도였다.

청와대는 건국 이후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공간적 상징이다.

마지막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관저도 26일부터 시민들이 관람하게 됐다.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들고 그 사생활은 입에 담기조차 불경스럽게 여기던

기이한 한국식 정치 관행도 이 기회에 바뀌었으면 한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최승현 논설위원